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제가 죽이러 갈게요.
딱 두 사람한테 이 글을 보여준 적이 있거든요. 그냥 살인에 관한 글이요. 소설인 척하고요. 그랬더니 나랑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누군가는 내 글을 칭찬해줬고, 나와 너무 가까웠던 한 사람은 저보고 미쳤냐고 하더라고요. 더 듣기 좋은 말은 당연히 칭찬이었지만 나는 나보고 미쳤냐고 하는 그 사람을 더 사랑하긴 해요. 그 사람이 날 진짜로 사랑하고 있는 거 같거든요. 아닌가? 미친 글도 사랑해주는 전자가 날 더 사랑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을 죽여야겠네요. 사랑하니까요.
아직 죽이지 않은 그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요? 그는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라고 생각해서 두고두고 곁에 두고 있어요. 어, 그러고 보니 난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만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쩌죠.. 그건 아니었나 봐요. 사랑하긴 했는데.. 근데 진짜 정말 사랑해서 죽인 건 맞아요. 더 생각해보니까 아마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죽인 거예요. 나 잘했죠? 다 죽고 싶다고 말했어. 제 실수, 진짜 아니에요. 전 실수하는 사람 아니거든요. 누구 죽이는 거 진짜 어려워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사랑하지 않으면 죽일 이유가 없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죽일 이유가 없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죽일 이유가 없어요. 진짜라니까요? 저는 저에게 적어도 죽고 싶다고 100번 이상은 말했던 사람들만 죽였어요. 그래도 제가 가해자인가요? 그거 프레임 아닌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모두 가해자라는 거, 그거 프레임이에요. 우리나라는 왜 이래? 안락사도 안되잖아요. 심지어 개 한 마리만 죽어도 종량제 비닐봉지에 넣어서 버리는 게 법인 거 알아요? 뭔 놈의 나라의 법이 이래요? 미친 거 아닌가요. 전 사랑이 많은 사람이에요. 내 개를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고 싶지가 않다고요. 미쳤어요? 자기들이 미쳐놓고 왜 저보고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거죠? 전 죄가 있지만 그렇게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세상에는 저보다 더 많은 죄를 짓고도 입도 뻥긋하지 않는 위선자들이 넘쳐나거든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내 죽은 강아지를 쓰레기 봉지에 넣으라고 하던 정부가 진짜 미친 거죠.
그 인재인 친구 있잖아요. 내 글이 좋다고 했던 친구. 그 친구 덕분에 제가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하면 아마도 아무도 안 믿겠죠. 그가 없었다면 전 죽었을 수도요. 아뇨, 전 죽지는 못했겠네요. 저에겐 저같이 용감한 친구가 없거든요. 만약에 내가 내 지인이었다면 그때의 나를 죽였을 텐데. 아쉽네요. 아쉽지 않기도 해요. 그래서 살았잖아. 그래서 글을 쓰고 있잖아. 글을 쓰는 게 살인보다는 조금 더 재밌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몰래 쓰는 거기도 하고요. 그때 죽지 않은 게 아쉽지 않다는 말을 하고 보니 ‘피해자’에게 미안해야만 하는 ‘가해자’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서 그런 얘기는 더 안 할래요. 저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가해자는 아니거든요.
아무튼 그 인재인 친구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내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난 그에게 내가 사람을 ‘진짜’ 죽였다고 말하지는 않았어요. 그가 나를 신고할 수도 있잖아. 헤헤.. 무섭거든요. 감옥은 무섭다고 했잖아요.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어떤 말을 떠들어도 그게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생각하면 믿으려고 하지를 않아요. 당신들의 불신이 사람들을 진짜 죽게 했다면 믿을 건가요? 언제쯤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을래요?
전 솔직한 사람이에요. 가끔은 너무 솔직해서 무섭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는데, 전 무섭다는 말 좋아해요. 왜인지는 저도 잘 알아요. 저는 사실 무서운 사람이 아니거든요. 너무 평범하고 보잘것없이 보이는 인간이라서 무서운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저의 몫이에요. 그래서 무서운 척 좀 하고 있어요. 무서우려나? 무서웠으면 좋겠는데. 무섭지 않다고 한다면 울래요. 내 눈물도 받아줄 거죠? 받아줘야지 더 얘기하죠. 휴지 가져와요.
고맙습니다. 휴지를 주셔서요.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눈물을 병에다 모아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왜요? 이상하고 유치한가요? 저, 이상하고 유치한 거 진짜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들어줘요. 아무튼 그런 생각에 전 진짜 작은 병에다가 눈물을 모은 적이 있어요. 슬플 때마다 그 손톱만 한 작은 병에다가 눈물을 모았었다고요. 모은 건 딱 하루긴 해요. 전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거든요. 손톱 만한 병에 첫 눈물을 꾸역꾸역 집어넣다가 이 병이 너무 작은 것 같아서 그 병을 어딘가에 처박아두고는 다시는 열지 않았어요. 누군가 그 병을 가져갔겠죠. 가져가지 않았었다면 좋았을까요.
아, 생각났어요. 나는 친구를 죽인 적도 없어요. 아, 내가 그 인재인 친구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내 친구여서 였던 거야. 내가 아까 그를 ‘친구’라고 했잖아요.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을 친구라고 분류한다고 합시다. 이제부터 우리가 말하는 ‘친구’는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에요. 난 친구 같은 가족을 원했어요. 당신도 그랬겠죠. 하지만 우리 모두의 가족은 그다지 친구 같지는 않거든요. 곁에 항상 두고 보기는 힘든 종자들이 더 많았다고요. 내가 처음으로 죽인 남자의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 여잔 인간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전 인간이 아닌 사람을 죽이지는 않아요. 인간도 아닌데 제멋대로 살다가 죽든 말든 제 알 바인 가요? 알 바 없어요. 제가 준 돈으로 잘 먹고 잘 살든 잘 먹지 못하고 잘 살지 못하든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싶기는 한데 죽은 남자를 생각하니까 슬퍼서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내가 나와 같은 성이 아니었던 사람을 사랑했던 이야기 해줄까요? 참 난 내가 생각해도 특이하긴 해요. 그런 사람들을 잘 알아본단 말이야. 저는 원래 이성애자였어요. 그냥 이성애자. ‘평범’한. 근데도 그 와중에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들이 눈에 보였어요. 내가 만나던 연인이 다른 동성 애인이 있다는 것까지 알아차렸다니까요? 웃기죠? 근데 진짜예요. 사실 주변에 당신의 생각보다 동성애자가 많다고 하면 당신은 믿을 건가요? 뭐 동성 연인을 숨기든 이성 연인을 숨기든 숨기는 것들은 어느 상황에서라도 숨길 것이니 그때 나를 속였던 그 친구를 욕하고 싶지는 않아요. 불쌍한 친구지. 좋은 사람이었거든. 그 친구가 좋은 동성 연인을 만났으면 해요. 그게 뭐 어때서요.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죠. 조금은 미안하기도 해요. 죽이지 못했으니까요. 덜 사랑한 거겠죠. 미안해, 친구야.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까요? 그 친구는 음, 뭐랄까 다가갈 수 조차 없을 만큼 아름답고 멋진 친구였어요. 그냥 진짜 어떤 강한 빛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사람 있잖아요. 그냥 딱 봐도 어떤 아우라가 풍겨지는 사람?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 생각보다 눈이 높거든요. 아무튼 간 그랬어요. 그 사람과 만날 때는 난 진짜 행복했거든요. 이 과분한 사랑이 언제 끝날지 전전긍긍하던 아이였어요. 나는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재미없었던 걸까요?
아마도 그래서 내가 재미없어서 그 친구는 다른 동성 애인을 사귄 거였나 봐요. 미안해지네요. 재미없게 해서요. 뭐, 다 제 탓이죠.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사귀었던 사람들은 죽이지 않았다고 했죠? 거 봐요, 진짜라니까요. 난 당신의 여자 친구이자 남자 친구였지만 당신을 죽이지는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게 됐네요. 당신은 그래도 죽지 않았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죽음 앞에 묵념을 하고서도 뒤돌아서는 맛집을 검색하고 있다는 거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죠?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 같아서 굳이 굳이 얘기해주는 거예요. 모르는 척하지 말라고요.
당신이 죽지 않고 이 글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사악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세상을 그렇게 사악하다 사악하지 않다 혹은 착하다 착하지 않다 등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 잘 알지만 전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당신은 사악해요. 왜요? 당신이 진짜 착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내 손에서 죽었을 거예요. 나는 진짜 착한 사람들만 죽이거든요. 당신, 나빠서 죽지 않았어요.
당신이 나쁜 이유 말해줄까요? 이 글을 지금까지 읽고도 눈물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왜 울지 않죠? 남들이 죽었다는데, 혹은 찢어지게 가난했다는데, 혹은 강아지가 죽어서 종량제 봉투에 버려졌다는데, 혹은 착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데 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죠?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그냥 물 흐르듯 읽고 있는 건가요? 당신은 나빠요. 당신이 만약에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렸다면 나한테 알려주세요. 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제가 죽이러 가려고요.
난 이미 당신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요. 당신의 엄마가 당신에 대해 모르는 부분까지요. 왜냐? 당신은 맨날 SNS에 글을 올리거나 사람들과 문자를 주고받잖아요. 왜요? 맞잖아요. 그거 조금만 봐도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왜냐? 당신이 매일매일 저에게 힌트를 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난 당신을 언제라도 죽일 수 있어요.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지면 죽여 드릴 테니 그전까지는 당신이 해오셨던 대로 맘껏 나쁘게 사세요. 군것질도 조금 더 하셔도 되고요. 뭐 어때요. 내가 죽일 건데요.
근데 이거 알아요? 난 맛있는 사람들만 죽여요. 맛없는 사람들은 별로 죽이고 싶지가 않거든요. 맛없고 재미없어. 맛이라는 게 굳이 자봤다는 건 아니고요. 제가 죽인 사람들 중에 저랑 잠자리를 가진 사람은 진짜 드물어요. 부검을 하면 나오겠죠. 전 사랑하는 사람과는 잘 자지 않거든요. 그냥요. 내 마음이에요. 헤헤. 더 듣고 싶다면 그 얘기는 더 나중에 해볼게요. 너무 긴 얘기가 될 거 같아서요.
아무튼 처음의 그 남자는 포도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를 생각하면 어렸을 적에 학교 앞에서 팔던 포도맛 슬러시가 생각나는걸요. 나는 그에게 마지막 만찬으로 포도맛 슬러시를 줬어요. 그는 행복해 보였어요. 내가 그에게 항상 말했거든요. 당신은 포도 같다고요. 그는 그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랬으니 내가 마지막으로 쥐어준 포도맛 슬러시를 그렇게 맛있게 먹고 갔겠죠.
아니, 이런데도 제가 정말 가해자인가요? 왜죠?
왜죠? 왜! 그는 포도맛 슬러시를 먹은 뒤에 아름답게 죽었고, 그의 어머니는 악어의 눈물을 흘린 뒤에 제가 준 돈을 받고 즐거워하더라고 말했잖아요. 그의 마지막 말이 엄마를 보고 싶다는 거였다고 했죠? 제가 욕심을 부린 적이 있다고 했죠? 저의 그에 대한 욕심은 딱 하나 그거였어요.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고 싶다는 그에게 엄마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사진으로만 보여준 것. 그게 그를 향한 단 하나의 욕심이었어요. 그것도 제가 잘못한 건가요? 그의 앞에 어머니를 진짜 데려왔다면 그와 어머니 모두 슬퍼했을 거예요. 그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제가 말했잖아요. 전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요.
거기까지는 제 욕심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당연한 부분인 거 아는데, 제가 이 부분이 저의 욕심이라고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요. 진짜 욕심이었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그에게 그의 엄마를 사진으로만 보여준 이유는 그의 엄마는 실제로 알기보다는 그저 멀리서 사진으로 바라보기에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주관적 판단 때문이었거든요. 심각하게 객관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뭐, 제 뇌에서 나온 생각이니 주관적인 판단이겠죠. 그래서 전 욕심을 부린 거예요. 저, 나쁘죠?
저는 이렇게 나빠서 살 수 있었어요. 제가 남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전 지금쯤 누군가의 손에 죽어있었을지도 모른다니 세상이 참 무섭죠? 세상은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서워요. 아무 생각 없이 바다 수영을 하다가 갑자기 바다에 있던 물고기가 너무 무서워져서 뭍으로 돌아간 적이 있어요. 그때 갑자기 너무 예뻐 보였던 열대어들이 저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섭지 않아요? 너무 예쁜데 말이죠. 진짜 저를 물어뜯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 세상을 안 믿는답니다. 열대어 같이 생긴 친구인 척하는 인간들이 예쁜 척을 하면서 제 종아리를 물고 피를 나게 할까 봐요. 그 피 냄새를 맡고 상어가 달려들어 저를 감옥으로 넣을까 봐요. 감옥에 가기는 싫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남을 죽인 것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