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품은 인문학

거제 맹종죽 숲

by 갈잎의노래


숲은 숲이되 대나무 숲이다.


거제도에는 맹종죽 테마공원이 있다.

깊은 심산유곡을 품은 숲은 아니고 자그마한 산자락을 덮은 대나무 숲이다.

한 시간 남짓 하릴없이 산등성이를 걸으면서 몸의 생기를 북돋울 수 있다. 겹겹이 생각이 쌓여 무거워진 머리 식히기에도 좋다.


숲은 많은 산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숲 속의 공기는 상쾌하고 신선하다. 숲의 나무들은 박테리아 등 미생물을 살균하는 '피톤치드' 물질도 발산하기에 건강에도 좋다. 삼림욕을 하면 녹색의 숲을 계속 봄으로써 정신이 맑아진다. 푸름과 신록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숲에서의 휴식 및 휴양을 통해 건강 관리와 치료에 도움 되는 삼림욕의 효과이다.



현대인들 누구나에게 스트레스 요인이 있다. 열거하자면 끝이 멀다.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불만, 성취 욕구에 따른 과도한 경쟁, 조직 사회의 부적응에 따른 소외감,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겪는 불편함과 불안, 생활 전선에서 뒤처지거나 일탈된 열등의식,,


근본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풀기 어렵다. 하지만 스트레스 압박 요인이 있을 때 순간순간 짬짬이 해소해 나가야 한다. 누적되는 스트레스를 방치하면 심리적 불안을 겪게 된다. 심화되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정신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간단한 스트레스의 해소책으로 가벼운 삼림욕이 좋다. 등산은 체력 에너지도 필요하고 신체적인 소모 활동도 크지만 삼림욕은 등산에 비해 가볍다. 가까운 산이나 근교 숲에서 한두 시간 산책으로 부담 없이 기분 전환을 꾀할 수 있다.


거제도 맹종죽 대나무 숲을 거닐며 잠시나마 피곤한 몸과 갑갑한 마음을 떨쳐버렸다.

고맙게도 덤으로 대나무 삼림욕에서 대나무의 인문적 가치도 발견했다.


대나무는 인간의 인문. 자연생활에 밀착되어 인간과 교감을 하는 식물 중 하나이다.

특히 대나무는 인간 세상사를 은유할 때 교훈이나 지혜를 주는 인문 어휘로 곧잘 등장한다.

대나무는 예로부터 매난국죽(梅蘭菊竹) 즉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지조와 절개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대나무의 곧은 모습에서 선비다움의 지조를 배웠다. 꿋꿋한 기상과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겼기에 선비들의 옛 문학 작품이나 서화에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굽지 않고 위로만 쭉쭉 뻗는 대나무를 보고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다"면서 선비들의 절개를 대나무에 빗대어 선망하기도 했다.



대나무가 들어간 사자성어인 죽마고우(竹馬故友)는 옛날 고향의 친구를 회상하는 말이다.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같이 놀았던 어릴 적의 친구라는 뜻이다. 죽마고우에는 고향의 그리움이 담겨있고 어릴 적 고향 동무들에 대한 향수가 더리워져 있다.


개별 단어들이 내포하는 단어의 의미 폭과 깊이는 제각기 다르다. 단순한 지칭어로서의 개념 어휘가 있는가 하면 상징하는 의미가 깊은 인문적 단어도 있다. ‘죽마고우’ 단어 속에는 회상, 고향, 향수, 어릴 적 친구, 그리움 등이 간직되어 있는 속 깊은 낱말이다.


파죽지세(波竹之勢)도 대나무가 갈라지는 형세를 보고 인간사의 한 단면을 묘사한 말이다. 대나무는 위쪽 마디 한쪽을 자르면 결 따라 하방 일직선으로 쪼개진다. 곧 파죽지세는 대나무가 일목요연하게 절개되는 기세를 보고 의미를 유추했다. 즉 아무것도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기세를 말할 때 파죽지세라고 한다. 도도하게 흐르는 대세적인 상황을 말한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행복이 파죽지세처럼 우리 곁으로 밀려올 때가 있지 않을까.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처럼 우리는 자신의 봄을 희망으로 기다려야겠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인간사에서 자연은 인간의 속세를 정화하는 구세주로 자주 등장한다.

중국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있었다. 대나무 숲(竹林)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세속에서 벗어나 재야에 묻혀 사는 선비들을 상징하고 있다. 세상의 권세를 떠나 자연과 벗 삼아 청담(淸談)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청담은 세속의 이해를 떠난 맑고 깨끗한 담화(談話)라는 의미다. 이들은 노장사상을 기초로 세속적 가치를 초월한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즐기고 정신적 자유를 중시했다. 소유욕과 물욕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속박당한 현대인들의 고달픈 생활을 되돌아보게 한다.



죽비(竹篦)는 불교의 법구이다.

죽비는 주로 대나무로 만들며, 양쪽 나무 가운데 빈 틈새가 있다. 나무 쪽 부분을 부딪치면 둔탁하면서도 마디찬 소리가 울린다.


죽비는 주로 선방에서 참선 시 사용한다. 참선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죽비로 소리 신호를 보낸다. 참선 중 조는 스님이 있을 경우 경책하기도 한다. 방장이 조는 스님의 어깨를 살짝 쳐서 몽롱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경책의 죽비 소리는 졸듯 말 듯 하는 다른 스님들도 정신 차리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번뇌는 세상 살면서 겪는 어지러운 생각으로 인간의 몸이나 마음을 괴롭힌다. 불교에서는 눈앞의 고통과 쾌락에 미혹되어 생겨나는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번뇌의 기본으로 본다. 집착하면 번뇌에 빠져든다. 무심히 모든 아집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평정심이 찾아온다.


불교의 가르침은 현실의 빡빡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허한 수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속인들은 높은 단계의 종교적 반열에 올라 세상의 번뇌를 해탈하기 어렵다. 하지만 누구나 일상에서 파생되는 정서 불안을 적절히 조절할 방책을 가져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심성 정화 요법이 현대인에게는 필요하다.


죽비는 소박한 대나무채 일 뿐이지만 수행자의 동반자이다. 죽비는 흐트러진 마음을 되잡는다. 온갖 씨름과 번뇌를 누그러뜨리고 참선으로 정진하기 위한 불가의 필수품이다. 번뇌를 끊기 위한 참선 과정에 세속의 상념과 졸음은 큰 방해자다. 탁~ 외마디 죽비소리는 상념을 일시에 끊고 졸음을 단박에 쫓아 참선을 독려한다. 매몰차지만 청아한 음의 계율이다.


우리도 마음속의 죽비를 하나씩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거제도 맹종죽 대나무 숲을 걸으면서 대나무의 향취에 젖는다.

대나무가 품고 있는 인문학의 깊은 정취를 곱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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