치욕에서 깨달음을 얻다

칠천량 해전

by 갈잎의노래


거제도

칠천도 섬 앞바다 칠천량,


파도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고 풍경은 한없이 고요하다.

바다 주위를 감싸는 섬들은 그윽이 부드럽고 완만한다.

뱃고동 정적조차 쉬이 들리지 않는 바다는 은은하게 평온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곳은 치욕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현장이다.


칠천량 해전은 칠천도와 거제도 사이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이 왜군과 맞서 싸웠던 해전이다. 그리고 조선수군이 유일하게 패배한 전투이자 참혹하게 전멸했던 해전이다.


칠천량 해전은 선조가 이순신을 하옥하고 원균을 수군통제사로 임명한 후 발생한 사건이다.


이순신은 평소 군지휘관으로서 합리적인 군사적인 전술. 전략 원칙에 따라 소신 있게 처신했다. 왜군의 계략에 속아 이순신의 강단 있는 행동을 왕명에 대한 거부라고 질시한 선조는 이순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하고 서울로 압송한다.


이순신은 배 134척과 수군 병력 1만 7천여 명, 군량미 근 1만 석, 화약 4천 근, 여분의 총통 300자루 등을 후임 원균에게 넘긴 후 2월 26일 서울로 압송되었다.

칠천량 해전은 1597년 7월 16일(음) 삼군 통제사 원균이 지휘한 조선수군이 일본군과 거제 칠천량에서 싸워 처절하게 패배한 전투이다.


원균은 7.14일 부산 앞바다의 수백 척의 일본 군선과 맞닥뜨린다. 계속 해전을 회피하는 일본 군선을 조선수군은 7월 15일 밤 10시경 칠천량까지 추격한다. 다음날 아침 추격으로 지친 조선수군을 왜군선 700여 척이 기습적으로 협공을 가한다. 조선수군이 우왕좌왕 후퇴하는 과정에 일본군은 각개 격파로 조선함선 대다수를 격침했다. 이 해전에서 원균을 비롯하여 지휘부 모두가 전사하고 140여 척의 함선이 파괴되었다.

구국의 일념이 희박하고 책임감이 경박한 졸장의 지휘로 천신만고 끝에 구비한 막강한 수군 전투 자산이 하루아침에 침몰되고 말았다. 전쟁의 승패는 군수물자나 전투 장비와 같은 하드웨어에서만 좌우되는게 아니라 지휘관의 지휘 능력, 전략. 전술, 인품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칠천량 해전은 여실히 보여준다.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왜군은 이순신이 있을 때 넘보지 못했던 남해의 제해권을 일거에 장악한다. 칠전량 해전에서 승리한 왜군은 임진왜란 후 당시 소강상태였던 조선반도를 재 침략한다. 정유재란의 시작이다.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해 조선의 국운이 위태로운 찰나, 우여곡절 끝에 정탁 등의 상소로 목숨을 건진 이순신은 선조로부터 백의종군을 명 받는다.


백의종군 길에서 이순신은 칠천량 해전의 처참한 패배를 듣고 통곡한다.

난중일기에 당시의 심정을 격하게 토로하고 있다.


7월 18일, 맑음

새벽 나절에 이덕필과 변홍달이 와서 전하기를 "모레 전에 수군이 피습되어 통제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이 전사하고 "수군이 궤멸했다." 하였다. 들으며 통곡을 금할 길이 없었다.

- 정유년(1597) 난중일기


칠천량 해전에서 막강했던 정규 정예군이 제대로 된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몰살되면서 조선반도에 후폭풍은 거세게 일어났다. 그간 이순신의 수군이 방어한 전라 남해안의 방어선이 뚫리면서 왜군은 남해안을 통해 상륙해 호남, 충청 지역까지 쳐들어와 조선 백성과 산하를 유린한다.


역사는 아이러니인가.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 전체가 왜군에게 섬멸당할 당시 그 전투에서 도망간 장수 배설이 남긴 판옥선 12척이 운명적으로 이순신과 조우하게 된다. 이순신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2척을 품고 전심전력으로 왜군과 일전을 벌인다. 명량 해전이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조선 수군은 세계 해전사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패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12척의 함선으로 130여 척의 왜군을 물리침으로써 세계 해전사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승리를 일궜다. 조선 수군은 명량해전에서 승전함으로 칠천량 해전에서의 치욕을 설욕했다.

원균과 이순신의 관계는 무책임한 보스와 책임감 강한 리더로 대비해 볼 수 있다. 보스는 ‘결정권과 명령권을 쥐고 있는 조직의 우두머리’이다. 반면에 리더는 ‘조직을 추스르고 이끌어가며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실행자’이다. 원균은 무책임하게 권한만을 전횡한 무능한 보스였다면 이순신은 목표를 향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책임 있는 리더였다.



거제도는 칠천량 해전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여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자 했다. 칠천량 해전이 벌어졌던 곳에 칠천량해전공원을 조성하였다.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현장으로 알리고자 한다.


다크투어리즘은 아픈 역사, 시련의 역사, 패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성찰이 없는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역사의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곧 칠천량 해전에서 명량해전을 깨우치는 것과 같은 일깨움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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