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향곡 : 1악장 저녁노을

From the Jeju Island

by 정윤식

제주교향곡 : 개와 늑대의 시간 (부제 : 저녁노을, 모래놀이 그리고 제주바다)


며칠 전, 가족들과 함께 제주에 다녀왔다. 드보르작의 가장 유명한 곡 중에 하나는 신세계교향곡이다. 우리가 응원가로 즐겨 부르는 라임 중에 "빠바빰빠바빰"으로 흥얼거리는 곡이 바로 드로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이다. 체코출신인 드보르작이 미국에 초청을 받아서 취업을 하게 되고, 바로 미국 땅에서 쓴 교향곡이 바로 "From the New World"라는 신세계교향곡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신세계로부터" 교향곡이라고 할 수 있다. 2박 3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 역시 "From the Jeju Island"라는 곡을 쓴다. 2박 3일 일정을 악장 형식을 빌어 짧지만 강력했던 제주여행을 기록에 남긴다.


1악장 : 저녁노을 (6.29일)


6.29일은 장마가 제주에서 시작한 날이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 하루 종일 비가 쏟아부었다. 한반도가 가뭄과 씨름을 하는 동안, 제주는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서, 오랜 가뭄의 종지부를 찍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협재해수욕장과는 정반대에 있는 섭지코지 "아쿠아플래넷"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아이들과 함께 바닷속 생태계를 배우고, 돌고래 쇼도 봤다. 아쿠아플래넷은 비를 피해 몰려온 가족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오후 2시까지 구경하고, 늦은 점심으로 흑돼지를 구워먹고, 협재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카이리조트"로 향했다. 저녁 5시가 넘어서자, 비구름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UN연합군이 서울을 수복하듯 북으로 올라가듯 북진을 계속하였다.


그래서 근처 식당에서 돈까스와 우동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나서, 협재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동해안 포항에서는 보기 힘든 저녁노을을 마주했다. 최근 알뜰신잡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소개된 저녁노을이 눈 앞에 펼쳐졌다. 아이들은 물놀이와 모래놀이로 정신없이 노는 동안에,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바다에서의 저녁노을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멀리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명명한 그 찰라가 내게 다가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포항은 호미곶으로 유명하다. 1월 1일이 되면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전국에 수많은 인파들이 찾아온다. 새로운 다짐, 새해 소망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시작해야 더 잘 될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일테다. 하지만 저녁노을은 새로운 각오보다는 60대 노부부가 황혼의 시간을 보내는 추억의 시간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날 저녁노을은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나날(개)과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늑대)"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내가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감사와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나날에 대한 불안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해가 뜨면, 곧 달도 뜨는 법이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는 법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살아갈 날들에 대한 불안감으로 맘 조리며, 지금 현재를 담보로 삼아 희생하며 살아가지 않으리라. 또한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자랑삼아, 훈계하듯 얘기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저녁노을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서서히 떠오르는 해돋이보다 떨어지는 저녁노을의 낭만을 조금씩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내게 "From the Jeju Island"는 이효리가 살고 있는 애월읍, 중국관광객이 빠져버린 제주, 부동산 광풍이 휘몰아친 제주가 아니었다. 2017년 6월 마지막 시간들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개와 늑대인지 분간이 되지 않은 저녁노을의 시간이었다. 내게 붓과 캠버스가 있었다면, 빈센트 반 고흐나 클로네 모네처럼 멋진 "인상파 풍의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난 붓과 캠버스 대신에, 키보드로 수놓은 글자들로 채운 아이패드로 글을 쓴다. 그리고 "From the Jeju Island"교향곡 1악장을 "저녁노을 (6.29일)"이라 명명하고 초연을 펼친다.


제주도 협재바다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아내의 손을 꼭 잡는다. 저 멀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내가 키우는 아이들의 소리인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으로 돌아간다. 적어도 6.29일 저녁은 "개와 늑대의 시간"임과 동시에 "아이와 파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바다 위를 걷는다.


P.S 그 날 저녁 아이들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8시를 훌쩍 넘기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지는 시간은 "Cat and Dog"이 날뛰었고, 저녁노을이 지는 시간은 "Dog and Wolf"가 나오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고양이, 개, 늑대 모두가 함께한 시간들이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각의 냉장고 앞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