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들린다고 하고 들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살아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을 죽게 한다면 그건 ‘진짜’ 살인자죠.

by Lydia Youn

들린다고 하고 들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제가 죽고 싶어 하는 사람만 죽인다고 했잖아요. 근데 진짜 저한테 제일 그 말을 많이 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요. 그 사람은 제가 당신을 죽여줄 수도 있다고, 진짜 죽고 싶다면 나에게 말해달라고 하자 그때부터 저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죽여달라고요.


그렇게나 죽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을 죽여야겠다 생각하고 죽일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그 사람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그 사람의 동생은 저를 알아왔더군요. 그 사람이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이 보이길래 사랑이 많은 그 동생은 죽고 싶어 하는 그녀의 핸드폰을 어떻게든 뒤져서 제 번호를 찾아냈더라고요. 저희는 그때 자주 연락 중이었는데, 그녀의 핸드폰 최근 통화목록에는 제 번호밖에 없었나 봐요. 불쌍한 여자. 그래도 그녀의 동생은 그녀를 사랑해주는 것 같아요. 참 다행이죠.


“혹시 저희 언니와 아는 사이신가요? 혹시 제발 저의 언니와 아는 사이 시라면 제발 언니한테 죽지 말라고 말해주세요..”


그 여자의 동생이 울면서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언니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니 제발 당신이 언니의 죽음을 말려달라고요. 그런 부탁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 여자를 죽일 수 있을까요. 욕심을 부려서 미안해요. 들린다고 하고 들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저, 나빠요.




처음 그 여자를 만난 건 그 당시 제가 살던 동네 공원의 벤치였어요. 어떤 여자가 한밤 중에 소주 2병이랑 쥐포, 과자 같은 걸 옆에 두고는 큰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서 마시고 있더라고요. 새벽 2시쯤이었으려나. 저도 사실 공허한 마음에 집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거든요. 누구를 죽이려던 건 아니고요.. 아무튼 그랬어요. 누구랑 얘기를 하고 싶긴 했어요. 그래서 그 여자에게 말을 건네었죠. 저도 같이 앉아서 마셔도 되냐고요.


“소주 한 병 더 사 오시면요.”


멋지지 않아요? 그녀의 첫 한마디가 저를 진짜 당황하게 했어요. 저는 그녀가 벌써 소주 한 병 반쯤을 비운 것 같고 조금은 취한 것처럼 보여서 저랑 술을 마셔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엄청 조심스럽게 물어봤거든요. 근데 소주 한 병을 더 사 오라니. 정말 멋진 여자예요.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멋진 여자여서요.


그녀는 평소에 안 좋은 일이 많았는지 제가 사 온 소주 한 병을 갑자기 병째로 마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어요. 늦가을이라 꽤나 쌀쌀했는데도 슬리퍼를 끌고 얇은 가디건을 입고는 추위에 몸을 흔들거리며 울먹이면서 술을 부어대는 모습이요. 그녀가 눈물을 진짜 흘린 건 아니었지만 제 눈에는 눈물이 보였는걸요. 그녀는 슬픈 만큼 술을 마시고 싶었던 거였을 거예요. 어디에도 말할 곳이 없어서 술을 마시면 좀 나을까 싶었던 거겠죠.


그녀는 생전 처음 본 나한테 이 얘기 저 얘기를 막 늘어놓더라고요. 취해서인지 그녀도 나처럼 누구라도 붙잡고 말을 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저에게는 말을 해줘서요. 듣고 싶었거든요,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말을요.




그 후에도 종종 그녀는 울고 싶을 때마다 저에게 전화를 하더라고요. 매번 술을 마신 채로 혹은 우울에 빠져있는 상태로요. 제가 그녀와 있던 날들 중 가장 기분이 좋았던 날은 그녀가 가장 기뻐했던 어느 날이었어요. 갑자기 너무 기분이 좋아 보이던 그녀는 그날따라 저를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매번 우울해 보이던 그녀가 그렇게 웃기도 한다니 의아했지만 전 그녀를 보러 그녀 집 앞으로 찾아갔어요. 집 앞을 찾아가니 그녀가 저에게 찬 캔커피랑 마카롱을 쥐어주더라고요. 항상 고맙다고 말하면서요. 저를 안아줬어요. 그게 우리의 첫 포옹이었어요. 전 먼저 그녀를 안는다는 것이 두려워서 안아주고 싶어도 쉽사리 먼저 안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녀는 역시 멋진 여자예요.


슬픈 건 그 뒤로는 제 눈으로는 그녀의 웃음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는 거예요. 저도 이유를 잘은 모르겠어요. 아마도 행복했던 그 하루는 그녀가 짝사랑했던 어떤 남자와 사귀기로 한 날이었나 봐요. 그 뒤로 잘 안됬던 거였겠죠. 그녀는 그날 이후로 몇 번 저에게 그 남자에 대해 말을 하더니 그 뒤론 아무 말 없이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더라고요. 평소처럼, 죽음과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그녀는 저를 처음 만나던 그 날부터 자기를 죽여줄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던 거 알아요? 가끔은 정말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때에 만나게 된다고 하던데 저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죽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죽고 싶어서 자기를 죽여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사람이었으니 아마도 그녀의 필요가 저를 그녀에게 말을 걸도록 이끈 걸지도요. 아무튼 그녀는 그 뒤로 100번가량 그 말을 저에게 했었고 저는 정말 그녀를 죽일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그녀를 죽이지는 못했네요.


그녀를 죽이지 못한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이 결정적으로는 그녀의 동생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어요. 그녀의 동생의 사랑. 그거 하나예요. 그녀가 죽지 않은 이유요. 그녀 주변의 그녀를 차 버린 어떤 남자나, 그녀에게 관심이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은 혹은 그녀가 별로 관심을 주는 것 같지 않은 친구나 가족들이 득실거릴지언정 그녀에게는 그녀를 정말 걱정하고 아끼는 동생 한 명이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남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람을 죽이나요? 전 세상에서 그 사람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저 딱 한명일 때 살인을 해요. 불쌍한 인생이니까요.




그녀의 동생 덕분에 혹은 때문에 그녀가 죽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동생이 그녀를 계속 살게 해 줄 수는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어요. 그녀의 동생도 자신의 삶을 살아야겠죠. 아마도 그녀는 처음 봤던 그날처럼 당분간은 매일 술을 마실 거예요. 그 전에도 그랬고 저와 알고 지내던 때도 그랬으니까요. 전 그녀의 동생의 전화를 받은 이후로 그녀와의 모든 관계를 끝냈어요. 저보다 그녀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는 그녀를 사랑해서 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의 동생은 저보다 그녀를 더 사랑해서 그녀를 살렸으니까요. 저, 무책임하기도 하네요. 제가 굉장히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남들이 못하는 일을 대신해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어찌 보면 참 무책임한 사람이었군요. 그러게 저보다 죽은 이들을 더 사랑해주시지 그러셨나요. 그녀의 동생처럼요.


전 그녀가 참 멋진 여자라고 생각해서 그녀의 곁에 있었다고 했잖아요. 근데 그녀의 동생은 그녀보다 좀 더 멋진 사람 같아. 그러니 자기 언니를 그렇게나 아껴주겠죠. 게다가 그들은 배다른 자매였어요. 그러니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배다른 자매여서 더 대단해요. 그녀의 상처는 부모의 이혼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그 상처로 관계 맺어진 그녀의 동생이 그녀를 다시 살린다니 인생이 참 아이러니예요.


아마도 그녀가 중학생이었을 때쯤 그녀의 엄마가 재혼을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빠와는 아주 어린 시절 헤어져서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아빠가 그녀에게 딱히 못해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녀는 자기의 인생에서 ‘왜 나에게만 진짜 아빠가 없을까’하는 질문만을 반복해왔다고 했어요. ‘진짜’ 아빠의 빈자리에 그녀의 엄마는 그녀와 그녀의 어린 남동생을 키우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 하셨고, 그러다가 새아빠를 만나 결혼하셨고 그녀에겐 한 명의 여동생이 더 생겼지만 그녀는 항상 그 집안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거죠. 그녀가 참 불쌍해요. 그녀가 원하던 삶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아마도 그게 아니었겠죠. 너무 어렸을 적부터 아빠의 부재가 당연했던 삶, 새아빠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해야만 했던 어린 그녀. 그녀가 술을 좋아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 그녀가 행복해했던 그 단 하루 캔커피를 마셔준 것 말고는 매번 그녀가 원하는 술을 함께 마셔줬어요. 저와 있는 순간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저와 있는 마지막 순간에 모든 걸 잊고 행복해지라고 죽이려 했어요. 이제 무슨 말인지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으시려나요. 아직 이해하실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고요. 아무튼,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아빠처럼 자기를 감싸줄 남자 친구를 찾고 싶었나 봐요. 그 기뻐하던 날에 사귀기로 했다던 남자도 그녀에게 마치 아빠처럼 대해주던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뭔 대수인가 싶지만요. 진짜 아빠도 딸을 버리는 세상에서 그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을 아빠라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그녀의 실수였던 거겠죠. 하지만 불쌍한 그녀에게도 그 동생이 있으니, 아마 그녀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저에게 저를 죽지 않게 만들어줬던 그 친구처럼, 그녀에게는 그녀의 동생이 그런 존재가 되어줄 거라 믿거든요.




그런 믿음에도 이유가 있어요. 예쁘고 조용해 보이는 관상어도 믿지 않는 제가 술독에서 헤엄치는 특이한 여자의 가족을 믿는다니 이해가 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요. 그녀의 동생에게서 한 통의 긴 장문 문자가 온 적이 있어요. 모든 내용이 기억에 남는 건 아니지만 대략 기억나는 몇 문장을 말해드릴게요.


‘언니가 죽고 싶어 한다는 것, 언니가 당신과 깊은 관계였다는 것, 언니가 당신에게 죽여달라고 했다는 것, 당신이 정말 언니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저는 다 알고 있었어요.’


‘언니를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언니의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언니를 제가 더 많이 챙기지 못한 책임을 그쪽으로 넘겼던 것 같아서 죄송했습니다. 언니를 죽이든 살리든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지금처럼 언니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참, 멋진 여자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진 여자예요. 저 여자라면 그녀를 저보다 더 멋지게 죽이거나 멋지게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마도 더 멋지게 살게 해 줄 거예요. 저 여자에게서 ‘책임감’이라는 걸 봤거든요. 전 한 번도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한 적은 없어요. 제가 되게 무서운 척하는 평범한 사람이란 얘기했었죠? 전 그냥 누구나이자 누구도 아닌 일반인일 뿐이에요. 그러니 그녀의 동생처럼 사람들을 ‘책임감’ 있게 살리지 못하고 최소한의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원하는 죽음을 줬겠죠. 제가 더 ‘책임감’이 있던 사람이었다면 그들도 죽지 않았겠네요. 전 최소한의 저의 책임으로 그들의 주변에 저보다 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그 ‘책임자’에게 맡기고 떠났답니다. 제가 저의 첫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은 이유도 그거 단 하나예요. 세상에는 사랑이 많은 ‘책임지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는데 말이죠.




사실 ‘책임지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건 너무 쉽지만 쉽지 않은 얘기죠? 사람들은 결국 세상은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나 봐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배신자가 될 수도 있고, 작년의 배신자가 내년의 은인이 될 수도 있는 세상에서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않을래요? 저는 본인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죽이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죽음의 안식을 누릴 가치가 없거든요. 세상에서 좀 더 당하고 뒹굴다가 언젠가는 죽을 텐데요, 뭐. 제가 죽이지 않은 사랑스러운 그녀는 제가 정말 사랑할 만큼 멋진 여자였지만, 그녀는 살아서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살아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을 죽게 한다면 그건 ‘진짜’ 살인자죠. 저는 ‘진짜’ 살인을 한 적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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