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위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연주하라
포항 땅을 흔들어 놓은 자연의 생채기 앞에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오래 전에 생각해 두었던 글쓰기 시리즈도 안드로메다 행이 되어버렸다. 일상 생활에 사람이 계획한 일들이 이글어져 버렸다. 그 후에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아직도 포항은 가끔 찾아오는 여진으로 몸서리 치고 있다. 유명한 소설제목이자 아주 오래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기대어 아웃 오브 포항을 써본다. 거대한 자연의 생채기 앞에 선 한 인간이 느낀 생각과 감정을 써내려가본다.
영화 속 주인공 카렌이 아프리카에서 17년을 살다가 떠나면서 쓴 이야기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아프리카를 떠나며” 정도가 될 것이다. 나도 1995년에 포항에 횟수로만 22년을 포항과 연을 잇고 살아가고 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거대한 포항제철소를 둔 포항에서 그 정도 살았으니 이제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하다. 언젠가 주인공 카렌처럼 포항을 떠나며 “아웃 오브 포항”이라는 소설을 써볼 수 도 있다. 주인공 카렌(메릴 스트립)이 커피 농장을 시작했듯이, 나로 지칭되는 포항으로 처음 발을 디딘 낯선 사람들이 포항공대, 한동대, 포항제철소로 모여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잊고 있었던 한동대 1기(95학번)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지진의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았고, 20살 시절 공부했던 공대건물(느헤미야 홀)과 기숙사 벽돌이 무너진 광경도 보아야 했다. 또한 회사에서도 지진으로 인한 여러 일들로 정신없는 나날을 맞이 하고 있었다. 한달 넘게 이른 출근과 늦은 출근을 반복하고, 주말이면 피곤해서 골아 떨어졌다. 이제 점점 줄어든 여진의 간격 만큼 나도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는 중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OST는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으로 유명하다. 광활한 초원에 떨어지는 저녁노을에 클라리넷 연주가 구슬프지만 담담하게 흘러나온다.
문득 모짜르트의 삶과 클라리넷 협주곡이 포항과 중첩이 되었다. 클라리넷은 모짜르트가 활약하던 당시에는 인기있는 악기가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에서 협연으로 관악기로서 역할이 주되었고, 오케스트라의 협연의 주인공은 늘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였다. 당시 모짜르트는 프리랜서 작곡가로 무척 궁핍하고 가난한 삶을 살았다. 빈 궁정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들러”는 모짜르트의 천재성과 궁핍함을 생각하며 클라리넷 곡을 의뢰하고 또 직접 연주했다고 한다.
바로 그 곡은 모짜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이자 마지막 협주곡이 된다. 한동대도 궁핍하던 중에 지진을 만났다.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얘기하던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만드신 자연 앞에 곳곳이 무너져 내렸다. 그 와중에 우리의 사정을 딱히 여기는 수많은 “안톤 슈타들러”가 궁핍함을 생각하며 “클라리넷 곡”을 의뢰하고 있다. 세상에는 한동대보다 더 주인공같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협주곡이 많다. 한동대는 아직까지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2번 협주곡, 베토벤 피아노 5번 협주곡(황제)와 같은 협주곡은 아닐지 모른다. 궁핍하고 눈물나는 모짜르트에게 그의 생 마지막 2달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쓴 곡이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포항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떠나는 수많은 “카렌”에게 말하고 싶다.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나 다름없다. 언젠가 포항을 떠나며, 아웃 오프 포항할 시간을 기억하며 “그대를 위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연주하라”. 비록 세상에 주목받는 피아노,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가 아니더라도, 궁핍한 이웃을 생각하며 “클라리넷” 연주곡을 의뢰하고 직접 연주하는 안톤 슈타들러를 기억하자. 그리고 광활한 초원에 드리운 저녁노을을 뒤로 하고 클라리넷 연주곡을 들으며 살 수 있기를 기원해보자. 우리네 인생은 1악장 알레그로(빠르게), 2악장 아다지오(느리게), 3악장 론도 알레그로로 연주된다.
“아웃 오브 포항” OST도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으로 연주되고 들려지길 바란다. 그래서 3악장이 되는 날 론도 알레그로가 되어 다시 빠르고 경쾌하게 연주되어야 한다. 포항땅도 그러하고, 내가 다니고 졸업한 한동대도 그러해야 한다. 오늘은 내 삶과 비슷한 클라리넷 연주곡에 흠뻑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