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오랜만에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만은 전화를 끊지 말아 달라는 당신의 말에 나는 지금까지도 잠든 당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습니다. 당신에게 썼던 마지막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우리의 마지막이 보이는 것만 같아 그 마지막 순간을 기어코 붙잡으려 썼던 글입니다. 그 글처럼,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었다면 저는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당신의 제안에 당장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차고 당신에게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당신이니까요. 차라리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이었다면,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게 더 행복한 마무리였을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당신에게 달려가서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내면 되니까요. 마지막의 너머를 함께 두려워하며 기다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세상의 마지막 날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과의 이별이 아직도 괜찮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말해주었던, 우리가 알고 있는 헤어져야 했던 이유들보다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요. 그 모든 이유와 상관없이 당신을 많이 좋아했다고요.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 당신은 나에 대해 어떤 마음이냐는 말,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했던 제 마음은 시간이 조금 흐른다고 해서 쉬이 없어질 마음이 아니었나 봅니다. 전과 똑같은 마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좀 더 멀리서 지켜보았으니까요. 전에는 어떻게든 당신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했으니 당신이 없는 삶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당신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제 선택보다는 당신의 선택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나에 대해 어떤 마음이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물론 궁금합니다. 당신도 나를 여전히 사랑하는지. 당신도 나만큼 나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모르는 당신의 마음까지 묻는 것은 당신을 편치 않게 할 수도 있으니 저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은 그보다는 더 어려운 말이겠지요. 오늘은 세상의 마지막 날이 아니니까요. 헤어져야만 했던 모든 이유를 나누어 짊어지고 가기에는 힘들어하는 당신이 눈에 밟힙니다. 제가 당신에게 짐이 되면 안 되니까요. 제가 더 짊어진다 하더라도 결국 당신에게도 그 무게가 전해질테니까요. 고롱고롱, 당신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아침까지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어느 날의 전화들이 떠오릅니다. 마지막인 듯 사랑했던 나날들이 스쳐갑니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밤이어도 참 좋을 것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전화해 주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