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른이 아니에요
10대였을 때는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예뻐지고 싶었고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20살이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무리에 속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자발적인 아웃사이더가 된다.
20대 초반을 지나면서 20대 중반이 되어서는 내가 두각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었고 그 분야에서 사람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끌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20대 후반이 되니 아이가 되고 싶고 더 이상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 이상의 아름다움에는 도달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어떤 사람이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 쪽에 더 가까웠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이끌기에는 어린 나이다.
사실 난 누군가에게 이끌려가고 싶은 사람이다. 쎄 보이는 척을 하지만 사실은 약한 사람이고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눈물을 훔치고 다시 문 밖으로 나와 웃기도 했고, 그렇게 살지 말라는 상사의 잔소리에 사무실에서 부들부들 떨며 분노의 눈물을 한 방울 보인 적도 있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를 이끌면서 누군가에게 눈물이 떨어질 만큼 못되게 굴었던 적도 있다.
과오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근데 자꾸 과오에 집착하게 되기는 한다. 잘못했던 일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은 세상 어느 일 보다 참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죄인이라고 하기엔 내가 잘한 일들 또한 많다. 그리고 과오에 집착한다는 것은 미안함을 알고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엄청나게 뻔뻔한 부류의 인간들은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뿐더러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빠른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행로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일만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명을 할 필요가 없는 인생. 그렇다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다. 사소한 실수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저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면 된다. 내가 잘못한 이에게 사과를 한다면 더 좋겠지만 사과까지 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이 잘못인지 인정하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나는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었는가. 참 부끄러운 일도 많이 하고 실수도 많이 했다. 그런 실수들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쯤은 이제는 알지만 그래도 실수하기가 싫다.
누군가 나를 생각했을 때 함께여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묘비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줬던 사람이라고 적혔으면 좋겠다. 당신의 묘비에는 어떤 글을 적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