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예의 그림 그리기

상상의 나래를 2차원에 풀어놓다.

by 정윤식

민우의 자전거 편에 이어서 둘째 딸인 "민예의 그림 그리기"을 쓸려고 합니다. 1주일에 1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시간이 날 때 조금씩 조금씩 글을 쓸려고 합니다.


제목 : 민예의 그림 그리기 (상상의 나래를 2차원에 풀어놓다.)


둘째 딸 아이 이름은 "민예"이다. 첫째 민우는 주로 남자라서 그런지 활동적인 놀이를 좋아한다. 태생적으로 겁이 많지만, 타고난 체력을 어쩔 줄 몰라하는 겁 많은 코끼리같은 스타일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초등 2학년 아들과 함께 라이딩을 즐기곤 하는데, 가볍게 타면 20~30킬로이고, 좀 운동하는 셈 치고 타면 60~70킬로는 거뜬이 탄다. 아직까지 100킬로를 타지 못했지만, 조만간에 100킬로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한가지 서글픈 점이 있다면, 이제 나의 체력과 아들의 체력이 크로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들은 체력의 오르막 길 이라면, 난 체력의 내리막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아들이 자전거 주파 길이가 길어질 수록 내 나이도 늘어가고, 점점 나의 자전거 주파 길이는 짧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진리이다.


아들에 비해, 유치원생 7살 딸은 겁 없고, 타고난 입담을 어쩔 줄 몰라하는 겁 없는 딱다구리같은 스타일이다. 주로 밖에 나가는 아들에 비해 딸 아이는 집에서 유유자적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 내 어릴 적과 싱크로율이 거의 90%를 넘는다. 나 또한 남자 아이치고는 집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민예의 주특기는 그림 그리기이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표지를 만들고, 여러 겹 테이프로 붙여서 꼭 책자를 만든다. 거기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놓는다. 하루 A4 소모량을 생각하면, 난 아마도 철강회사 보다는 제지회사에 근무하는 게 더 경제적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놀이에 비해서 그림 그리기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놀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놀이일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때론 자그만한 동네가 "우주"가 되고, 내 친구들이 "어벤져스"가 되어 악당을 물리치기도 한다. 또 마징가Z와 태권V가 싸우면 누가 이길 지 상상하기도 한다. 어린이에게 상상은 신화와 현실이 경계없이 떠도는 영역이다. 그래서 상상의 나래를 말로 풀어놓고, 때론 그 말들을 2차원 종이에 펼쳐낸다. 가끔 딸 그림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피카소의 입체파 여인의 그림의 원형이 7살 아이에 그림 속에 있다. 우리는 두 눈으로 인식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낸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한 눈은 앞을 보고 있고 한 눈은 옆을 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즉 그림을 시간과 공간을 한 순간, 한 장면을 슬라이스해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연속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연결해서 본다.

야경 사진을 찍을 때 조리개를 1/60초 열어두고 찍으면 찰라의 순간을 찍지만, 조리개를 1분 동안 열어두고 찍으면, 1분 동안 차도를 달린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연속해서 찍히게 된다. 아이들의 그림은 그러한 순간과 장면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래서 등장인물도 다양하다. 진공청소기에 눈이 달려 있고, 오빠보다 자기가 키고 더 크고, 때론 엄마가 아빠보다 훨씬 크게 그려지기도 한다.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방법보다는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그림에 투영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걸 어린이의 상상력이라고 말하지만, 7살 민예에게 물어보면 본인은 보고, 생각한 것을 그리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상상력이라고 붙여진 개념도,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성의 강요 앞에 작아지는 생각인 것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얼음이 스르르 녹듯이, 이성의 관념이 점점 강해지면 상상이 점점 녹아들게 마련이다.


공간 3차원과 시간 1차원을 합친 4차원의 세계를 2차원인 종이 평면에 기록하고, 그려가는 작업은 인류 놀이 원형에 가깝다. 프랑스 어느 동굴의 벽화나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다비드 그림이나 2차원인 종이 평면에 기록한 그림이다. 민예는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한다. 어른이 되어서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난 민예가 꼭 미술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꼭 미술을 사랑하고, 미술을 다른 이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딸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가는 상상을 해본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박물관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구경하고 오는 생각도 해본다. 미술을 사랑하고, 예술을 몸으로 익힌 교양인으로 성장해길 빌어본다.


상상의 나래를 2차원에 풀어놓는다. 비록 A4 용지에 연필로 스케치하여 그린 습작에 불과하지만, A4 용지 한 장에 우주가 들어있다. 한 아이의 세계관이 그려지고, 상상 되어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리는 민예를 쳐다본다. 그 그림 속 웃고 있는 있는 우리 가족이 좋다. 농담으로 1층에는 9살 아들이 자전거 샾을 하고 2층에는 7살 딸이 미술학원을 하면 좋겠다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3층에는 두 내외가 사는 조금한 집을 짓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대화를 했다. 결국 민우의 자전거, 민예의 그림 그리기는 본인이 하고 싶고, 즐기는 일을 찾는 과정이다. 각자의 삶에서 한 아이는 2차원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고 한 아이는 2차원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자전거 타는 아이와 그림 그리는 아이와 함께여서 감사하다. 그리고 그 사랑스런 두 아이의 엄마가 내 사랑하는 아내여서 더욱더 감사하다. 오늘은 내가 행복의 나래를 2차원에 풀어놓는다.


P.S 최근에 아이들이 살아남기 시리즈를 탐독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에서 살아남기, 초원에서 살아남기 같은 시리즈 물인데, 아이들에게 회사에서 살아남기 책은 없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책을 내가 써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진심 고민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주교향곡 : 3악장 오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