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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Sep 30. 2015

레미제라블,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Who am I?

최근 들어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은 게으르지 않았는데, 마음은 게을렸나 봅니다. 머리에서 손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지만, 심장을  경유해서 지나가야 하기에 심장이 움직여주지 않은 탓일지도 모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니면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 그동안 미뤄왔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들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창의와 창조는 일상을 얼마나 부단하게 견디고 살아가는지에 있음을 오늘 또 느낍니다. 글쓰기와 생각하기는 그저 번개 치듯이 솟아나는 일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레미제라블,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Who am I?


장면 1. A Heat Full of Love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 있다. "A Heat Full of Love"라는 노래를 듀엣으로 부른다.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 중에 매우 중요한 가사가 있다.

마리우스가 "My name is Marius Pontmercy."라고 말하자 코제트는 "And mine's Cosette"라고 말한다. 남자 주인공은 퐁메르시라는 귀족 가문 출신이고, 여자 주인공은 그냥 코제트일 뿐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가문 출신"인 퐁메르시와 "이름만 있는 출신"인 코제트가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귀족 출신인 마리우스와 평민 출신인 코제트는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함께 노래하지만 한 사람은 가문을 가진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가문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장면 2. Who am I?

장발장은 첫 장면부터 거의 마지막 장면까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노래한다. 24601, 장발장, 마들렌 시장으로 정체성을 고민한다.


장발장에게 있어 최고의 장면은 "Who am I?"이다. 자베르 경감이 자신을 죄수 24601이라고 착각하고 의심하자 진짜(?) 24601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 때 장발장은 자신이 누구인지 노래한다.

"If I speak, I am condemed.

If I stat silent, I am damned!"


자신은 수 백 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장이라 감옥에 가면 수 백 명은 어떻게 할 건인지 걱정한다. 하지만 장발장은 어린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쳐야 했던 마음 따뜻한 삼촌이었으며,  자신이 탈주자라는 신분이 탄로 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짐마차에 깔린 노인을 구했던 시장이었으며, 사랑하는 딸과의 생이별을 해야 했던 죽어가는 판틴을 위해서 딸 코제트를 잘 기르겠다고 다짐하던 장발장이었다.


그래서 "Who am I? Who am I? I am Jean Valjea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재판장에 찾아가서 자신이 바로 " Who am I? 24601!"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장면이 바로 장발장에게 최고의 장면이다. 24601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장발장!!! 다른 사람의 불행을 절대 못 본체 하지 않고, 자신이 입을 불이익을 당당히 받아들이는 장발장!!! 


장면 3. "Javert's Suicide"


그와 달리 자베르 경감은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Who am I?"에 대한 질문이 없다. 스스로 죄인을 교도하는 교도관이자, 질서를 어지럽히고 반역을 일삼는 역도를 처단하는 경찰 경감으로서의 자베르만 존재할 뿐이다. 자신에 대한 질문 없이 그는 끊임없이 타자에 대해서 노래한다.

"Can this man be believed? Shall he sins be forgived? Shall his crimes be reprieved? 

그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늘 자신을 찾아왔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고 단정한 타자인 장발장의 변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평생 자신의 신념으로 살아왔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 꼭대기에서 세느 강으로 몸을 던진다.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킬 방법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이다. "There is nowhere I can turn, There is no way to go on..."이라고 노래한다. 


이 사회에는 김부장, 김대리, 김사장, 김검사, 김판사, 김목사 등으로 불리는 자베르 "경감"이 넘쳐 난다. 그리고 "가문"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 난다. 지금은 누구나 성을 가질 수 있지만, 오늘날의 "가문"은 부모의 재력, 직업, 아파트 평수, 학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19세기 초반 빵을 훔치다 걸려서 19년이라는 세월을 복역했던 장발장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사치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 보다는 자신에 주어진 타이틀이 더 자신을 잘 설명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장발장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24601은 보이지 않는다.


빅토르 위고는 21세기 우리들에게 묻는다. 24601이라고 자신을 밝히는 장발장과 노트르담 성당 꼭대기에 선 자베르 경감.. 둘 중에 누가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라고 묻는다. 둘 다 레미제라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레미제라블,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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