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향곡 : 3악장 오픈카

한번 쯤은 뚜껑을 열고 달리고 싶다.

by 정윤식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 여행의 컨셉 중에 하나가 "오픈카"를 타보는 경험을 해보자였다. 그래서 "미니 쿠퍼 컨버터블"을 빌렸다. 모닝만한 사이즈에 3기통 1500cc 엔진이 달린 차량이다. 4명의 가족이 타기엔 무척이나 불편한 3도어 였지만, 오로지 오픈카를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불편함을 감수해야했다. 첫날은 비가 왔고, 둘째 날은 흐렸지만,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맑았다. 아들녀석은 떠나는 마지막 날이 아쉬운 지 아침부터 다시 모래놀이하자고 난리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협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아들 녀석은 언제나 그렇듯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되는 냥" 오늘도 열심히 논다. 저런 모습을 보면 정말 부럽기도 하다. "나는 언제 저렇게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것처럼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만약 저 맘으로 인생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들녀석과 어제와 색다른 모래놀이(일명 댐쌓기, 언제고 다시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를 마치고 나서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7살 딸아이의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7살 딸아이 친구네는 제주도에서 20일 가량을 살고 있다. 최근에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신선했다. 하긴 내가 어릴 땐 특히 여름방학때면, 시골집에 가서 한 달이상 살다가 오는 일이 허다했다. 요즘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시에서 사는 경우가 많아서 시골에 가는 대신에 "제주도 한달 살기"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줄 모른다.


우연히도 친구네는 우리가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곳에 머물고 있었다고 했다. 그 넓은 제주도 땅에 아무런 사전 정보 교환없이 그렇게 만나기도 대단한 인연이었다. 아이 친구네 엄마 (아빠는 포항에서 일하신다고 했다.)가 추천해준 곳은 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해변이었다. 그곳에서 매일같이 게를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이었다. 뜨거운 햇볓 아래서 총 5명의 아이들(우리집 2, 친구네집 3)은 "오늘이 마지막 날" 인 것처럼 놀기 시작했다. 스피노자가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한다면, 이 꼬마들은 바닷가에서 놀기로 작정한 듯 했다. 원래 계획은 바다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해서, 수영복도 안 입혔는데 그냥 무대뽀로 바다로 첨벙 들어가버린다. 하기야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재미있게 지금 이순간을 즐기기"였지, "조심스럽게 옷 안 버리고 놀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11시부터 시작된 놀이는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놀고 나서 하는 말이 대단했다. "포항에서 만나면 또 놀자"였다. 아이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협재해수욕장에서 서귀포 중문단지 쪽으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아직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라 미니의 뚜껑을 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100도로로 접어드는 시점부터 미니의 뚜껑을 열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1100m 고지까지 달리는 와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노루와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20년 정도 운전했는데, 난생처음으로 자동차 도로에서 노루를 만났다. 50센터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노루는 정말 겁을 잔뜩 먹은 "노루눈"을 하고 반대편 차선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분 후에도 또 도로를 건널려고 준비 중인 노루를 봤다. 하루에 2번이나 노루를 보는 경험을 했다. 아이들은 노루를 봤다며 자기 네들끼리 난리다.


그렇게 1100고지에 도착했다. 뚜껑을 열기 전에 외기온도가 28도 였는데, 1100도로에서는 20도였다. 해발 100미터당 1도씩 온도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한라산에서 경험해보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 컨버터블 차량을 타는 경험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뚜껑을 닫으며 아쉬워했다. 2박 3일 여행의 끝자락이 아쉬웠고, 오픈카의 마지막을 아쉬워 했다. 그렇게 인생은 아쉬워야 소중하다. 소위 오픈카라고 불리는 차량을 "컨버터블 카"라고 한다. 뚜껑을 열 수도 있고, 닫을 수 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 막상 오픈카를 타보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지만 평상시에 오픈카를 타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 컸다. 네 식구의 공통된 의견은 "오픈카 타보니 별거 없네. 막연한 환상을 가졌는데 1번 정도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였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 그러한지 모른다. "대학에 들어가보니 별거 없네. 회사에 입사해보니 별거 없네"하고 살아간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물건이나 경험을 겪고 나서는 Desire가 Experience로 변한다. 그러나 "1번 정도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번 쯤은 뚜껑을 열고 달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 친구네가 경험한 "제주에서 한달 살기", "계획에 없던 물놀이", "노루와 2번 마주치기", "오픈카 타보기"는 뚜껑을 열고 달리기의 일환이다. 뚜껑을 닫고 탈 수도 있고, 뚜껑을 열고 탈 수 있는 "컨버터블 차"처럼 나의 인생도 한번 쯤은 뚜껑을 열고 달리고 싶다. 짧지만 강렬했던 2박 3일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마쳤다. 3악장으로 아쉽게 끝이 났지만 때론 3악장 교향곡이 4악장 교향곡보다 가슴에 사무칠 때가 있다.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을 들으며 나의 제주교향곡 연주를 이제 마친다. 그동안 제주교향곡을 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한다.


P.S 관중의 앵콜 요청이 없는 관계로 제주교향곡 이후의 앵콜공연은 없습니다. 조만간 다른 글로 만나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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