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끄러운 엄마이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다
인구가 줄고 있다. 노령화가 되어간다. 평균 나이가 점점 더 높아지고 좋아진 의료 기술과 한국의 의료보장 시스템 덕분에 우리는 '죽고 싶어도 살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죽고 싶어도 살 수밖에 없는 세상,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어요.
죽고 싶어도 주위 사람들이 날 살리고 의료 시스템이 날 살리는데 우리나라는 안락사 허용 국가도 아니다. 죽고 싶어도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모든 나라들 마다 각자의 국민성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국민성은 너무 '빠르다'는 것과 '비교를 좋아하는 것',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행복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돈이 많은 사람이 되라고 배운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빠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힘껏 달려야 하고,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주위를 과도하게 둘러보아야 하고, 특이하다고 손가락질받지 않기 위해 나의 특별한 모습들을 숨겨야 하고,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배우고 또 그렇게 행동한다.
느리게 행동하고 빠르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
느리게 행동하되, 빠른 생각을 한다. 내가 만나 본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빠르기만 하면 체하기 십상이고 너무 느리면 뒤쳐진다. 느리게 행동하고 빠르게 생각하는 것이 곧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는 항상 느려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일 때의 우리들은 한 살이라도 먼저 학교에 들어가서 일찍 배우자고 하다가 남들보다 뒤처져서 더 큰 고통을 받기도 했고, 말이 느리거나 걸음이 느리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기도 했고, 학습이 느리다는 이유로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빨라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무 빠른 아이들은 항상 특이하다는 말을 들으며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피아노를 정말 잘 치는 아이, 수학에 엄청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 그림을 신기하게도 잘 그리는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등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은 주변의 부러움과 시샘의 시선을 동시에 받고는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부모가 아이의 능력을 믿어주고 적정한 뒷받침을 해준다면 아이는 그 분야에서 더 큰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유명한 운동선수의 부모님의 뒷받침이나 아이를 예술가로 키우기 위한 부모의 피나는 노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아이를 스타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내 아이는 왜 스타가 아닌 것인가! 누구의 딸, 아들은 그리고 저 신문에 티브이에 나오는 저 인간들은 저렇게 성공했는데 왜 내 자식은 이 모양인가!라고 말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당신의 노력은 잘 알겠으나 당신의 아이의 입장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나는 '부모님이 시켜서' 진로를 정하게 된 친구들의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었다. '엄마가 하라고 해서' 했다면서. 나도 엄마를 한탄했던 적이 있다. 왜 내 진로는 생각해주지 않고 '좋은 대학에 가라'고만했냐고. 사실 뒤돌아보면 엄마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려고 최대한 노력했던 것임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 아이는 부모의 탓을 할 수밖에 없다. 진짜 엄마가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진짜 당신이 하라고 부추긴 것에 아이가 제대로 따라오지 않는다고 아이 탓을 하는 것은 부모의 욕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더 큰 사람이 될 수도, 그렇게 해서 더 큰 성공을 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면 어떨까?
나는 20대 후반이고 미혼이며 애인도 없고 아이도 없다. 내 주변에는 20대 초반부터 30대 중후반까지의 사람들의 대부분의 지인인데,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내가 미혼이어서 미혼인 사람들과 더 가까워진 경향도 있기는 하지만, 결혼 평균 연령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확한 수치를 가져올까 생각도 했지만 정확한 수치는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겐 목줄만 된다. 아무튼 다들 결혼이 늦어지고 있다. 결혼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를 점점 더 늦게 낳거나 낳지 않게 된다는 말이 되고, 결국 이런 사회 구조는 우리나라를 '쇠퇴하는 사회'로 만든다. 오래 사는 것은 좋지만 나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이나 정신을 가지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은 사실상 괴로움에 가깝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데 그 이유가 너무 빠르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내가 엄마가 된다면..?!
그래서 나는 남들이랑 비슷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지는 않다. 사실, 부끄러운 엄마이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다. 아직 결혼을 해야 하기엔 어린 나이라고 나에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네 나이쯤이면 결혼을 곧 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결혼을 해야 한다며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고, 최대한 결혼을 늦게 하라며 인생을 즐기라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결혼을 하게 될지 혹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예전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남편은 사실상 남이라고 생각한다.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겠지만 남편도 불완전한 한 명의 인간일 수밖에 없다. 내가 바로 서야 남편과 함께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은 결혼을 할 나이도, 아이를 낳아야 할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2-30대의 흔히들 결혼 적령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사람들은 더욱 적게 결혼하고 더욱 아이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나도 작년쯤 까지는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하고 무조건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주변의 많은 친구에게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무조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거야'라고 말을 하는 친구는 정말 드물었다.
출산이 고통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결혼을 하라면서 고통스러운 사회를 물려줬다고 말한다면 너무 젊은 사람들을 위한 말일 것이고, 지금 잘 살고 있으면서 결혼도 안 하고 놀기만 하냐고 말한다면 너무 기성세대를 위한 말일 것이다. '젊은이'를 대변하는 한 사람으로 하고 싶은 말은 출산이 고통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가운데 젊은 사람들은 그 속도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기성세대는 그 속도에 질려버려서 더 이상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어한다. 기성세대의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20살의 대학 신입생을 보면서 참 어리다고 생각할 수 있고 30대 이상의 누군가는 열정적인 나의 글을 보면서 참 어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린 사람들이 더 기성세대와 화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기성세대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붙잡기 위해 발이 떨어져라 달리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을 들어줘야 한다. 난 항상 위아래를 생각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배워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어른에게서는 지혜와 경험을, 아이에게서는 순수함과 창의성을 배우면 된다. 출산이 고통이 되지 않는 사회는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이다. 우리는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진짜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아이들을 더 낳을 것이고 그게 우리 사회에도 결국 더 큰 변화의 씨앗이 될 것이다.
당신의 다음 세대를 위해 당신은 어떤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가? 나는 부끄러운 엄마이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다. 부끄러운 엄마일 때도 있을 것이고 자랑스러운 엄마일 때도 물론 있을 것이다. 호시절도 고통의 시절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겪었던 고통을 나의 아이에게도 분담하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괴롭다. 당신들은 결혼을 하고 그렇게 많이 이혼했으면서 우리는 왜 결혼해야 하는가? 당신들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살게 가만히 두지 않았으면서 우리는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물론 모든 이혼에도, 모든 육아에도 명과 암이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나이다. 하지만 잘 알아도 두려운 것을 어쩌나. 나는 부끄러운 엄마이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