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가 제주여성 만덕

by 갈잎의노래


제주도에는 김만덕이 있다.

비천한 기생 출신의 여성이다.

일찍이 12세 무렵 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한 기녀의 수양딸로 입적되면서 기녀가 되었다.

나중 제주의 최고의 거상(巨商)이 되었다.

만덕은 큰 베풂을 실천한 여인이다.

나눔의 아이콘을 후대에 남겼다.


정조 18년 1794년의 갑인년 흉년은 극심하여 백성들의 생계는 암울했다, 특히

수많은 제주도민은 육지로부터 지원조차 원활하지 않아 참혹한 기아 선상에 다 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만덕은 굶주린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녀의 구휼 활동은 당시 굶주려 죽어가는 제주도민 전체를 열흘 동안 연명시키고 수천 명의 백성을 살려냈다고 전해진다. 가진 자로서 스스럼없이 시대적 소명에 응답하여 사회적 책임을 감당했다.


후에 만덕의 선행이 조정에 알려졌다. 정조가 상을 주려 하였으나 만덕은 상을 사양하였다. 이에 정조가 만덕에게 소원을 말해보라 하니 만덕은 서울에 가서 임금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금강산에 들어가 일만 이천봉을 구경했으면 하는 바램을 피력했다. 만덕 당시 제주민은 육지에 올 수 없다는 출륙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평생 육지 땅을 밟을 수 없었던 제주 여인의 소박하고도 애절한 소원이었다. 정조는 만덕의 기민 구제에 헌신한 공로를 칭찬하며 흔쾌히 허락한다.

조선 사회는 17세기 이후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였다. 이와 함께 화폐 사용이 장려되면서 돈의 가치와 상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조선은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강한 사회였지만 이제 상업을 통해 큰돈을 번 신흥 상인층의 위세도 커갔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만덕은 관습을 뛰어넘어 장사를 시작했다. 제주 사회의 분위기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으로 건입 포구에 물산 객주를 차린다. 객주는 지금의 유통업체가 하는 역할 기능과 흡사한 경제 단위체이다.


만덕의 객주는 제주와 특산물인 말총, 미역, 귤 등을 사들여 육지 상인에게 공급하였다. 제주의 양반 부녀자나 기녀들을 대상으로는 육지의 옷감, 장신구 등을 팔았다. 또한 척박한 제주에서 귀한 육지의 쌀과 소금을 수입하여 시세차익을 남기고 유통시켰다. 만덕은 적극적으로 선상 물류를 활성화하여 나중에는 자신의 배까지 소유하면서 포구의 전 상권을 장악한다. 제주의 최고의 거상이자 제주 최초의 여성 CEO가 되었다.


돈의 논리가 중심에 있다지만 만덕의 상행위에는 원칙이 있었다.

“싸게 많이 판다.”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원칙을 견지했다. 곧 물건 하나하나의 판매로 남기는 이익은 적었지만 대신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남겼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공급하면 소비자에게 덕이 될 뿐만 아니라 물건을 공급하는 판매자의 신용도도 덩달아 높아진다.


“적정 가격으로 거래한다.” 정가매매(定價買賣)를 중시했다. 물건값을 과도하게 올리거나 조작하지 않고 적정한 가격으로 공정하게 거래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적정 가격으로 상거래를 했다.


“신용과 믿음을 판다.” 만덕은 신용본위(信用本位)를 중심에 두었다, 신용과 믿음을 상거래의 바탕에 깔고 거래했다. 장사꾼으로서 쉽게 유혹되기 쉬운 이윤의 논리를 넘어 정직과 성실성을 기반으로 사업을 이어갔다. 이러한 만덕의 상거래 정도(正道)는 만덕의 신용 자산이 되어 사업이 날로 번창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조선시대는 신분 제도로 인간이 구분되는 계급사회였다. 크게는 법제적으로 신분이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지만 실제는 양인이 다시 양반, 중인, 상민으로 구분되었다. 결국 천인을 포함하면 네 범주의 신분계층이 존재하게 된다. 저마다의 신분에 따라 사회적인 처우와 역할이 달랐다. 신분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는 두터운 벽이 있었다.


이렇듯 엄격한 신분 사회이면서도 남존여비 문화가 팽배한 조선에서 한 때 천인 출신이자 여성인 만덕이 성취한 상업적 성공은 예사롭지 않다. 상거래에 대한 남다른 통찰과 물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안목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팔고 사는 때를 알고 적기에 매매를 결단할 수 있는 과단성과 뱃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상거래 업무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은 덕스러운 심성이 심연에 굳건히 자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막대한 부를 소유했지만 검소하게 생활했고, 급기야 이웃이 곤궁에 처했을 때 기꺼이 통 큰 나눔을 실천한 것도 이러한 덕스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덕 정신은 베풂의 덕이며 나눔의 덕이다.


제주도에는 김만덕의 나눔과 봉사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나눔쌀 만섬 쌓기 제주조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쌀 모금 운동을 펼쳐 모금된 쌀을 지역 아동센터나 생활 시설, 복지관 등 물품이 필요한 그늘 진 곳에 전달하고 있다. 만덕의 베풂과 나눔의 실천을 전도민 차원으로 전국가 차원으로 승화하고자 한다.


만덕의 베풂과 나눔의 바탕에는 도전 정신이 있다.

만덕은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고 기녀가 되는 불우한 환경에 굽히지 않았다. 여성은 한갓 남성의 보조자로 머물던 시대의 한계에 굴하지 않았다. 불행한 여건, 불합리한 사회 규범과 맞서며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고 개척했다.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이같은 삶의 역동성은 안주된 현실을 박찰 때 나온다. 쉬이 체념 타령하지 않는 도전 정신에서 나온다.


누가 말했던가.

“시도하다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

시도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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