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 꽃도 보고 길을 건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이후에 대한민국은 4차 산업혁명, AI, 딥러닝, IoT 등과 같은 키워드로 들썩입니다. 저도 회사에서 실시하는 AI교육을 지난 주 에 수목금 3일 동안 집 근처에 있는 인재개발원에서 받았습니다. 회사교육이 제일 좋은 점은 아침 출근시간이 여유롭다는 사실입니다. 회사로 출근하면 보통 7시 전후에 출근하지만, 교육을 받게 되면 교육장에 8시 30분에서 8시 50분사이에 도착하면 됩니다. 그야말로 오전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닌 탓에 저는 주로 7살 둘째 아이의 유치원 등원을 함께 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네스프레소와 따뜻한 우유를 섞어서 카페라떼 2잔을 준비하고, 8시까지 평일 오전의 여유로움을 즐깁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시간까지 쪼개어 아이들은 "친구놀이"에 한창 빠져있습니다. 첫째는 초등학교 개학이 다음 주라서 아직 여유가 있지만, 둘째 유치원은 개원을 먼저 해서 제가 데려다 주기로 합니다. 늘상 엄마와 등원하던 둘째는 신이 났습니다. 에버랜드라도 가는 냥 마음이 들떴습니다. 매일 매일 아이의 등원과 함께 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 30~40대 아빠 직장인의 현실은 아직 안드로메다입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섭니다. 집에서 유치원까지 거리는 걸어서 10분거리인 600m 내외입니다. 유치원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늘상 다니는 길입니다. 아이는 제 손을 잡고 이끕니다. 길가에 핀 꽃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쳐다봅니다. 저는 교육 시간에 늦을까바 보채어 보지만 아이는 그러던지 말던지 자기 일에 몰두 합니다. 아이는 늘상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쫓겨 '그 (The) 횡단보도'를 지나쳐서, 유치원 근처에 있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아이가 한 소리 합니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가 더 안전해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차들이 쌩하고 달린단 말이에요"라고 얘기한다.
아! 그렇구나. 난 시간을 좀더 아껴볼 요량으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선택했는데, 아이는 시간보다 안전이 중요해서 신호등이 있는 '그 횡단보도'를 건너는 구나.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갈 때는 반드시 '그 횡단보도'를 건너야 겠구나 하고 다짐을 해봅니다. 무얼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무얼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지 반성을 합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자 아이는 오른손을 머리 위로 쭉 뻗어 좌우를 살피고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저 또한 35년 전쯤 내 모습이 생각나서 속으로 피식 웃습니다. 우리가 건너야 할 건 "시간 단축, 효율성, 지름길"이 아니라 "가족, 안전, 바른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에게 유치원으로 가는 길 600m는 호기심과 새로움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600m는 10분에 갈 수 있는 거리이며, 아이를 데려다 주어야 하는 아빠의 책무의 거리였습니다. 600m 거리에 있는 횡단보도, 꽃, 풀숲, 거미줄은 아이에게 늘상 호기심으로 바라볼 거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신호등을 기다려야 하는 무료함, 유치원까지 가는 길만 보였습니다. 아이에게 유치원 가는 길은 과정이었고, 저에게 유치원 가는 길은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진 않은가요? 돈, 성공, 명예, 출세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아파트 담보대출금, 내집 마련, 갭투자, 토익 만점, 서울대 합격, 공무원 합격 등 인생의 목적만을 보고 가진 않습니까?
회사 수익성, 영업이익율, 매출 등 성과창출에만 몰입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유치원 가는 길"입니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600m 거리를 어떻게 다녀야 할까요? 알파고가 내게 준 3일 간의 교육동안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갑니다. AI가 줄 수 없는, 해결할 수 없은 아빠와 딸의 등원길에서 다시 생각합니다. 손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 꽃도 보고 길을 건너다. 언젠가는 세상의 수 많은 아빠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초등학교를 데려다 주는 광경을 목도하고 싶습니다. 다음 번에는 꼭 신호등이 있는 '그 횡단보도'를 건너기로 아이와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만은 꼭 지키기로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