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글을 쓰는가?
어느 덧 브런치에 쓴 글을 세어보니 100편째다. 2013년 11월 30일, 모교인 한동대학교 총동문회 컨퍼런스에 참석하지 않은 죄송한 마음으로 “소설로 써보는 한동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했다. 그게 계기가 되어서 평소에 생각해 둔 바를 글로 써서 “나의 3대 음악철황”을 연재했고, 나중에는 페이스북을 떠나 브런치로 이사하여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지금껏 써 왔던 글 제목만을 보면, 주로 음악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가끔씩 수학, 물리, 영화, 철강, 개인사 등을 썼다. 오래 생각해둔 생각을 옮긴 글도 있고, 30분만에 쓴 글도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글을 쓰는가? 참 어렵고도 쉬운 질문이다. 내 글은 기껏해야 20여명 남짓한 독자들이 읽는 소소한 글수준에 불과하고, 딱히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그닥 인기 있는 주제도 아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하다.” 글쓰기가 취미활동은 아니지만,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뿌듯함을 느낀다. 물론 독자의 반응이 뜨거워지면, 왠지 들떠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글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난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100번째 글쓰기까지 탄생한 것이다.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IQ84 3권과 기사단장 죽이기 2권을 읽었다. 그 중 기사단장 죽이기는 제목과는 다르게 읽었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중세 십자군 전쟁 때 “요한 기사단, 독일 기사단”이 등장하고, 기사(Knight)들의 전투장면이 나오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21세기 일본의 한 화가에 대한 얘기일 줄은 몰랐다. 좀 이해하기 힘든 소설 내용이 등장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판타지에 어느 정도 적응된 상태라 허무맹랑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흔든 건 두 권의 책제목이었다. “1권 : 현현하는 이데아, 2권 : 전이하는 메타포”
마치 내가 쓰는 글쓰기의 주제를 가르는 분류인 것 같았다. 첫번째 주제는 “현현하는 이데이”이다. 우리는 주변의 수많은 이데아에 둘려 싸여 살아간다. 국가, 경제, 철학 등으로 일컫어 지는 이데아이다. 특히 국가주의 아래에 버젓이 벌어진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나 강압을 수없이 겪어왔다. 하루키는 “기사단장”으로 대표되는 “이데아”에 칼을 꽂았다. 그래서 하루키는 일본 우익단체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었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유, 인권, 평등 등 불과 2세기 전만해도 기성세대에게는 매우 전복적인 개념이었다. 나는 내게 둘러싸인 “이데아”에 대해 쓰고 싶었다. 아직도 이 시대를 떠도는 “현현하는 이데아”에 대해 썼다.
두번째 주제는 “전이하는 메타포”이다.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에 나오는 “긴 얼굴”을 상징한다. 이데아와는 상반되는 메타포인 것이다. 내 주변에 떠도는 메타포에 대해서 글을 썼다. 메타포는 이데아에서 이데아로 이어지고 하고, 메타포에서 메타포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 개인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는 “현현하는 이데아”로 살아가기 보다는 “전이하는 메타포”로 살아가야 행복한 사람이다. “전이하는 메타포”는 자유를 꿈꾸지만, 현실은 늘 “이데아”에 구속을 받거나, 이데아로부터 먹고 사는 것을 공급받는다. 그래서 이데아와 메타포 사이에서 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100편의 글을 쓰면서 나 또한 “이념과 잡념” 사이에서 방황했다.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길을 40년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말이다. 앞으로 200편을 쓸 수 있을까? 특별히 목표하지 않았지만, “이념과 잡념”사이에서 방황을 계속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내가 글쓰면서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이데아”에 감사하고, 진 빚이 있다. 하지만 그 위대한 “현현하는 이데아”의 심장에 칼을 꽂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전이하는 메타포”로 넘어갈 수 있다. 내게 회사, 모교, 국가가 “이념”이고 “현현하는 이데아”이다. 왜 나는 글을 쓰는가? 라고 다시 묻는다면, 난 이렇게 답을 할 것 같다.
나는 글을 쓸때 행복합니다. “현현하는 이데아”를 넘어서 “전이하는 메타포”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게 글쓰기는 “기사단장 죽이기”입니다. 매번 칼을 꽂아 죽이지만, 늘 이데아는 살아납니다. 저는 지금도 “이념과 잡념”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방황은 행복합니다.
P.S 그동안 100편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께 정말 감사한 인사드립니다. 101편은 1편을 쓴다는 마음으로 새롭게 써보겠습니다. 101편은 “현현하는 이데아”의 대표선수 중 한 명인 “비트겐슈타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