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무 사랑하면 죽였고, 적당히 사랑하면 살려뒀어요.
저기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이해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그냥 내 얘기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될 거라는 거, 나도 알아요. 그러니까 이해를 하겠다느니, 이해를 해달라느니 그런 종류의 말을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예요. 그냥 입 닫고 들어 달라는 말이요.
처음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남자였어요. 정말 엄청 많이요. 엄청 엄청 많이요. 엄청 엄청 엄청 많이요. 엄청 엄청 엄청 엄청 많이요. 헤헤. 엄청 많이 사랑해서 죽였다고 하면 무섭나요? 안 무서우려나. 무서우라고 하는 말이기도, 무섭지 말라고 하는 말이기도 해요. 궁금해요? 더 말해줄까요? 사실 더 듣고 싶지 않다고 해도 계속 말할 거거든요. 그냥 들어주세요. 아뇨, 그냥 읽어.
난 혼자인 게 편한 사람이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잖아. 엄마가 탯줄을 끊고나서부터는 나는 혼자였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았거든. 탯줄이 끊어졌잖아. 누가 나한테 엄마의 뱃속에서 내가 받았던 온전한 사랑을 줄 수가 있었겠냐고요. 그래서 혼자인 게 편했어요.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산부인과 의사라는 인간은 엄마에게 가위를 기어코 쥐어줬고 엄마는 엄마 손으로 직접 '우리'의 탯줄을 잘랐어요. 왜 그랬어요? 기억이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엄마 뱃속에서는 아마도 온전한 인간이지 않았을까요? 난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불완전해졌어요. 그렇잖아.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 어디 있어요?
엄마가 이 책을 읽는다면 슬플 거 같아요. 나도 감정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거든요? 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같잖은 단어들로 저를 속단하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별로 듣고 싶지 않거든요. 내 눈에는 나보고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정신병자니 하는 당신들이 더 역겹거든요. 왜요? 불편해요? 불편하라고 하는 말이에요. 나는 더 불편했거든.
불편해서 죽였다고 하면 나를 욕할 건가요? 뭐, 욕하든 말든 이제는 별 관심도 없다고 하면 다들 나를 죽이려 들겠죠. 피해자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다들 내가 사랑해서 죽인 거지만요. 왜요? 헤헤. 사랑해서 죽인 거 맞다니까요? 사람 죽이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고 있어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사람들 많다는 거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당신도 한번쯤은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무서워서 죽지 못했잖아요. 혹은 죽고 싶어서 칼을 그었다가 죽지 못했잖아. 이런 말 하면 무서워요? 무서웠으면 좋겠다. 무서워하는 거, 귀여워요.
이런 말 여기에다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도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이걸 다 쓰고 나서 출판사에다 내 책을 세상에 발표해달라고 하면 나는 경찰에 붙잡힐까요? 아니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까요?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방구석에서 빌빌대고 있을까요? 내 방은 어디 구석진 습한 공기가 가득한 창문도 열 수 없는 반지하일까요? 엄청나게 높은 주상 복합 빌라의 꼭대기층 펜트하우스일까요? 당신 딸이 살고 있는 원룸촌의 동네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앞집에 살까요? 궁금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쓴 말이에요.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경찰은 사실 무섭지가 않아요. 더 무서운 건 경찰보다는 사람들이에요. 익명의 사람들. 혹시나 내가 범인 인 걸 누군가에게 들킬까 그게 조금 무섭긴 해요. 뭔가가 무서운 걸 보니 나, 사이코패스 아니죠? 아니라고 말해봐요. 아니면 맞다고 말해봐요. 사이코패스가 뭔데요? 헤헤.
내가 그 사이코패스라는 말에 상당히 집중했던 거 알아요? 그 말, 나 엄청 찾아봤어.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보고 사이코패스니 뭐니 나에 대해 떠들어대길래 엄청 찾아봤다고요. 요즘은 그 말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가 않네요.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내 행적들을 모르기 때문이겠죠. 헤헤.
처음 죽던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기억해요. 어쩔 수 없이 기억이 나는걸. 나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에요.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안다고요. 그리고 당신들이 모르고 있는 피해자의 은밀한 부분까지 나는 알고 있을 걸요? 나는 사람들이 죽을 때 하는 말에 집중했어요. 무슨 말을 하고 죽는지가 궁금했다고. 그래서 그걸 다 적어놨어요. 하나하나씩 알려줄게. 알고 싶다면 봐요. 역겹다면 보지 않아도 되고요. 처음 죽던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엄마를 보고 싶다는 말이었어요. 그 남자, 나보다도 더 불쌍해. 나보다 불쌍한 사람들은 참 흔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는 나보다도 더 불쌍했어. 불쌍하니까 죽인 거라고 하면 뭐라고 할 건가요? 어쩔 수 없어. 죽었는걸. 피해자의 엄마에게는 내가 돈도 줬어요. 알아? 아마 모를 거야. 몰라도 돼요. 그냥 줬다고만 말하고 싶었어. 어디서 갑자기 굴러온 돈이 있었다면 그 돈, 내가 준거예요. 잘 쓰셨죠?
그 돈으로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거 나도 알지만 그 돈을 받았던 그 남자의 엄마의 표정, 나 기억하거든요.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고. 그 남자는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웃긴 말이지만 진짜 천장이 찢어지는 집에서 살고 있더라고. 그 천장 내가 메꿔줬어요. 아냐고요. 모르면 말던가요. 아무튼 그 남자를 사랑한 이유는 그 찢어진 천장 때문이었어요. 나는 사람이 그렇게 가난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왜 그렇게 가난한걸가 싶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에 있더라고요. 그 사람은 항상 죽고 싶어 했어요. 나보고 그랬어. 자기 좀 죽여달라고.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아도 돼요. 나 이 글을 쓰면서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두려워요. 나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고요.
그 남자, 나를 돈 때문에 사랑했던 걸까요?
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아닌가? 내가 매력적인 사람이긴 해요. 당신들도 내 글 여기까지 잘 읽고 있잖아. 그 남자도 내가 하는 말에 쉽게 끌려오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기꾼은 아니야. 난 진심 만을 말했거든요.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알 바 없고 진심이었다고요. 그가 죽고 싶다길래 언젠가 내가 당신을 죽여줄 거라고 했더니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제발 그래 달라고 하더라고요. 죽여달라고 했다고요.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이라는 게 참 웃겨요. 그 사람의 엄마,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을 별로 사랑하는 거 같지 않았거든. 왜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을 두고 그 짓거리를 하고 다니냐고요. 그 사람 나보다도 더 미친 인간인 거 같아. 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거든요? 근데 그 여자는 더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들을 죽게 했다고 말할게요. 그 여자의 더러운 행적에 대해서는 나는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 남자를 죽인 이유는 많지만 그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그 남자가 착해서였어요. 세상은 착한 사람들이 살기 힘들거든요. 그 남자는 너무 착한데 너무 거지 같은 집에서 태어나서 너무 거지처럼 살았어. 근데 내가 그런 사람을 하나하나 다 구원해줄 수도 없잖아요. 어쩌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죽음을 주는 것뿐이었어요. 하나님은 어디 있나요? 왜 착한 사람들이 죽게 내버려 두는 거죠?
그 사람, 자살 시도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다 안다고. 아마 그 사람의 엄마고 친구고 아무도 모를걸요? 나만 안다고요. 당신, 그 사람의 죽음 앞에 나를 욕하는 댓글을 달면서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 그 사람이 살고 싶기는 했는가 고민해본 적은 있어요? 없을 거야. 그 더러운 손을 놀리는 당신들보다 착한 건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그 사람을 죽여준 나였다고요. 뭐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없잖아.
당신 앞에서 그 사람이 죽고 싶다고 했으면 당신은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건가요?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결국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행복하려고 발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당신, 눈 앞의 죽음조차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인데 어떻게 남이 원한다고 해서 남을 죽일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내가 더 착하다는 거예요. 난 원하는 걸 해줬어. 그 사람이 '진짜' 원하는 거.
음, 내가 욕심을 부린 부분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게요. 나, 욕심도 물론 부렸죠. 난 당신처럼 거짓말에 능하지 않거든요. 근데 뭐, 나도 괜히 감옥에 갇히기는 싫으니까 증거들을 확실하게 처리하긴 했죠.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사람들이 왜 잡히는지 모르겠어요. 잡히는 사람들은 이상해. 그럴 거면 사람을 왜 죽여요? 잡혀서 감옥에 갇힐 거면 사람을 왜 죽이냐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잡힐 바엔 차라리 죽이지도 않는 게 나을 거라고요. 그래서 난 잡히지 않을 온갖 방법들을 모두 고민한 후에 완벽에 가깝게 일을 처리했고, 그래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아무도 나를 잡지 못하잖아요. 경찰 아저씨, 어디 있어요?
경찰 총각, 어디 있어요? 응? 어디 있냐고요. 헤헤. 당신들, 피해자가 원했을 때 제대로 있어주는 사람들이긴 한가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신하는 게 경찰이에요. 왜? 그건 내 마음이잖아요.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열 번 째부터는 너무 아무 단서도 잡히지 않는 게 심심해서 단서들을 아주 조금씩 남기기도 했는데, 당신들은 그것도 모르더라고.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죠? 미안해요. 내가 너무 어려운 퀴즈를 냈나 봐요. 다음에는 좀 더 알려줄게요. 경찰 양반.
내가 이 전에는 글을 쓴 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난 공소시효도 지나서 뭐 떠들어대도 상관은 없지만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살인도 있거든요. 그건 피해서 말하고 있어. 왜냐? 나는 밝히고 싶으면서도 밝혀지고 싶지는 않거든. 감옥에 갇히긴 싫어요. 내가 죽음보다 무서워하는 건 감옥에요.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거든.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자유로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재미없게 사는 '척'하거든요. 내 인생은 너무 재밌는데 말이죠. 그래서 내가 죽음보다 무서워하는 게 감옥이라고요. 감옥에 들어가기 싫어!
전 트랜스젠더예요. 전 여자이고 남자예요. 아뇨, 전 여자예요. 아뇨, 전 남자예요. 아뇨, 전 트랜스젠더가 아니에요. 아니요! 전 아무도 아니에요. 저에겐 남자 친구도, 여자 친구도 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요. 연인을 죽였던 적은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게요. 내 남자 친구였거나 여자 친구였던 사람을 죽인 적은 없어요. 난 너무 사랑하면 죽였고, 적당히 사랑하면 살려뒀어요.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귀지 않고 지켜보다가 죽였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