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간의 긴 여정 (1976.2.10 ~ 2018.3.31)
안녕하십니까? 저는 43살 인생 후배 정윤식입니다. 저는 2004년 1월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회사에서 만 14년을 근무하였는데, 저보다 정확히 3배나 더 많이 근무하신 김세영 선배님의 정년퇴직 축사를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실 다른 선배사원님의 퇴직 축사내용 중에서 이름만 바꿔서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남자가 42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 하는 이 자리에 여기에 계신 분들을 대표해서 저 또한 인생의 후배로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심하였습니다. 저의 어줍잖은 글쓰기 실력으로 42년간의 긴 여정을 담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세가지 시점에 대해 하나씩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정년퇴직 축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첫번째 장면입니다. 1976년 2월 10일 화요일, 19살 건장한 사내가 을씨년스럽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포항종합제철소에 첫 발을 딛었습니다. 실향민 2세인 19살 까까머리 사내는 저 멀리 광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북에서 남으로 오셨고, 19살 사내는 서에서 동으로 왔습니다. 그의 아버지에게 광주는 제2의 고향이었으며, 그에게 포항은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두 딸의 아버지이자, 얼마 전에는 할아버지도 되었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이어온 아버지와 아들의 인생은 대한민국 역사의 축소판입니다. 이 두 세대의 긴 이동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지금의 포스코도, 또한 지금 이 자리도 없었을 겁니다. 누구에게나 첫 시작의 날들이 있습니다. 1976년 2월 10일이 그에게 첫 시작이었고, 오늘은 그 날부터 시작된 긴 여정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모였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을 대표하여 1976년 2월 10일 화요일, 첫 직장생활이 두렵기만 한 어리벙벙한 19살 까까머리 남자아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세영아, 포항은 처음이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굳세게 견뎌. 넌 충분히 잘해 왔고 잘해 낼꺼야.” 그리고 국제시장 황정민이 방에 걸린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보며 했던 마지막 대사로 오늘은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부지예 진짜~~ 내 힘들었다예”
두번째 장면입니다. 2018년 3월 23일 금요일 19시, 19살 소년이 61살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건장한 할아버지가 여기 이 자리에서 정년퇴직을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3, 23, 19, 61은 모두 소수(영어로 Prime Number)입니다. 소수는 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지는 1을 제외한 양의 정수를 의미합니다. 김세영 선배님의 인생은 소수와 닮아 있습니다. “김세영”이라는 한 사람의 인격체는 1과 자신만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합니다. 김세영 선배님에게 1은 그가 유일하게 다닌 회사인 주식회사 포항종합제철이었으며, 평생을 다하여 한 사람만을 사랑한 전순복 여사님이며, 여전히 아기와 같이 사랑스러운 두 딸 김지혜, 김득애입니다. 그는 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이 시대의 소수의 멋쟁이(A Few Good Man)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에는 당신 가슴속에 자기 자신과 1외에는 모르는 황금같은 시간(Prime Time)을 이어나가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장면입니다. 2018년 4월 1일 일요일, 포스코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하고, 자연인 김세영 선배님은 자립 1주년을 시작하게 됩니다. 포스코 창립 50년 역사 속에 42년은 84%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4월 1일부터는 자연인 김세영 선배님은 0%부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82%의 공정율을 자랑삼아 얘기하는 쉰세대가 되기보다는 0%의 kick-off를 얘기하는 불타는 신세대 청춘이 되시길 바랍니다. 1976년 2월 10일은 화요일이었고, 2018년 3월 23일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그동안 지내온 42년은 화요일인 불이 금요일인 금속철을 만드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이제 4월 1일 만우절부터는 거짓말처럼 회사에 더 이상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이제 더이상 나오시면 안됩니다. 0% kick-off는 일요일부터 입니다. 일요일은 아빠가 요리사가 되어 가족들과 함께 짜파게티를 먹는 날입니다. 지금껏 화요일에 시작하여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을 했다면, 4월 1일 일요일부터는 마음껏 쉬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전순복 여사님도 0% 인생인 김세영 선배님께 삼식이라고 구박하지 마시고, 사랑스런 두 따님도 손자손녀 양육을 부탁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4월 1일부터는 회사 “사람찾기”에서도 더 이상 김세영 선배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 속 “사람찾기”에서는 가슴 따뜻한 상남자 수컷 김세영 선배님을 언제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서에서 동으로 온 19살 김세영, 1과 자신밖에 모르는 61살 로맨티스트 김세영, 마지막으로 4월 1일 일요일부터 매일매일을 일요일같이 살게 될 0% 인생 김세영 선배님을 위해 건배의 잔을 올립니다. 건배사는 비바 프리마베라(Viva Premavera)입니다. 이 말은 스페인어로 “빛나라 청춘, 또는 빛나는 봄날”이란 뜻입니다. 이제 따뜻한 봄날이 시작되는 4월 1일부터 청춘의 삶을 사시게 되는 영원한 일요일 인생을 위해 건배하겠습니다. Viva! Primavera!!
2018.3.23일 19시, 61살 김세영 선배님 정년퇴직 축사를 갈음하며,
43살 정윤식 후배 씀
P.S 3, 23, 19, 43, 61 이 모든 수는 소수(Prime Number)입니다. 이 글을 영원한 청춘인 김세영 선배님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