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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28. 2021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과 무지개

 신해철이 넥스트 활동을 해체하고, 영국 4년, 미국 2년의 고달픈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결성한 그룹 이름이 비트겐슈타인이다. 2000년에 신해철을 통해서 생경한 비트겐슈타인 철학자 이름을 듣고 나서,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그 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되었고, 인터넷 가명을 비롯하여 게임 아이디는 비트겐76으로 활동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유대인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루드비히의 형은 파울 비트겐슈타인인데, 1차 세계대전에 부상으로 오른팔을 잃어버렸고, 모리스 라벨은 그를 위해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헌정한다.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프랑스 모리스 라벨에서부터 대한민국 신해철에 이르기까지 음악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현대철학이나 언어에 관한 논쟁을 얘기할 때 빼놓을 없는 철학자 중에 한 명으로 손꼽히지만, 그의 천재적인 면모와 화려한 명성에 비해서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이다. 그는 32세에 “논리-철학 논고”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서양철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의 전기 철학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로 설명할 수 있다. 유명한 그의 책 첫 시작은 이렇게 시작한다.

 1 세상은 사건들 모두의 총합이다.

  1.1 세상은 사물이 아니라 사실의 총합이다.

   1.1.1 세상은 사실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들이 모든 사실이라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1.1.2 왜냐하면 사실의 총합은 무엇이 사실인지, 그리고 또한 그것이 사실이 아닌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1.1.3 논리적인 공간의 사실들은 세계이다.

  1.2 세상은 사실로 나뉜다.

 

 이렇게 되어 있는 책이라서, 나도 사실 책을 사두고 몇 번을 도전해봤지만 늘 실패하던 책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읽으면 수면을 유도하는 최고의 책 중에 하나이다. 그가 말하는 바 중에 하나는 “5.6 나의 언어의 한계들은 나의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라는 말이다. 이 말은 언어철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세계의 언어생활에도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야나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길 좋아한다. 특히 회사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자신이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속단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가장 쉬운 예가 “라떼”라는 말이다. “라떼”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현재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물론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 양식이 현재와 미래에 100% 통하는 마법 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성세대들은 자신 세대의 경험을 진리라 확신하고, 다음 세대에 강요하거나 쉽게 조언한다. 내가 경험한 바는 “말할 수 있는 것”이자 “사실”이라고 하면 내가 겪었던 사건들의 총합은 “나의 세상”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바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건 내게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세상”이 될 수 없고,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사실들”은 나의 언어의 한계이자 나의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


 그러니, “말할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준다. 내가 깊이 생각하지 않은 문제나 내가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은 업무들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회사에서 내가 팀장, 선배라고 함부로 훈계를 두거나 멘토가   없다. 하지만 팀원, 후배와 함께 “말할  없는 들을 함께 고민하고, 께 심사숙고한 생각을 한 후에 비로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한마디라도 말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과 내가 말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정의는 철학적으로 매우 다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나는 MZ세대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쉽게 MZ세대, 페미니스트, 외국인, 비정규직, 동성애자 이슈에 대해서 “말해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겪어본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 찬 “그들”을 만나본 내 의견과 느낌을 말했을 뿐이다. 내가 말한 건 “그들”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관한 내 의견”이었는데, 그걸 객관적인 양 진리인 양 확신에 차서 말해왔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말할 수 없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침묵코자 한다.


 때로는 침묵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다. 나의 왜곡된 시각과 의견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비주류에게는 칼이 될 수 도 있다. 그리고 그 칼은 부메랑이 되어서 “나”에게도 돌아온다. 비트겐슈타인은 부지깽이로 칼 포퍼를 위협한 것처럼, 나에게 부지깽이로 경고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그리고 동성애(또는 이성애자)로 살아온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에게 무지개를 보여준다. 그 무지개는 우리가 말할 수 있다고 믿었던 7색 무지개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무한대 색감을 가진 무지개이다. 저 세상 너머에 무지개가 드리운다. 그리고 난 오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더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무지개 너머(Over the Rainbow)의 세상을 배우며, 경험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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