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김형석 #2 : 너의 뒤에서

형석은 광석이 금속이 되기까지 늘 뒤에 서있다.

by 정윤식

일주일에 1편 정도 글을 쓰다보니 어느덧 87편째입니다. 머리 속에만 있던 생각들을 문자로 옮겨 적는 일은 늘 쉽지 않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는 자기 세계의 한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3대 철황에 이어 4대 석학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신해철, 이승철, 김현철, 유영석, 조병석, 김형석, 김광석에 이르기까지 총 7명의 음악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이제 3편만 작성하면, "언어의 한계"의 끝까지 닿아 음악 시리즈는 당분간 없을 것 같습니다.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음악 문맹인 제가 "언어의 한계" 수평선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수평선 끝에서 배를 돌려 안전한 항구에 다다를 것인가? 아니면 수평선 너머로 새로운 땅이 닿기 까지 항해를 할 것인가? 한계의 끝에 다다르게 되면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한계로의 회항, 한계로의 돌파 중 어떤 선택을 하던지.. 항해는 계속됩니다. 그 어떤 선택이 정답일 순 없습니다. 회항을 비겁이라고 말할 수 없고, 돌파를 용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답이 없는 인생의 선택에서 우리는 그 어떤 선택을 하던지 항해는 계속됩니다. 오늘의 출항을 준비하겠습니다.


Chapter 4. 김형석 #2 : 너의 뒤에서


형석은 화학성분으로 CaF2이다. 가열하면 청색 빛이 나온는데, 청색 빛이 마치 반딧불 같아서 반딧불과 같아서 형석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김형석은 "형통할 형"자에 "주석 석"자를 써서 "반딧불 형"자와 "돌 석"자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오늘은 CaF2로 명명되는 "형석"으로 "김형석"을 풀어본다. 형석은 주로 철광석, 알루미늄광석, 니켈광석 등 을 제련해서 순수한 금속인 철, 알루미늄 을 만들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원료로 쓰인다. 김형석은 마치 형석처럼 자연상태에 놓여 있는 원광석을 만난다. 김형석은 본인 스스로 노래하고 빛을 발하는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만났던 다른 가수를 제련하였다. 김건모, 성시경, 박진영, 김광석, 나윤권 등등.. 다들 광석이었지만, "형석"을 만나 순수한 금속으로 다시 탄생하였다.

김형석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빛이 났다. 특별히 자연상태에 있는 신인가수과 함께일 때는 더욱더 빛을 발했다. 이제는 스스로 순수한 금속이 되었고, 연예기획사 빅3가 되어버린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또한 김형석을 만났다. 박진영 1집(1994년)에 수록된 "너의 뒤에서"라는 곡을 보자. "지금 떠나는 널 나는 잡을 수 없는 거야. 넌 이제 떠나지만 너의 뒤에 서있을 거야.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게"라고 노래한다. 물론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을 앞둔 심정으로 이 노래를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말로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볼 수 도 있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신인가수를 키운다고 보자. 신인시절 부터 열심히 노래, 춤을 가르쳤더니 계약을 해지하자고 한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내 품을 떠나버린 새일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은 폴 메카트니에게 음악을 배웠다. 김동률은 신해철에게 프로듀싱과 음악을 배웠다. 하지만 내가 키웠다고 내 품에서 영원히 둘 수 없는 법이다. 제자는 스승에게 음악을 배우지만, 스승과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 광석에서 금속으로 변화시켰다고 형석이 영원히 금속을 품에 둘 수 없는 법이다. 형석이 제련시킨 금속은 형석의 품에서 떠나야 한다. 하지만 형석은 금속이 떠나지만 금속 뒤에서 서 있는다고 얘기한다. 김형석은 그렇게 살았다. 다른 누군가처럼 "저 친구는 내가 키웠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함께한 음악인을 동료로 바라보았고,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고 만족했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주연이 될 순 없다. 한 영화에서 모든 사람이 주연이 될 순 없다. 때론 주연 같은 조연도 있는 법이지만, 조연은 주연이 빛을 발하게 도와주는 역할이다. 결혼식장에 신부보다 더 예쁘게 차려입고 나타나는 민폐 하객이 되면 곤란하다. 무대에서는 주연이 아니지만, 인생에서는 누구나 주연이 될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날 수 있다. 왜 떠나느냐고 고함칠 수 있고, 붙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품을 떠나는 그 사람 뒤에서 서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보다 훨씬 더 크게 날고, 나와는 다른 음악을 만들고 노래할 수 있다.


형석은 광석이 금속이 되기까지 늘 뒤에 서 있다. 하지만 형석도 가열하면 큰 빛은 아니지만 반딧불과 같은 푸른 빛을 발한다. 스스로 빛을 발할 수도 있지만, 형석의 진정한 가치는 광석이 금속이 될 수 있게끔 만나는 조력자의 역할이다. 예수 뒤에 요한이 그러했고, 세종 뒤에 태종이 그러했다. 형석은 스스로를 희생해서 금속을 만든다. 지금껏 김형석은 수많은 가수들 뒤에서 음악을 만들고, 편집을 하고 프로듀싱을 했다. 그리고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게" 그들 뒤에서 늘 함께 했다. 내 스스로 잘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내 뒤에는 늘 "누군가"가 뒤에 있었다. 가깝게는 부모님이 그랬고, 선생님이 그랬고, 친구들이 그랬다. 내 뒤에는 수많은 "형석"들이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게 내 뒤에 서 있었다.


형석은 누군가의 뒤에 있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유재하와 김광석이 김형석 뒤에서 서 있던 사람들이다. 내 앞에서, 내 뒤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너의 뒤에서".. 김형석은 그러했다. "나에게 안기어 쉴 수 있게 너의 뒤에서" 서 있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형석"이 되고 싶다.


P.S 이름대로 인생을 산다고 하던데, 이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의지가 인생을 바꾼 건 아닌지 문득 떠오릅니다. 김형석.. 참 좋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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