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날 죽여줘

누구도 저의 죽음을 본인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by Lydia Youn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날 죽여줘''

라고 말하던 남자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예요. 아마 앞으로도 그 사람만큼 다른 남자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에겐 완벽한 사랑이었던 그 남자, 그래서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업가였어요. 돈도 또래의 다른 남자들보다 훨씬 많이 벌었고, 자기가 원하는 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던 남자. 남 부러울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상위층'의 사람이었어요. 그런 그 남자도 죽음을 그렇게나 원해서 결국 제 손에 죽었다니, 세상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거죠. 그가 하는 말은 좀처럼 다른 사람들의 귀에 잘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긴 해요. 세상이 다 부질없다, 살아서 뭐하냐 같은 허망한 말들을 그 남자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사실 저도 몰랐거든요. 그 사람은 저의 상사였어요. 제가 어쩌다가 일하게 된 곳의 상사요. 그게 어떤 업종인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아무튼 그가 성공하게 된 사업을 시작하기 전 다녔던 회사에서 저희가 만났어요. 저에게는 그가 한참은 먼저 성공한 인생의 선배 같은 사람이었고, 그와 저는 멘토와 멘티 같은 관계였답니다.


그가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말하던 날을 기억해요.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에휴, 살아서 뭐하냐.''며 혼잣말을 하더라고요. 뭐, 그런 말들 누구나 쉽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은 제 멘토잖아요. 그런 그 사람이 저런 얘기를 하니 전 그냥 흘려 넘길 수는 없었답니다. 처음에는 모른 척 지나가겠지만 언젠가는 꼭 저 사람의 문제에 대해 알아야겠다. 그리고 그 후에 죽이든 살리든 결정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를 사랑했으니까요.


그는 조심스레 흘려본 저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하더라고요. 선배, 요즘 안 좋은 일이 있냐는 물음에 오늘 회사 끝나고 밥이라도 먹자고요. 그날 밥을 먹고 2차로 술을 마시면서 선배는 자기의 속 얘기를 해줬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싶어 했던 저 조차도 별로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서글픈 이야기를요. 끔찍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죽은 선배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 단어를 쓰지는 않았어요. 입조심을 해야죠. 제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의 인생이 끔찍했을지언정 저는 서글펐었다 까지만 얘기하고 싶거든요.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뭐, 진심은 이미 들통났지만요.




그 남자는 아.. 그 남자도 진짜 사랑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보잘것없는 저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저를 도와주고 했었겠죠. 제가 인생에서 뭔가를 배울만하다고 생각했던 피가 섞이지 않은 완전한 타인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그 사람은 그중에서도 거의 첫 번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요.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참 기뻐요. 아직 세상은 그와 같은 '위인'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죽였어요. 그는 이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이어서요. 세상이 이 정도 수준인데 그 수준 이상인 사람이 살기에는 사실 굉장히 불쾌한 삶일 수 있거든요. 자기와 맞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입을 닫고 묵묵히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가 이만큼 살아왔다는 것조차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밤, 저는 그에게 진짜 죽고 싶냐고 물어봤어요.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날 죽여줘''


그가 말했어요. 아.. 너무 멋진 당신. 그는 죽음을 말하는 와중에도 그렇게 멋있었네요. 사실 죽을걸 알고 죽는다는 건 대단한 용기거든요.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은 참 대단해요. 자살할 마음을 뒤집어서 살자라고 말하는 멍청한 표어보다 대단한 게 자살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저도 못한 걸 했으니.. 그도 못한 걸 했으니 말이에요. 왜요? 그 사람들이 살았었다면 행복했을까요? 그 자살했던 사람들이 살았었다면 당신이 행복하게 해 줄래요? 나의 사랑 그이가 살았었다면 당신이 그이의 슬픔을 가져가 줄 수 있나요? 난 적어도 그가 슬픔을 잊도록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를 죽여드렸어요. 그래도 나를 욕할 수 있나요.




본인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 사람에게 눈치챌 수 없게 죽음을 선물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생각해 본 적 없죠? 진짜 어려워요. 이건 모든 살인 중에 가장 어려웠어요.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간편한 방법으로 쉽게 죽음에 이르는 방법이라니. 그를 죽이려는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살인에 능해진 것 같아요. 살인도 아는 게 많아야 쉽게 할 수 있거든요. 그를 아름답고 비밀스럽게 죽이기 위해 저는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별별 가스부터 마취와 관련되거나 수면에 들게 하는 각종 약물들, 조금만 섭취해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독 같은 것들에 대해서요. 세상에는 더럽고 믿을 수 없는 정보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동물에다 대고 실험을 하는 무식한 인간들처럼 제 손을 더럽힐 수는 없고, 죽음을 원하는 사람일지언정 저의 생체 실험 대상으로 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저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모든 것을 찾아보고자 노력했어요. 물론 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찾은 이후에 그 방법을 진짜 실현시키기 까지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요. 재료들을 사는 것부터 해서요.


참 대단한 건, 그가 자기를 본인도 모르게 죽여달라고 말한 그 이후로도 저를 만날 때마다 엄청 태연했었다는 거예요. 타인의 감정 변화에 예민한 저조차 그가 당황하거나 무서워하는 모습이라고는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으니 말이죠. 대단해요. 그는 저를 끝까지 무서워하지 않았답니다. 아마도 그가 제가 들을 정도로 처음으로 죽음에 관한 혼잣말을 하기 이전부터 그는 죽고 싶었던 거였을 거예요. 저는 죽음 앞에 주저하는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가 죽을 그때 당시, 그는 죽음 앞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겠죠. 처음 제게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누군가처럼 그도 죽고 싶어서 울기도 했겠죠. 눈물이 소용없다는 걸 알고 눈물을 그치기 시작했겠죠. 그렇게 무덤덤 해졌겠죠. 그리고 무덤덤해지고 싶었을까요? 아니었겠죠. 그도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싶었을 거예요. 그의 삶의 무게가 그를 짓눌러 결국엔 ‘진짜’ 웃음을 짓지도, ‘진짜’ 눈물을 흘리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진짜’ 나쁜 건 제가 아니라 세상이겠죠. 그는 일을 해야만 했으니 가짜 웃음을 지으며 살았지만 그의 가짜 미소가 참 따뜻해 보여서 저는 마음이 아팠어요. 가짜 미소마저 따뜻한 남자라니요. 이런 사람을 어떻게 죽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가 ‘진짜’ 웃음을 저에게 보여줬던 순간은 딱 두 번이에요. 한 번은 그와 그의 애인이었던 여자가 정말 밝게 웃고 있던 커플 사진에서,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은 그가 자기의 죽음을 뒤늦게 눈치채던 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요. 그는 행복하게 죽었답니다. 그는 자살이라고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위장했지만 사실은 자살보다는 더 아름답고 동화적으로 죽을 수 있었어요. 저라는 사람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에겐 제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네요. 저에게도 그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이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저는 정말로 그를 많이 사랑했어요.


그는 저의 안부까지 생각해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답니다. 제가 죽인 사람들 중 자살로 위장했던 사람들도 몇몇 있는데, 그는 기어코 기어코 자살이어야 한다며 저에게 유서를 복사해서 보여주던 사람이었어요. 제가 눈물을 모았던 날은 바로 그날이었답니다. 그의 유서를 읽던 날이요. 어쩜 그렇게 눈물이 날까 싶어서 손톱 만한 병에 눈물을 모았던 그날이요. 그가 살았다면 저보다 더 좋은 작가가 됐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다지 좋은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아닌 것 같지만,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만 했거든요.


일단 저에게 가장 다가왔던 이야기는 “나의 죽음 앞에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저는 죽음에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누구도 저의 죽음을 본인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의 온전한 선택이었습니다.”라는 말. 온전한 선택.. 그래요. 그의 ‘온전한’ 선택이었죠. 세상이 그보고 죽으라고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의 죽음 앞에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을 정말 괴로운 상황에서도 그는 끝까지 온전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더라고요. 참 대단해요. 그래서 제가 그를 위인이라고 하던 거예요. 위인, 맞잖아요.



그는 삶도 죽음도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이었어요


‘온전한’ ‘책임’. 참 대단해요. 온전하기만 해도 힘든데, 책임을 지기만 해도 힘든데 온전한 책임을 지던 사람. 일단 그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딱히 없었어요. 그는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미국으로 입양 보내졌다가 대학까지 입양 가정에서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어요. 그의 친부모님과 피로 이어진 가족들을 찾으면서 한국에서 살고 싶었대요. 그가 한국의 가족들을 찾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세상에 화목하기만 한 가정은 없겠죠. 게다가 깨어졌다가 다시 붙으려는 가족이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그래도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 가족이 되어준 미국의 양부모님들이 참 좋은 사람이어서 다행이었어요. 하지만 피와 뿌리란 게 뭔지 아무리 좋은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도 그렇게 친부모님을 찾고 싶었나 봐요. 제가 그런 상황이 되어보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그는 미국에서 해외 입양을 중단하라는 시위에 참석해서 ‘한국의 아기는 수출용이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었던 적도 있었대요.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입양기관이 해외입양으로 벌어들인 수익만 연간 백억이 넘는다니, 참 세상엔 괴로운 일들이 너무 많죠. 아무튼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자기를 '수출'했던 입양기관을 찾아가서 친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대요. 하지만 그를 버린 친부모님은 돌아온 그를 별로 반기지 않았나 봐요. 내다 버린 불편한 아들이 돌아온 거죠. 물론 그들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 모든 사정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더 가치가 없는 걸까요? 책임지지 않는 부모 아래 온전한 책임을 졌던 그가 태어난 것이 기적이겠네요.




나, 아직도 그를 많이 사랑해요. 사랑해서 죽일 수밖에 없던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사랑했던 사람. 어떻게 그가 죽던 순간의 미소를 잊을 수 있겠어요. 온전히 사랑받는 사람의 미소였다니까요. 저는 그가 제 사랑을 온전히 느끼며 죽었을 거라고 확신해요. 어떻게 사랑하지 않는데 죽여줄 수 있겠나요. 나는 그의 죽음 앞에 누구보다 더 큰 사랑을 보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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