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의 편지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1996.1.6일,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시절, 난 아직 대학 2학년을 앞둔 미입대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였다. 김광석은 나보다 5~10살정도 많은 형들이 좋아하던 가수였다. 김건모의 불세출 3집 음반인 "잘못된 만남"이 1995년에 나왔고, 룰라, R.ef, 박미경 과 같은 테크노 댄스가 유행하던 최첨단(?) 음악이 지배했던 1995년이었다. 그러다가 1996년 1월 벽두에 김광석이 사망했다는 기사와 뉴스로 도배하였다. 여전히 통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소극장에서 우리의 삶을 노래하던 그가 떠났다.
그리고 1997.3.18일, 대한민국 신체 건강한 남자로 살아가던 나도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306 보충대에 입대하였다. 그리고 입대하기 2~3달전부터 항상 듣던 노래 1,2번은 "이등병의 편지"와 "입영열차 안에세"였다. 대한민국 남자의 상당수는 입대를 한다. 그리고 20대 초중반에 적어도 한번 쯤은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오늘, 김광석을 다시 만난다.
원래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이 처음으로 부른 노래는 아니다. 원곡은 윤도현이 먼저 불렀고, 전인권을 거쳐서 김광석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의 대표곡이 되었다. 왜 김광석의 노래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일까? 그 '느낌적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가 쉽진 않지만, 이등병의 편지를 다시 듣고, 그 편지를 다시 읽고, 그 편지를 노래하는 김광석을 다시 만나보자.
이등병의 편지는 "군대 입대하는 청년"의 이야기지만, "새로운 삶을 떠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20살을 갓 넘어 집을 떠나서 대학생활 또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기도 한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얘기한 것 처럼 "대한민국 남자에게 가장 큰 악몽 중에 하나는 군대에 다시 들어가는 꿈"이다. 1번은 다녀와 볼 만한데, 2번은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군대이다. 나 역시 고등학생 3년은 다시 해볼만 하지만, 군대 26개월은 정말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감옥에는 가지 않아서 인지 "재소자의 편지"는 노래되지 않지만, 이등병의 편지는 지금도 읽히고, 불리워 진다.
사실 군대 가면 정해진 공간, 시간 안에서 살면, 그다지 지옥같은 곳은 아니다. 물론 병영 내의 구타, 열외, 따돌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비인격적인 군대 처우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내무반 동료들에게 총을 난사하기도 하고, 수류탄을 던지기도 한다. 극단적인 케이스를 제외하면, 내가 군대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나를 버리는 일"이었다. 내 생각은 말해서는 안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철저히 통제되었다. 계급에 따른 수직적인 명령과 지시가 유일하게 지켜야 할 금지옥엽과 같은 신조였다.
세상을 살아보니, 만만치가 않다. 우리는 늘상 "군대"와 같은 환경으로 입대한다. "군대"라는 체계에서는 "짧게 잘린 내 머리"를 보아야 한다. 어색한 짧은 머리를 보며, 처음에는 우습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도 말이다. 세상은 내가 하고 싶은 전부를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머리는 짧게" "용모는 단정하게" "신체는 건강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이등병의 편지" 한장을 고이 접어 보낸다. 그 편지에는 도대체 어떤 말들이 적혀 있을까?
군대가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부모님 전상서라고 명명된 편지를 쓴다. 그 편지에는 고참에게 엊그제 두들겨 맞았던 일, 더블백 메고 완전군장하고 연병장을 뺑뺑이 돌던 일들 적지 않는다. 이미 커버린 이등병은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동료들의 관심과 배려로 군대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군대 밥도 맛있고, 요즘 군대는 구타같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적는다. 그래야 나를 걱정하시는 부모님이 안심하신다. 편지를 받은 어머니는 정말 그런 줄 알고, 옛날 군대를 경험한 아버지는 그저 웃으면서 눈망울이 촉촉해 진다.
이등병의 편지는 병장의 편지와 다르다. 중위의 편지와 다르다. 사회에서 나이가 많았건, 서울대를 나왔던, 돈을 많이 벌었던, 연예인이었던 간에 이병 OOO으로 통한다. 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고, 나는 군대에서 가장 쫄다구이며, 어리버리하며, 다른 고참의 한 마디에도 귀를 쫑긋세우고, 각 잡고 내부반에 앉아 있는 이등병이다. 그게 서러운거다. 서럽운 걸 서럽다고 말하지 못하고 "괜찮다", "여기 사람들 잘해준다"라고 전화기 너머로 부모님께, 애인에게 슬픔을 감추고 통화하는 게 서럽다.
어쩌면, 여전히 나는 "이등병"이다. 일별, 상병, 병장 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이등병이다. 김광석은 그렇게 노래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길... 그치만 그 이등병은 지금도 묻는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라고 말이다.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는 그날 밤 친구들에게 부치는 편지에도, 부모님께 부치는 편지에도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라고 노래한다. 20대 초반 남자는 어김없이 그 길목에서 김광석을 만나게 된다. 김광석을 통해서 나만 그렇지 않구나 위로를 받는다. 짧게 자른 내 머리가 어색하지만, 금새 굳어지지만, "다시 시작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내 젊은 날의 꿈들이 잊혀지지 않고, 건강하게 제대하는 그 날을 그린다. 나만 외롭지 않구나, 나만 그리운 게 아니구나.. 나만 서러운게 아니구나.. 라고 김광석은 읍조리며 내게 위로해 주었다.
20대 초반에 만난 김광석은 내게 "젊은 날의 꿈"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7~8년 쯤 지나 서른 즈음에 다시 또 그를 만나게 된다.
To Be Continued..
P.S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나는 여전히 이등병이다. 오늘은 이 편지를 하늘에 있는 김광석에게 부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