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성리학이 지배했던 과거 우리 사회에서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성은 출산 육아와 더불어 집안 살림일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남자는 집안 생계를 짊어지기 위해 외근을 하는 것이 본업이었고, 여성은 가정 살림을 도맡아 내조를 하는 것이 남녀유별에 입각한 유교의 합당한 도리였다.
제주해녀들은 달랐다.
육지의 일반 여성들이 감당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바깥일을 해야 했다.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 노동이다. 가중되는 삶의 무게였고 생활의 고단함이었다. 해녀들은 강인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 생계를 위해 바다밭에 뛰어들어야 했으며, 가정 경제를 위해 거친 잠수 작업을 해야 했다. 그녀들은 고단한 삶의 무게를 회피하지 않고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다.
제주 해녀들은 철저한 능력 공동체 정신으로 무장되었다. 물질 작업의 노하우를 익히려면 수년에서 수십 년간에 걸쳐 습득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긴 학습 과정에 왕도가 따로 없다. 몸소 체험하고 경험하고 수없이 생계형 실습을 해야 깨칠 수 있다.
선배 해녀들이 몸으로 체득한 지식과 정보는 후배 해녀들에게 요긴한 살아있는 알짜 정보이다. 반드시 선배 해녀로부터 필수적으로 전수받아야 할 정보 보고다. 당연히 해녀들 간에는 물질 지식과 잠수 능력을 중심으로 장유유서의 직업적인 질서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해녀들의 애환이 담긴 소리가 있다. 속칭 숨비소리이다.
숨비소리는 휘이~ 휘파람을 부는 듯 가쁜 숨을 몰아쉴때 나는 입소리이다. 물속에서 숨을 참아온 해녀들이 물밖으로 나와 재빨리 내뱉는 숨소리이자, 삶의 무게를 견디어나가는 힘겨움을 표출하는 단말음이다. 가쁜 숨을 짧게 고르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다시금 해산물 채취를 위한 긴 잠수 작업이 진행된다. 몇시간의 긴 물질 작업 중에 끊임없이 이 과정이 반복된다. 잠수 작업, 물밖으로 나와 가쁜 숨비소리 내뱉기, 다시 물질 잠수..
제주도 해안 곳곳에는 불턱이라는 장소가 있다. 돌을 담처럼 쌓아 둘러친 공간인데 그 속에서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물질 작업을 준비한다. 물질 노동으로 차갑게 언 몸을 녹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불턱은 해녀들의 작업을 위한 장소이자 해녀들의 생활 공동체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해녀들은 서로 간에 이런저런 물질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하는 요령, 해산물이 산재하는 바다밭의 위치 파악 등 요긴한 물질 정보들이 오고 간다.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담이나 삶의 질펀한 얘기들도 풀어놓고 허심 탄회하게 주고받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바다를 텃밭으로 물질 작업하는 과정은 고단하고 힘겨웠다. 혼자 광활하고 거친 바다를 상대로 물질 작업을 하기에는 너무나 벅차 엄두를 낼 수 없다. 물질이라는 거친 작업이, 힘겨운 바다 노동이 해녀들을 단단히 결속시켰다. 물질 지식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공동체 의식을 개개인 맘속에 단단히 각인시켰다.
화산 지형으로 제주 천지가 돌덩어리라 해도 무방할 돌 땅 제주도에서 논농사는 쉽지 않았다. 겨우 척박한 땅 곳곳 짜투리를 밭으로 일구어 밭작물을 재배하는 게 전부였다. 이런 환경에서 천성적으로 제주 여성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어 가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가정 경제의 주체적 역할과 더불어 그녀들의 물질업은 사회 경제에도 보탬이 되었다. 제주 경제를 논할 때 제주 여성들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주 해녀들은 그들의 기술을 널리 타지에도 전수했다. 출항 해녀들의 역할이다. 그들은 제주도를 벗어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함경도, 황해도 바닷가까지 진출하여 그곳의 여성들에게 물질의 기술들을 전수하고 해녀들을 길렀다. 심지어 19세기 말부터는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국외로 진출하여 해녀업의 영역을 확대한 개척자가 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제주시 통계 현황을 보면 해녀들의 세대교체는 단절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에는 현재 3500명 가까운 해녀들이 현직에 종사한다. 그러나 이 중 90% 이상이 60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나이 많은 해녀들은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해녀라는 삶의 무게를 운명처럼 감당했다. 이제는 아쉽게도 해녀들의 대잇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어업의 발달과 세태의 변화로 점점 해녀들의 존재감은 잊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고령 해녀들이 한 시대의 소임을 묵묵히 담당한 잠녀로서 해녀의 위상을 일구어 온 자취는 제주의 눈시린 푸른 바다 처럼 눈부시다.
제주 해녀들의 지난한 삶은 이제 해녀문화로 탄생했다.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기억하고 되새길 가치가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이 되었다. 마침내 제주해녀문화의 가치가 인정받아 2016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주의 정체성은 삼다도가 맞다. 세찬 바람을 빼고 제주를 말할 수 없고, 검은 돌담 돌 없이 제주를 얘기할 수 없으며, 강인한 제주 해녀를 제하고 제주를 논할 수 없다.
해녀들의 삶에는 척박한 땅에서 강인하게 바다의 삶을 일구어 온 치열함이 배어 있다. 집안일과 바깥일을 함께 돌봐야 했던, 끝없이 이어지는 힘겨움과 운명적으로 함께한 해녀의 고단한 삶은 제주 여성의 삶의 본질이자 제주의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