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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Jun 07. 2022

당신이 우리 집에 두고 간 물건들이 내 숨통을 조여온다

"난 그냥 남들이 뭐라든 널 사랑한 죄밖에 없어. 그것만 알아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당신 곁을 떠났었다. 당신은 나를 향해 너 이제 진짜 미친 것이 아니냐며 치를 떨었다. 그래. 남들이 뭐라든 당신을 사랑했으니 미친 것이 맞고 미쳐야 사랑하는 것이 아니던가. 난 당신에게 미쳐있었다.


 사실 당신과의 첫 만남부터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기도 했고 이렇게 나를 끌리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도 싶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끌려가고 싶은 마음, 당신이 누구이든 상관없는 마음, 그게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었다. 당신과는 모든 것이 좋더라. 이 말을 당신에게 할 수가 없는 것이 참 분통하다. 당신과는 모든 것이 좋았다는 그 말을 예쁘게 포장해서 했더라면 우리는 계속 함께였을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되돌려도 다시 끊어질 인연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당신과의 마지막을 미친 사람인 양 끊어버린 것도 있다. 후회는 없다. 서로의 곁을 떠났다고 해도 결코 떠나 지지 않는 우리일 테니.


 당신은 그 이후로도 나를 마주칠 때마다 미련이 가득 담긴 표정을 보내왔고 나 또한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표정을 보냈었다. 아마도 끝내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끝내고도 끝내 끝나지 않는 많은 관계들이 있다. 그중 가장 끊어지지 않는 것이 당신이라는 게 참 원망스럽다. 왜 그때의 내게 나타나서 날 이렇게 만들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당신이 없었더라고 상상해 본다면 끔찍하기도 하다.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말을 왜 당신에게 예쁘게 포장해서 해주지 못했을까.


“난 네가 불러주던 노래가 좋더라. 너 노래 진짜 잘하잖아.”

“내가 무슨 노래를 잘해..”

우리의 우스운 마지막 메시지 목록. 난 당신이 불러주던 노래가 좋다고 당신은 노래를 진짜 잘한다며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했고, 당신은 자기가 무슨 노래를 잘하냐며 나를 거절하는 듯했다. 나는 당신과 헤어진 이후로도 수차례 술을 마시고 취해서 괜히 메시지를 보냈었다.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거나 잘지내냐거나 기타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연락을 하지 않다가도 불현듯 연락을 하면 칼같이 답장을 하는 당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도 참 지긋지긋해 보일 것 같다. 만나면 불타올라 재가 되고 말지만 밋밋한 타인은 만날 수 없는 우리. 당신을 만나고 나서는 모든 타인이 정말 밋밋하다.


 자극적인 당신. 당신은 음식도 꼭 자극적인 것만 먹더라. 언젠가 볶음밥을 시키려는 나를 보고는 심심한 맛의 소고기 볶음밥을 시키라고 추천해준 당신. 내 입맛은 어떻게 또 기억하는지 난 당신이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에 사랑을 느끼고는 했다.


 사랑하는 당신. 사실은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말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못해준 것도 많았고 오해를 만들기도 했고 잘못한 것도 많다. 그래서 당신이 더 사무치게 그립다. 잘해줄걸.. 더 잘해줄 걸.


 항상 무기력하고 우울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당신. 당신이 하는 일이 제발 잘 풀렸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울먹이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웠지만 이젠 웃는 모습만 봤으면 한다. 제발 어느 곳에서든지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


 그리운 당신. 나와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하던 당신. 친구와 가족들에게 나를 자랑하던 당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모두들 앞에서 떠들던 당신. 그리운 당신.


 당신이 우리 집에 두고 간 물건들이 아직도 내 숨통을 조여 온다. 당신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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