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숨결은 바람결에 감추이고..

by 갈잎의노래


제주는 바람이다.


바람은 정다운 소식이 담긴 그리움을 품었다.

새로운 발상이나 행동의 돌출을 바람에 비유한다.

‘바람났다’는 말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윤리적인 일탈의 의미도 있지만 인문학적인 상상으로는 익숙한 관습으로부터 탈피를 말한다.


제주도는 육지민에게 호기심의 땅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땅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무언가 희망과 소망이 담긴 곳이다. 우리를 들뜨게 하는 그 무언가의 행복이 존재하는 상상력이 꽃피는 곳이다.

바람은 제주도를 휘감고 있다. 무더위가 쨍쨍한 한낮 일지라도 바람 부는 그늘에 들어서면 금세 몸이 시원하다. 시원함을 넘어 맘까지 상쾌하다. 바다 기운을 머금은 바다 바람과 산숲 정취를 휘감은 산바람은 때로는 부드럽고 때론 세차다.



제주도는 바람 중의 바람 태풍의 땅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험난한 자연의 위력을 맛 본 다음에야 한 해를 보낼 수 있다. 육지 사람이 한번 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태풍을 매년 몇 번이고 마주쳐야 한다. 공포스럽고 위협적인 재난 풍이지만 제주의 땅은 맞서서 해쳐나간다. 자연의 시련이지만 한편으론 태풍이 고착화된 생태계를 확 뒤집어 만물이 새롭게 작동하도록 한다는 것을 안다.


제주도는 여름철 육지의 전위로서 태풍의 최전방에 있다. 우리나라에 올라오는 태풍의 진로는 세 갈래의 시나리오로 분류된다. 서해안으로 북상하는 길이 있고, 남해안을 거쳐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있으며, 남해안에 상륙하여 내륙으로 북상하면서 소멸하는 길이다.


어떤 갈래의 길이든 제주도는 태풍의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육지 사람처럼 요행히 태풍을 피해 갈 3분의 2의 확률을 흔연히 고대할 수 없다. 육지민이 가질 수 있는 회피의 기대심리를 제주도는 가질 수 없다. 세 갈래 태풍 진로는 모두 제주도를 피해 갈 수 없다. 태풍과 맞닥뜨려야 하는 운명의 땅이다. 물러설 곳이 없으므로 배수진의 자세로 무조건 맞서야 한다. 육지 사람들보다 몇 배나 억세고 위협적인 자연의 위력을 늘 절감해야 한다.

그러기에 제주도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고, 자연과 대면하며 살아가며, 때론 자연과 맞서며 살아간다. 제주도는 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강함은 자연의 혹독한 시련으로 연마되었다. 제주도 자체가 화산 폭발과 용암의 분출로 탄생한 거대한 자연의 조형물이 아니던가, 제주 전역에 자연활동의 진면목이 여실이 드러나 있다.


제주는 부드러움과 강함, 따스함과 차가움이 수시로 공존하고 있다. 한반도 남쪽의 따스한 섬으로 인식되는가 하면, 국토 최남방 지역이지만 같은 시기 육지보다 더욱 싸늘한 날씨 기후를 보일 때도 많다. 육지에 비해 자그마한 섬으로 포근함만 기대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제주의 세찬 바람을 쐬봤다면 제주가 만만한 땅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제주 면전에 겸허해야 할 이유이다.


제주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었다. 역사적으로 유배지였으며 육지민의 사고에는 유배된 땅이었다. 단지 섬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가진 육지인으로부터 수모를 당해왔다. 육지민으로부터 팽당한 지역이었고, 무시당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육지가 할 수 없는 역사적인 과업들을 고단하게 떠맡아 왔다. 유배지로서, 귀한 해산물을 육지에 공급하는 진상처로서, 왜구나 침입자들을 막는 전초 기지로서.


제주도는 자연의 시련 못지않게 역사의 인고를 거쳐왔다. 과거로부터 근래에까지 역사의 시련과 아픔은 제주 땅 여기저기 각인되어 있다. 이런 곳에도 제주의 바람은 어김없이 불었다. 바람결에 아픔이 스쳐가고 치열했던 역사의 상흔들이 쓸려갔다. 단 기억할 따름이다.


끈질기고 모진 삶이 맺혀있는 애절한 땅임에도 제주도의 일상 풍경은 너무나 곱다. 한스러움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맘속 깊은 곳에, 땅 속 어딘가에 꼭꼭 숨겨두었기 때문인가.


제주도의 봄바람은 온갖 꽃 향기들을 거느리고 있다. 살가운 봄바람은 곧 향긋한 꽃바람이다. 여름 바람은 시원한 상쾌함이다. 아무리 땡볕이 쨍쨍한 여름날일지라도 그늘에 들어 바람을 쐬면 쾌적함에 행복한 기분이다. 강한 볕이 쬐는 여름날 제주의 땅을 한마디 한마디 밟고 싶은 자에게 여름 바람은 위안의 동행자다.


가을의 억센 바람은 제주의 가을을 수놓는 데 빠질 수 없다. 가을바람은 억새와 들녘의 풀들을 하릴없이 춤추게 한다. 제주 천지의 가을을 멋스럽게 연출하는 감독이다. 겨울바람은 제주도의 자존심이다. 차가운 세찬 바람은 제주도의 매운 고추이다. 육지민이 작은 섬이라고 얕잡아볼 수 없는 이유이다. 살결에 닿는 싸늘한 겨울바람을 흠껏 맛본 사람들은 감히 제주를 만만히 보지 못한다.

제주의 사계는 계절 바람과 함께 오고 계절 바람과 더불어 간다.


제주의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수시로 불고 거침없이 스쳐간다. 바람은 제주의 땅을 정적으로 놓아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흔들어 대고 들썩이도록 한다. 폐쇄된 땅이 되지 않도록, 멈춘 풍경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꼬대기고 부추긴다. 나아가고, 깨쳐가고, 되돌아보는 생동하는 땅으로 자리매김시키려 한다.


바람은 멈춤을 싫어한다. 이리저리 휘몰아치고 역동적으로 맘껏 유희한다. 바람은 정형화된 닫힘을 불온시한다. 사방팔방, 이곳저곳을 헤집고 흩트리고 휘몰아간다. 바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몸으로 체감될 뿐이다.


제주의 속살은 눈에 비치는 겉치레에서 알 수 없다. 온몸으로 부대껴야 제주의 심층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

제주는 바람의 아들이다. 시시각각 바람결에 경이로움과 새로움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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