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 강요받는 것이 싫다. 누군가가 "넌 이렇게 좀 해야 돼."라고 말을 하면 속으로는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요구를 함부로 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 또한 남에게 강요 아닌 강요들을 하면서 살아왔던 것도 같다. 내 딴에는 강요가 아니었지만 상대방이 듣기에는 강요처럼 들리는 말들 말이다. 그런 류의 조언을 해줬던 사람들이 나를 위한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줬다는 마음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내 속도 모른 채 저런 말을 해버리면 내 모든 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남이 보기에 어떻게 보일지는 몰라도 난 스스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해왔다.
최선의 노력이 최상의 노력이 아니라는 것쯤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나는 최상의 노력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최선의 노력들이 가끔은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고, 가끔은 최악의 결과들을 가져오기도 했었다. 난 노력이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더 노력했던 것은 아마도 겉으로 보이는 노력보다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노력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남들 앞에서 가끔은 매우 게을러 보이기도 했다.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이긴 하고, 계획이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기는 한 느낌 정도였을 것 같다. 내 삶의 결과물들을 돌아보자면 그렇다. 지금의 나는 딱히 내가 생각해왔던 나이의 내가 꿈꾸던 멋진 나는 아니다.
하지만 삶의 결과물로만 평가받을 수 없는 것이 한 인간의 인생이 아닐까.
내가 삶에서 끝까지 노력해서 마침내 결과를 얻어낸 것을 생각해보자면 사실 몇 개가 없다. 어느 한 길만 꾸준히 팠던 스타일도 아니었고, 전공에 맞춰 직업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고,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 이런 삶을 사는가' 하면서 고민을 했던 적이 많다. 왜 나는 제대로 된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까 하면서.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계획대로 짜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드문 것이다. 계획대로 모든 것을 이뤄간 부류의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 그들이 말하는 행복과 내가 말하는 행복이 다른 부류의 행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데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결과가 잘 나오면 그저 좋다. 어떤 사람은 결과와는 상관없이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에 더 관심이 많다. 어떤 사람은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결과가 좋지 않은 사람을 욕한다. 어떤 사람은 결과가 좋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질투한다. 어떤 사람은 타인의 결과를 보고 분석하며 나의 결과를 위해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결과 가운데 어떤 과정을 밟아 왔느냐에 집중한다. 이 이상으로 더 많은 부류를 세세하게 나누자면 분류하기도 힘들 정도의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고, 다수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산다. 여러 가지 마음들이 혼재된 상태에서 남들을 평가하고 또 남들에게 평가받고는 하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평가보다 나 자신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고 싶다.
남들이 나를 칭찬해주는 것은 참 좋다. 하지만 정말로 더 좋은 것은, 남들의 평가를 떠나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느낄 때 이더라. 내가 나 스스로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남들의 평가보다 스스로를 더 사랑해서 자의식 과잉이 되는 부분들도 있을 것 같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보기엔 내 수준이 그저 그럴지는 몰라도 나 스스로는 만족하는 그런 것들? 가령 김치볶음밥을 잘 만든다거나, 처음 해보는 운동 들에 꽤나 소질이 있다거나 하는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말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참 사소하지 않기 때문에! (김치볶음밥이 얼마나 어려운 요리인줄 아는가?..)
나는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나는 항상 그 생각을 한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끌려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찬 류의 사람들을 동경하는 편이다. 그리고 남들 눈에는 내가 자신감에 가득 찬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난 사실 나 스스로의 평가로는 나 자신이 자신감이 부족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 같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져버려서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류의 사람이 된 느낌이랄까? 일단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해야 남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고, 행복을 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기운에서 더 좋은 뜻밖의 결과들을 얻어낼 수 있는 기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감에 가득 찬 사람들은 밉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도 자신감에 가득 찬 사람처럼 보이기보다는 남을 더 배려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난 참 멋진 사람이다.
내가 자신감이 떨어지고 나 자신을 탓하고 싶을 때마다 하는 행동이 있다. 나를 잘 알고 좋아하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내 고민에 대해 상담하는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네가 무슨 그런 고민을 하고 있냐고 말하면서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말라는 말을 해준다. 나를 잘 모르는 남들이 "넌 이렇게 좀 해야 돼."라고 말하면 듣기가 너무나도 싫은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왠지 듣고 싶어 지는 것이다. 대신 진솔하게 말해야 한다. 최대한 진솔하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에서 세명의 좋은 친구만 남아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친구란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말해도 묵묵히 옆에서 모든 것을 들어주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위로해주는 친구이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전화나 메시지를 한다면 몇 시간이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좋다. 사실 내 자신감의 원천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내 삶은 가장 바닥에 가까웠다.
나는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오기 위해서 쪽팔림을 무릅쓰고 나와 비슷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거나,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어떻게 하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올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만 했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었는데, 고민을 상담해주는 카페 같은 인터넷 카페에 가입을 했었다. 너무나 쪽팔려서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고민 때문에 인생이 너무나도 괴로웠을 때, 아무에게도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누군가가 좀 들어주고 조언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입했던 곳이다. 그곳은 내가 5년 전쯤, 삶에 대한 아무 의욕이 없었을 때 가입했었다. 그 카페에서 알게 된 두 명의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삶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던 친구였고, 다른 한 분은 그 카페에서 상담사라는 직위를 가지고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솔루션을 내주시는 역할을 하시던 분이다. 난 그 두 사람과 아직도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다. 나처럼 의욕이 없던 친구는 자기와는 맞지 않는 전공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 일본 취업 연계가 되어있는 대학교에 다시 입학해서 일본으로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 과에서 좋은 성적이 나와서 일본 취업이 확정되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취업이 미뤄진 상황이다. 지금 당장은 고난이겠지만 그 친구의 앞날은 창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정확한 일을 찾아 노력했고, 그 결과를 보고 있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상담사 분은 나와 처음 알게 되었던 때에는 한국에서 일을 하시다가 몇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코로나로 경제가 좋지 않은 와중에도 미국에서 하시고 싶은 일들을 하시면서 멋진 삶을 보내고 계신 것 같다. 아직도 고민이 있을 때는 그분에게 고민을 말하고는 한다. 가끔은 너무 어릴 적 내가 했던 고민상담이 쪽팔려서 숨고 싶기도 하지만, 아마 그분이 모든 것을 기억하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분에게 상담을 받은 사람은 몇 백 명 이상일 것이기 때문에!
강요받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진심 어린 조언자가 필요하다.
내가 보통 글을 쓸 때에는 딱히 별다른 주제를 생각하지 않고 머릿속의 생각들을 그대로 늘어놓는 식이다. 그래서 글이 중구난방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독특함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만의 무기일 수도 있겠다. 나는 보통 하고 싶은 말들을 이것저것 늘어놓은 다음에 그것에 맞는 제목을 찾아서 마지막에 제목을 붙이는 타입이다. 하지만 오늘은 강요받지 않는 삶이 너무나 간절해서 제목에 '강요받지 않는 삶!'이라는 멋진 글자를 먼저 넣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글을 쓰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강요받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진심 어린 조언자가 너무나도 필요했던 것 같다. 진심 어린 조언자는 곧 나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나를 다그치거나 채찍질하지 않고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들. 그게 곧 진정한 애정이 아닐까. 너무 거창한 것은 아니다. 상담사 자격증이 있을 필요도 없고, 나를 사랑해서 무언가를 사다 바치는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나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어떤 이! 내가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어도 좋고, 책이어도, 연예인이어도 좋다. 연예인의 팬이 되는 이유가 이런 이유에서 일 것 같다. 연예인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좋은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로봇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인간적인 면에 사람들이 끌리고는 한다.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일지언정 나를 위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유명인이고 나를 몰라도 상관이 없다. 물론 나를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가 나의 말을 들어줄 수도 있지만 그들도 그들이 삶이 바쁘기는 하다.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행복한 삶에 가까워지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너무 거창한 꿈이니 작은 것부터 해보자면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나의 조언자를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 분으로 잡았다. '연금술사'라는 스테디셀러로 유명한 작가분인데,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결국 사랑과 행복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상한 여자의 이야기를 쓸 때에도, 특이한 소년의 이야기를 쓸 때에도, 그의 글에는 사랑과 행복이 숨어있다. 나도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나의 롤모델이자 내 맘 속의 조언자인 것이다.
최근에 나의 조언자로 삼고 있는 한국인은 '이효리' 님이다. 너무나도 멋지지 않은가. '이효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냥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그녀가 걸어왔던 길이 가시밭길이었든 꽃밭이었든 그저 정말 멋진 사람. 가시밭길에서도 '나, 가시에 찔려서 아픈데 뭐 어쩌라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은 멋진 사람. 나는 가시에 찔려서 가시가 내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것 같을 때 그녀의 영상을 찾아본다. 그러다 보면 '내가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이 그녀의 머릿속에 이미 있는 것 같다! 정말 멋져!'라는 깊은 동감을 하게 되면서 나의 고민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민이 없는 삶은 없다. 강요받지 않는 삶 역시 없다. 아무리 멋진 누군가라도, 아주 사소한 고민과 강요일지라도, 모든 인간은 그 안에서 씨름하며 살아간다.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어찌 보면 너무나 허무맹랑한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님을 마음 깊이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모두가 겪고 있는 고민이라고 해서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는 없다. 강요받지 않는 삶을 위해, 행복으로 걸어가기 위해 행진하자.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