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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Oct 05. 2015

레미제라블,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3

One Day more

 영화 레미제라블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얘기하는 시간입니다. 최근에 어떤 동영상을 보고  그분도 '레미제라블' 중에 한 명일 수 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권력 정점에 있는 사람이라도, 엄청난 부를 거머쥔 사람이라도  "비참하고 불쌍할 수" 있습니다. 단지 가난하고, 거리에 내몰린 노숙자들이 비참한 게 아닙니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은 권력을 취한 사람도 '비참하고 불쌍할 수' 있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수첩에 글을 쓰던 누군가가 '밉거나 화가 나지' 않고 '불쌍해' 보였습니다.

 레미제라블이란 영화는 있는 자나 없는 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레미제라블,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3,

One Day More


 1832년 6월 5일이 리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계기로 6월 봉기가 일어난다. 레미제라블은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고 루이 16세를 콩코드 광장 단두대에 올린 1789년 7월 프랑스 혁명을 배경을 두지 않았다. 또한 1848년 제2공화국을 이끈 2월 혁명을 배경으로 삼지 않았다. 실패한 시민 '봉기'였던 1832년의 6월 이었다. 7월 혁명, 2월 혁명이 아닌 6월 봉기에 불과했던 그 사건을 주목했다. 그 의문의 실마리는 "One Day More"에 있었다.


 "하루 더"란 표현은 'one more day'도 있고 'one day more'도 있다. tomorrow도 쓸 수 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은 'one day more'란 노래를 부른다. 영화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하루가 더 지나면' 벌어질 일들을 노래한다.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 Tomorrow you'll be worlds away and yet with you, world has started'라고 노래한다. 하루가 더 지난 내일이 되면 두 사람이 이별은 '확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리우스를 짝사랑한 에포닌은 'One more day all my own'이라고 노래한다.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하루 더 시작되었음을 얘기한다. 


마리우스와 코제튼에게 one day more는 tomorrow인 반면, 에포닌에게 one day more는 one more day인 셈이다. tomorrow는 하루가 더 지나면 오는 확정된 '그날'이고 에포닌은 하루가 더 지나면이 '하루만 더'가 되어 6월 봉기에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자베르 경감은 'one day to revolution we will nip it in the bud'라고 혁명의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노래한다. 또한 에포닌의 부모인 여관집 주인네는 혁명의 시기만큼  돈벌이되는 날이 없다고 기회주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Catch'em as they fall. Never know your luck. When there's a free-for-all'


모든 사람들이 'One Day More'를 노래하고 하루가 더 지났을 때 일들을 노래한다. 1832년 6월 5일-6일.. 단 이틀의 봉기로 그들이 그렇게 원했던 '자유'의 날들이 왔는가? 그 봉기 이후에 16년이 지난 1848년에 이르러서야 왕정이 붕괴되고 나폴레옹의 조카였던 나폴레옹 2세가 통령으로 선출된다. 혁명은 그저 하루가 지나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1789년 7월 혁명으로 세상을 뒤집고 그들이 원하던 세상이 단숨에 오지 않았다. 


혁명은 '하루가 더 지났다'고 오지 않는다.  오늘로부터 하루가 더 지나서 내일이 찾아오지만, 내일에도 또 하루가 더 필요한 법이다. 'one more day'가 'tomorrow'일 수 없는 것이 혁명의 이치이다. 'one day more'가 겹겹히 쌓이고  앙졸라와 어린아이 가브로쉬의 죽음이 있어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One Day More'의 참 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그 혁명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거라 믿는다. 1798년 7월, 1832년 6월, 1848년 2월 모두 그러했다. 1960년 4월 19일 혁명에 중고등학생까지 거리에 나서서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이승만 정권을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그 후로 1년이 조금 지난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또 다시 혁명의 꿈은 좌절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한 발의 총성으로 봄이 오는 가 싶었지만 그 해 12월 12일에 대머리 아저씨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원하는 국민들의 궐기 앞에 대머리 아저씨 친구가 6월 29일에 직선제 개헌을 약속한다. 그리고 그 해 대머리 아저씨 친구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혁명은 단지 하루가 더 지나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때론 민중의 피로 권력의 공백기에 여관집 주인처럼 돈을 벌려고 달려드는 사람도 생기고, 오히려 더욱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돌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머리 아저씨와 그 친구)


레미제라블은 하루가 지났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노래한다. 'one day more'가 tomorrow가 되어버린 사람들. 또 하루가 지나지만 그 하루가 지나면 또 다시 하루가 지나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 그래서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그 바스티유 광장에서 그들이 쌓아놓은 바리케이드에서 노래한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그 바라케이트 한 가운데는 영화 첫 장면에서 장발장이 어깨에 짊어지고 가던 거대한 돛대가 서 있다. 그렇게 혁명은 장발장이 어깨에 짊어지고 가던 '장발장 세대'의 '짐'위에 'ABC카페'의 친구들과 어린 소년 가브로쉬의 죽음으로 이루어진다. 레미제라블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사건임에도,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도 벌어지는 사건이다.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다 같이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비참하게 죽지 않을 자유가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레미제라블의 'one day more'의 마지막 가사로 글을 마칠까 한다. 'one more dawn, one more day, one day more' 


혁명은 '새벽을 지나고, 또 한 낮이 지나서, 하루가 지나서야' 오는 법이다. one day more를 수십 년을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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