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험난한 시류에는 휩쓸리지 말고 자기 속내를 감추고 조심해서 살아가라는 일종의 보신 경종이다. 그러나 몽돌은 파도를 회피하며 처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에 당당히 맞서 부대끼며 절차탁마했다.
몽돌은 오랜 세월 볼 것 못 볼 것 죄다 겪은 후에만 나올 수 있는 숙성되고 달관된 형체이다.
몽돌은 홀로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다. 수많은 각진 돌들이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쪼개지고 깎여서 탄생한 원만한 돌이다. 몽돌의 곡선들은 견디어 온 세월의 인고를 말하고 있다.
몽돌해변에 가면 몽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파도가 철썩 일 때 파도와 함께 어우러져 몽돌이 구르는 독특한 소리이다. 파도의 출렁임에 맞춰 수많은 몽돌들이 서로 부딪혀 접촉하면서 어우러지는 소리이다.
몽돌 해변에서 나는 자연의 화음은 일반 해변과 다르다. 모래 해변에서는 파도소리와 고운 모래가 부딪혀서 나는 쏴~아 하는 여린 소리라면 몽돌해변에서는 몽돌들이 밀려드는 파도 물살과 부딪혀 울리는 짜르르~ 하는 기분 좋은 경음이다. 파도소리와 몽돌이 부딪히는 특유의 화음이 바다 풍경을 더욱 환상적으로 연출한다. 몽돌과 파도의 합작품인 몽돌 소리는 환경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몽돌해변에 가면 13세 여자아이의 손편지가 있다.
거제도 곳곳의 몽돌해변 안내판에는 어김없이 한 미국 소녀의 손편지 사연이 적혀있다. 이곳을 방문한 소녀는 마음에 드는 몽돌 2개를 기념품으로 챙겨갔다. 나중 소녀는 어머니로부터 수천 년에 걸쳐 자연이 이루어준 몽돌을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훈계를 듣는다. 이후 사과의 자필 편지와 함께 가져간 2개의 몽돌을 우편으로 거제시에 돌려준다.
소녀 어머니의 부모 됨이 놀랍고 어머니의 가르침에 공감하는 소녀의 마음이 곱다.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아마 소녀는 훌륭한 심성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것 같다.
암석, 오래된 수목, 화초, 토양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자연의 본래 자리는 수많은 세월에 의해 지금처럼 형성된 곳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훼손하거나 절취하는 것은 자연의 생리를 파괴하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 인류의 공동 자산이다. 개인적인 이해나 취향에 따라 쉽게 훼손하거나 손상하는 것은 금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길들여진 우리네들은 소유욕에 집착한다. 물건이나 상품을 자신만이 전면적이고 배타적으로 지배하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한 참 떨어져 바라보거나 그냥 즐기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 대상을 소유해서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야만 성이 찬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 물건에 대한 아름다움을 전취했다는 들뜬 기분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다.
우리에겐 ‘존재 의식‘이 필요하다. ’ 존재‘한다는 것은 대상과 그냥 경이롭게 교감하는 것이다. 상호작용하면서 대상이 품고 있는 미적 요소를 체감하고 감동한다. 내가 그 대상을 나의 소유물로 사유화하지 않고 대상에서 품어져나오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사색하고 감지한다.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이는 아름다운 자연물들이 절취되어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태초부터 자연은 사회 구성원의 공동 자산이자 사회적인 상품이 아니었던가.
몽돌해변의 몽돌들이 지금처럼 탄생하기까지 오랜 자연의 시간들이 필요했다. 긴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몽돌들이 품은 미학은 사회적 자산이다. 모두가 그냥 바라보고 즐기고 감동을 느끼면 된다. 그러면 언제까지나 수려한 풍경과 아름다운 음을 우리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그냥 몽돌을 그 자리에 두자. 사유화하지 않고 몽돌 앞에 담담히 존재하자.
그럼에도 자칫 우리는 몽돌을 기념품으로 서너 개쯤 챙기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다. 몽돌 해변에 널린 수많은 몽돌 가운데 몇 개 슬쩍하는 건 별로 양심적 가책이나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사회학적으로 볼 때 개개인의 나 하나쯤이야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종합되면 엄청난 사회적 결과를 낳는다.
한해 100만 명 관광객이 한 개씩만 챙긴다면 한해 백만 개의 몽돌이 사라질 수 있다.
10년이면 천만 개의 몽돌이 몽돌해변에서 증발한다. 몇십 년이면 몽돌해변에 몽돌이 없는 아이러니가 찾아올지 모른다.
거제지역 시민단체도 말한다. "한 사람이 몽돌 5개만 가져가도 1년이면 15t 트럭 100대분의 몽돌이 사라진다"라고. 자연이 수천 년 동안 만들어 선사한 몽돌해변이 인간들의 그릇된 환경 의식으로 수년만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경각심이 든다.
13세 미국 여자 아이가 되돌려준 몽돌 2개와 사과 편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이 어린이의 진솔한 성찰에서 몽돌 자원의 소중함과 보호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나아가 아름다운 자연은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