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술고래는 언제라도 다시 술고래가 될 수 있나 봐요

술 좋아하는 여자

by Lydia Youn

“술 진짜 안 좋아하는 거 맞아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녀가 의심스러워서 물었다. 소주 한잔을 짠 하고 벌컥 들이키고는 왠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어리고 찡긋 움츠러드는 미간에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껴버렸기 때문에.
“엥? 제가 주량 반 병이라고 했잖아요.”
“무슨, 반 병?”
“진짜로 반 병이에요.”
“진짜로 반 병 아닌 거 알아요.”
“술 좋아하는 사람 좋아해요?”
“왜요? 저도 술을 좋아하는데 당연히 술 좋아하는 사람이 좋죠. 같이 마실 수 있잖아.”
“...”
말이 없다. 아마도 술을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이성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여자 같다. ‘술 좋아하는 여자는 별로야’라는 말을 듣고 이별을 한 적이 있던 걸까.
“그냥 마셔요. 반 병보다 더 마셔도 돼요. 두 병 마셔도 되고요. 집은 잘 보내줄게요.”
“그냥 마셔요?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오! 그래, 그게 더 좋다!”




“전에 안주 없이 술만 마시다가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어요. 어릴 때죠. 지금은 안 그래.”
지금은 안 그렇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아 보인다. 누가 알까. 응급실에 실려갔을지언정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술을 마실 때가 그녀에겐 더 좋은 시절이었을 수도 있다.
“응급실까지는 좀 그렇고.. 택시 태워 보내 줄게. 집 가요, 이제.”
“진짜, 이런 남자는 처음 본거 알아요?”
“어떤 남자요?”
“소개팅하러 나와서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셔본 것도 처음인데 친구랑도 잘하지 않던 옛날 얘기도 하고요. 얼마 만에 남자랑 둘이서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술을 마셔본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왠지 얘기 들어주고 싶었어요. 사실 남 얘기 그렇게 잘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정말요?! 진짜예요?”
“그렇죠. 내 삶도 바쁜데 남 얘기를 뭐하러 하나하나 듣고 있어요. 그런 거 다 듣고 살면 골치 아파요.”
“전 오빠가 남 얘기를 정말 잘 들어주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아무 얘기나 들어주는 것도, 아무랑이나 이렇게 술 마시는 것도요.”
“옛날 술고래는 언제라도 다시 술고래가 될 수 있나 봐요. 우리, 5병이나 마셨어.”
“택시 타고 집에 갈 시간이라니까요? 응급실 가기 싫으면요.”
“응급실 가면 안 되겠죠?”
“그건 더 친해지면 보내줄게요. 오늘은 택시.”
“알겠습니다! 응급실로 보내주실 오늘의 택시 잡이꾼.”
“택시 잡이꾼이 뭐예요? 어플로 부를 거예요. 주소 불러줘요.”
“어플로 불러도 손으로 흔들어서 불러도 택시 잡이꾼 맞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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