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을 찾아 떠나지 않아도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한국의 모든 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시기는 바로 벚꽃이 피는 봄 시기이다. 이쯤이 되면 그냥 벚꽃만 바라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매번 ‘올해도 벚꽃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 시기가 지나는구나’하고 항상 아쉬워하며 지났었다. 바람만 불어도 지고, 비만 내려도 모조리 떨어지기 때문에 짧은 기간 안에 무조건 봐야만 한다는 희소성이 그 시기를 항상 기다리게 했던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벚꽃을 보기 위한 목적을 최우선 여행 목표로 두고 혼자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오직 예쁜 벚꽃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혼자 무작정 떠났던 여행. 근데 내가 시기를 살짝 늦게 잡은 것인지 혹은 그 해에 벚꽃이 살짝 빨리 폈던 것인지, 내가 도착한 시기에는 벚꽃이 지고 있는 기간이었다. 예쁜 벚꽃들을 보기는 봤지만 만개할 때 보지는 못해서 생각만큼 화려한 장면을 보지는 못했었다.
그때 벚꽃을 보러 간 일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해가 진 어느 날 저녁 어느 공원에 갔다가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나무를 본 장면이다. 나의 팔로는 몇십 번을 감아야 겨우 감싸질 것 같이 보이는 엄청나게 두터운 나무. 나무 주위에는 가로등이 있어서 나무에서 자라난 초록색 잎이 하늘하늘 밤바람에 날리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바라만 봤다. 벚꽃은 못 봤지만 벚꽃보다 더 아름다운 나무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근데 알고 보니 그 나무가 바로 벚꽃나무였다. 벚꽃은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자라서, 꽃이 지고 나면 이파리만 남는 나무이다. 그래서 내가 본 그 나무는 벚꽃이 거의 다 떨어진 채 초록 잎만 남은 나무였는데 그게 그렇게 예뻤던 것이다. 나는 벚꽃을 보러 갔지만 사실 어쩌면 벚꽃이 핀 가장 화려한 모습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꽃을 피우고 떨궈낸 벚꽃나무를 본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화려한 장면은 오랜 기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만 내 옆에 오래 머물러줄 수는 없다. 화려함보다 중요한 것은 꽃을 피우고 떨궈낸 자리에 돋아난 잎이 아닐까. 꽃을 보러 갔지만 잎을 보고 감동했던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화려함만을 쫒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올 해는 코로나 때문에 벚꽃 축제가 모두 무산되고 벚꽃을 보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들도 다수가 폐쇄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 앞의 벚꽃을 보며 즐거워한다. 사실 먼 곳에 가지 않아도 예쁜 벚꽃은 있었다.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곳의 벚꽃 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우리도 그렇다. 사실 먼 곳을 찾아 떠나지 않아도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마스크를 낀 채 집 앞의 벚꽃 길을 산책하는 노부부도, 하늘을 향해 핸드폰을 치켜들고 떨어지는 벚꽃잎을 포착하는 여학생도, 벚꽃나무를 배경으로 그들의 오늘을 셀카로 남기려 노력하는 어떤 커플들도, 벚꽃과 상관없이 그저 신나 보이는 어린아이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