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려견의 죽음을 생각하며 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댕이는 죽음 따위가 뭐냐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옆에 와줬다

by Lydia Youn

나는 엄마를 닮았고 우리 강아지는 나를 닮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사실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닮아버렸다.




반려견의 문제는 결국 주인의 문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국가가 법으로 정해놓은 성인이 된 나이 이전에는 내 잘못 역시 엄마, 아빠의 책임이었다. 반려견은 성견으로 자라도 반려견으로 우리 집에 사는 이상 언제까지나 나의 아이이기 때문에 내 책임이다.


댕이의 나쁜 습관은 자신의 꼬리를 무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거나 기분이 나빠지면 스스로 빙글빙글 돌면서 꼬리를 문다. 심각하게 피가 날 정도로 물어서 병원을 다녀온 적도 몇 번 있다. 입양한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래서 그 문제를 고치려고 갖은 노력을 했었다.


알아낸 병명은 '플로팅 림 신드롬'.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극단적 불안 증상으로 특별한 이유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인은 생후 2개월 이내에는 모견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어야 했는데,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나고 샵에서 팔리는 강아지들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길 수 있다고.




댕이는 우리 가족의 세 번째 반려견이다. 첫 번째 반려견은 내가 중학생일 때 할머니네 동네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버려진 강아지였던 글로리. 글로리는 한쪽 다리를 쓰지 못했었는데 아마도 그 이유 때문에 버려진 것 같았다. 성견인데도 몸무게가 1kg 정도밖에 나가지 않아서 다리 수술을 하기에도 위험하다고 들었다. 글로리는 성격이 엄청나게 좋았는데, 우리 집에 오는 손님에게 짖는 정도 말고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킨 적이 없다. 글로리는 우리 가족과 7-8년 정도 살다가 하늘나라에 갔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그리고 너무나 조용하게. 난 처음으로 맞이하는 반려견의 죽음에 너무 무서워서 죽은 글로리의 곁에 가지도 못하고 며칠을 울기만 했고, 동생은 글로리가 죽은 것을 알고는 바로 달려가서 글로리를 끌어안고 울었다.


두 번째 반려견은 대학 시절 유기견 보호소로 봉사를 갔다가 입양하게 된 라우니. 글로리를 키우고 있을 때라 평소에도 유기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대학 교양수업의 팀 과제 자유주제를 유기견과 관련된 내용으로 정했고, 그래서 처음으로 유기견 보호소에 갔던 날에 입양을 했다. 라우니는 그 보호소에서 체구가 가장 작고 가장 죽어있는 것 같은 아이여서 너무 불쌍한 마음이 들어 데려왔었다. 봉사를 한 뒤에는 샤워를 계속해도 며칠 간은 보호소의 강한 소독약 냄새가 몸에서 떠나질 않았고, 유기견 보호소는 그 후로 다시 가지 않았다. 라우니 역시 너무 착한 아이였는데 라우니는 너무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짖지도 않았다. 라우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오면서는 노화 때문에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했었다. 라우니가 앞을 볼 수 있었을 때 내가 자전거 앞 바구니에 라우니를 태우고 돌아다니는걸 라우니가 좋아했던 것 같아서, 라우니가 눈이 멀었을 때도 자전거 앞 바구니에 라우니를 태웠었는데 동공이 흰 눈 사이에도 라우니가 좋아하던 모습이 보였다면 내 착각이었을까. 라우니를 땅에 내려놓자 앞이 보이지 않는 라우니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라우니의 죽음은 내가 맞이하는 반려견의 두 번째 죽음이라 좀 더 담대할 수 있었다. 담대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아프긴 했지만, 전보다는 나았다. 라우니는 글로리와 달리 죽기 며칠 전부터 아예 움직이지를 못했었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라우니의 죽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라우니가 죽던 날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이다. 며칠 간을 가만히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숨죽여있던 라우니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라우니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큰 소리를 냈던 것 같다. 평소에는 절대로 짖지도, 큰 숨을 쉬지도 않던 내 작은 아이가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소리를 내는구나. 라우니는 몇 시간을 숨을 헐떡이더니 서서히 죽었고 나는 죽어가는 라우니를 계속 바라봤다. 엄마가 옆에 있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라우니가 살아온 나날들이 내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지옥이었을지언정, 혹은 우리 가족과 내가 라우니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이 많을지언정, 죽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함께이고 싶어서. 라우니는 행복하게 죽었을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겠지. 라우니의 굳어가는 몸이 무서워서 꼭 끌어안고 있던 온기를 기억하겠지.




가족은 두 마리의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다시는 강아지를 데려오지 말라고 했었고 라우니가 죽은 뒤 2년간은 어떤 개도 키우지 않았다. 하지만 떠나는 강아지에 대한 두려움보다 새로운 강아지를 맞이하는 행복을 더 많이 생각했던 나는 기어코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었다. 댕이는 말티푸인데 말티즈와 푸들이 섞인 강아지이다. 나는 이전부터 혈통견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믹스견을 키우고 싶었고, 댕이는 정말 예뻤다. 말티푸를 너무 키우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가정견 혹은 켄넬에서 낳아진 강아지'만 팔고 있다는 샵에서 댕이를 샀다. 그때는 그 말을 믿고 샀지만 아마도 댕이는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난 아이 같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유기견과 강아지 공장에 대한 문구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난 유기견도 키워봤고 샵에서 파는 강아지도 키워봤기 때문에 그 마음에 더 절실히 공감한다. 댕이가 우리 가족이 되어 내 옆에 지금 있는 이유는 내가 여러 샵에서 고르고 골라서 샀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 애견샵이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애견샵을 없앨 수도 없다. 인간은 나쁘다.


사람들은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중에 인간이 가장 우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물을 대하는 것을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를 대하듯 대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나의 반려견을 때리거나 해를 가한 적은 없지만 댕이가 너무 힘들게 했을 때 입양을 보내고 싶었던 적이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기 때문에 나도 나쁘다. 동물병원의 수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해본 결과 댕이는 나를 너무 의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혹은 내가 댕이에게 너무 좋게만 대해줬기 때문에 나를 자기와 동급으로 보는 걸 수도 있다. 나는 그 후로 좋게만 대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댕이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앉아, 엎드려, 손 같은걸 가르치면서.




좋게만 대해서 좋은 강아지가 될 수 있고, 좋게만 대우해주고 대우받아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좋게만 행동해서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는 곳에 살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는 아직 어린 걸까.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게 어른이라면 난 법으로 정한 성인이 된 나이를 훌쩍 넘겼음에도 여전히 어른이고 싶지 않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를 하는 모임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보는 것조차 힘들던 그곳에 다시 가기로 했다니, 어른이 되고 있네. 눈물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곳에서는 어른인 척을 해야 한다.


가끔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주 댕이의 죽음을 생각한다. 댕이가 나를 떠날까 자다가도 크게 댕이의 이름을 불러본다. 댕이는 그럴 때마다 내 옆에 와줬다. 죽음 따위가 뭐냐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댕이는 나를 닮았다. 나는 댕이를 닮았다. 나는 내 옆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댕이의 죽음을 생각하며 내 꼬리를 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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