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을 쓰는 아주 여러가지 이야기
일주일 내내 저녁이 없는 삶을 이어오다, 금요일 저녁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칼퇴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회사 건물 뒷편에 주차된 자전거를 타고, 습기와 바다 짠내를 잔뜩 머금은 강바람인지 바닷바람인지 모를 바람을 가르며 퇴근했다. 팀장이 된 이후로 나 없이도 저녁을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은 집 근처 체육관에서 놀다가 들어온다고 했다. 금요일 칼퇴하면, 집 앞에서 제일 먼저 뛰어나와 인사하는 아이들과 웃으며 반기는 아내 그리고 된장찌개 냄새 폴폴 나는 식탁을 상상해 왔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싶다. 하긴, 그런 걸 일방적으로 기대하는 건 나만의 과한 욕심일지 모른다. 오히려, 나 없이도 재미있게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주말이 있는 삶은 끝까지 고수하고 있다. 일주일이 7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일주일이 10일쯤 되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괜한 걱정을 한다. 그래도 5일은 열심히 일하고, 2일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지 아니한가?
땀으로 범벅된 옷을 벗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치약을 짜내어 쓰다가 나를 보았다. 하루에 3번은 쓰는 치약을 짜내며, 3분간 칫솔로 닦아내다가 별의 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박종이 포장에서 나온 새 치약은 갓 잡아온 고등어 마냥 배도 두툼하다. 처음 치약을 쓸 때는 치약 뚜껑 입구 근처를 손가락으로 눌러 짜낸다. 처음 며칠 간은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다. 두껑 근처에만 짜내다 보면, 치약통에 치약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치약을 더이상 짜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거울을 보며, 양치질을 하다가 울컥했다. 내 모습이 치약이랑 닮아 있었다. Work와 Life 사이에서 치약을 짜낸다. 우선 쉽게 짜낼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끌어모은다. 새 치약일 때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짜내다보니, 내 삶의 치약통에 치약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더이상 손쉽게 시간과 에너지를 짜낼 수 없었다.
그랬구나. 난 회사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새벽시간을 짜냈구나. 매일 아침 6시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은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니, 적어도 주말출근은 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 치약을 다시 쓸려면, 치약 밑둥을 잡고, 쭈쭈바 아이스크림을 짜내듯이 손으로 밀어넣었다. 내 삶의 바닥에 있는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면, 또 당분간은 치약을 쓸 수 있다. 이쯤되면, 두 분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첫번째는 처음부터 밑에서 짜내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손쉽게 다시 두껑 근처에서 짜내어 쓰다가 다시 밑에서 짜내서 사람이 있다. 신혼시절, 치약을 쓰는 방법이 다른 부부가 만나면 한번쯤은 옥신각신하게 된다. 아예 처음부터 짜내서 쓰라고 잔소리하는 한 사람과 그냥 대충 살자고 하는 다른 한 사람은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게 된다.
나에게 5일은 두껑근처에서 치약을 짜내는 시간이고, 나머지 2일은 다시 밑둥에서 치약을 짜내서 밀어내는 시간이다. 적어도 2일 동안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소소한 일상이 나를 채우는 새로운 치약인 셈이다. 나머지 2일을 확보하지 못하고 주말 출근을 하는 날이면 치약통에 치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약을 짜내봐야 소용이 없다. 치카치카 양치질을 3분을 하고 나서, 샤워를 하고 잠시 소파에 앉아서 김영하의 소설 책을 읽었다. 불타는 금요일 저녁에 맥주 한캔과 안주로 김영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먹었다. 그러자 현관 너머로 아이들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책을 덮고, 현관 앞으로 나가서 퇴근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반갑게 맞이 한다. 내가 생각한 금요일 저녁 풍경과는 반대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 가족은 불타는 금요일 저녁을 이렇게 조우했다.
아이들이 씻고, 거실에 이불을 펴고 엎드려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다. 큰 아이는 '산에서 살아남기', 둘째 아이는 '신비아파트', 아내는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는다. 나도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꺼내 읽는다. 내가 먼저 잠에 빠져 든다. 스스르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아내는 주말 저녁이 되면 애들 재우고 함께 영화를 보자고 기약없는 희망을 얘기하지만 오늘도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치약 생각을 더 해본다. 치약을 거의 다 쓰고 나서 마지막 힘을 다해 치약을 짜낸다. 2~3번 치약을 짜내서 치약에 묻히고, 치약통은 재활용 분리통에 버린다. 그리고 종이 포장을 뜯어서 새로운 치약을 꺼내 세면대 위에 놓아둔다. 내 마지막 삶의 힘을 2~3번 짜내서 칫솔에 묻혔다. 금요일 저녁,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와 거실에 이불깔고 자는 이 순간이 바로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짜낸 치약이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은 아이들과 함께 일어나서, 함께 아침을 먹으며 일상을 시작한다. 마치 새로 꺼낸 치약처럼 말이다.
치약을 쓰다가 나를 보았다. 치약은 나였고, 내가 쓴 치약은 내 삶을 닦았으며 내 삶을 빛나게 했다. 치카치카 3분의 양치질은 내게 아주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내가 마지막에 짜낸 치약이 나와 함께 하는 가족을 위한 것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적어도 그것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토요일 저녁은 애들 재우고, 아내와 함께 영화보기로 한 약속을 꼭 지킬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