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 김광석 #2 : 서른 즈음에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by 정윤식

내 평생 담배를 피워보진 않았지만, 담배를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군대에서 유격훈련 중 고된 훈련 중간에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담배 일발장전을 유격조교가 외칠 때, 다른 이들처럼 고단한 몸을 위로하고 보상코자 꼭 한번은 피고 싶었다.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의 첫 소절을 들을 때였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스무살 때에는 서른쯤 되면 인생이 단단해질 줄 알았다. 먹고 살 걱정없는 직장을 다니며, 내 옆에 사랑하는 애인이거나 아내가 있을 줄 알았다. 초, 중, 대학교를 거쳐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냥 하루 하루 살아가는데 버거워서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이라고 생각했다. 수억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멋진 외제차를 붕붕 타고, 매년 해외여행하며 살고 싶은 것도 아닌데 하루 하루가 그저 "멀어져가는 걸" 지켜봐야했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산 걸로 위로하며 노래를 들었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말이다.


내뿜은 담배연기는 처음엔 제 모양을 갖춘 듯 하지만, 이내 위로 상승하고 흩어진다. 서른 즈음에 그렇게 느꼈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고, 사회에서 내 몫을 당당히 하며 살아가겠다고 초심을 잊지 않고 제 모양을 갖추고 살았지만, 이내 흩어지고 말았다.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라고 묻고 싶었다. 열심히 살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도대체 "무얼 채우기 위해서 살고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20살 부터 30살까지 우린 무얼 채우길 위해서 살았다. 학점, 자격증도 채우고, 스펙도 채우고, 각종 대회 수상도 채우고, 심지어 봉사활동 실적까지도 채웠다. 무언걸 비워 본적도 없이 그저 채우기에만 바빴다. 그런데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되물었다. 그런데 채우면 채울수록 "점점 더 멀어져간다".


서른 즈음에 느꼈을 수많은 얘기와 고뇌를 김광석은 노래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고 말이다. 20대 초중반 남자들은 김광석을 만나고, 또 서른 즈음 청춘들이 다시 김광석을 만나게 된다. 청춘은 항상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은 청춘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과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서른 즈음엔 내 곁에 있는 청춘과 사랑이 내 곁에 영원히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버스를 타기 위해서 백미터 쯤 달려보면, 숨이 차오르고 머리도 어질어질하다. "떠나간 내사랑은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내 곁에 없다.


머물러 있는 청춘과 사랑인 줄 알았는데, 우린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다. 언젠가는 내 곁은 떠난다. 김광석은 내 곁을 떠나는 청춘과 사랑을 아쉬워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루하루 헛되지 살아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내 곁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 같던 엄마, 아빠, 동생, 누나, 오빠, 형은 언제고 나를 떠난다. 계절이 다시 돌아오면 내 청춘에도 하얀 서리가 내리고, 눈가엔 주름이 더한다. 조금씩 잊혀져가는 소중한 사람, 청춘,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김광석은 그 노래를 서른 즈음에 불렀다. 김광석도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곁을 떠났다.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는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서른 즈음에 생각해보니, 그런게 많았다.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갔다. 어릴 적 골목에서 뛰놀던 친구들, 고등학교 때 야자 째고 만화방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 대학시절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들, 그리고 어릴 적 나를 키워주신 돌아가신 남해 할아버지, 할머니.. 조금씩 잊혀져 갔다.


김광석은 1994년 (31살 되는 해, 만 30살)에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1996. 1월에 우리를 떠났다. 만약 살았다면, 2004년 쯤 "마흔 즈음에"라는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마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그는 1악장 : 이등병의 편지, 2악장 : 서른 즈음에, 3악장 : 미완성, 4악장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라는 미완성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는 40대 김광석을 보지 못했다. 그는 영원히 30대 초반의 청춘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에게 머물러 있는 청춘은 계절이 다시 돌아와도 청춘이 되었다. 김광석이 내게 노래한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고 말이다. 지금 이순간 머물러 있는 청춘을 붙잡고, 위로하고, 담배 연기를 피운다.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지만, 그 이별을 슬퍼하지 않고, 지금껏 만나게 해준 그 사람에게 고맙다고 해야한다.


P.S 그러고 보니, 항상 서른 즈음에 노래를 들으면 "담배 한대를 피워보고 싶다." 담배와 청춘은 닮았다. 태워서 내 숨결을 모아서 한 입 머금고 한 숨에 하늘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보며, 이내 곧 사라진다. 오늘은 담배 한 대 피우기에 딱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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