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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Oct 05. 2015

철 이야기 #1. Slag는 부피이다.

(부제 : 삶의 부피를 견디어라.)

인간의 역사를 서술하는 연대기적 표현에 따르면,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로 이어진다. 철은 문명의 퀀텀(Quantum) 점프를 이루게 한 신비로운 금속이었다. 금과 은(Gold and Silver)은 그 금속의 희소성으로의 화폐로 쓰였고, 구리와 철은 그 화폐를 지키기 위한 야누스의 무기로 쓰였다. 철은 문명을 지탱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무기(Weapon)로 쓰이고, 그 문명을 건설하는 건축재(H빔)로도 쓰이고, 또한 그 문명을 서로 잇는 이동재(Car, Train)으로 쓰이고 있다. 


철은 입방미터(가로 * 세로 * 높이 = 1 m * 1m * 1m) 당 7.8톤이라는 엄청난 밀도를 지닌 굉장히 무거운 금속이다.  그래서 육중한 무게로 인류 문명을 든든히 지켜주는 수호천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우리 문명을 스스럼 없이 파괴하는 파괴악마 역할도 맡기도 한다. 그런 "무거운" 철을 어떻게 만들까? 철(Steel)을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Slag이다.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1순위로 필요한 것이 철광석(Iron Ore)이다. 인류 역사상 첫번째 철은 "자연(Nature)"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철광석은 주성분이 Fe2O3로 이루어졌다. 쉽게 생각하면, Fe이란 원소가 O(산소)를 잔뜩 품고 있는 형태가 바로 철광석이다. 과거 한반도에는 김해지역에 철광석이 있었으며, 그 지역에서 찬란한 철기문명인 가야가 번성했었다. 철광석은 주성분이 Fe2O3가 주로 있지만, 다른 친구들인 SiO2 같은 맥석도 함께 섞여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자연(Nature)은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에 있기를 가장 선호한다.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있기를 원해서 Fe는 산소와 결합해서 Fe2O3가 됨으로써 가장 에너지 준위가 낮은 상태가 된다. 그런데 Fe2O3, SiO2 등과 같은 물질들이 섞여 있는데, 그 중에 Fe를 건져내야 한다. 우선 Fe에 붙어 있는 O(산소)를 떼어내는 주 역할은 C(탄소) 덩어리인 석탄(코크스 형태로 주로 만든다.)이 담당한다. SiO2(실리카)를 떼어낼려고 하면 Si보다 O(산소)와 잘 결합하는 Ca(칼슘)을 활용한다. 칼슘은 자연상태에서 CaCO3(석회석, 시멘트의 주성분)로 존재하는데, 이 석회석(CaCO3)을 철광석(Fe2O3 + Si2O3)과 같이 투입하면 철광석에 있는 실리카와 결합해서 슬래그 형태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너무 어렵게 설명했는데, 좀 쉽게 설명하면..

철광석에는 Fe2O3와 Si2O3가 있는데, 철과 함께 붙어 있는 산소는 C(석탄)이 떼어내고 CaCO3(석회석)이 Si2O3를 떼어낸다. 이 때 철을 만들기 위해서 CO2와 슬래그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설명한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어렵게 들린다면, 그건 전적으로 설명을 제대로 못한 필자의 탓이다."Slag는 부피이다."란 표현을 다시 상기시켜보자. 슬래그는 비중이 대략 2.3정도 된다. 철이 7.8에 비하면 대략 3배 정도 되는 셈이다. 그런데 1톤의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0.5톤의 슬래그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걸 부피로 다시 환산해보면, 1m3의 철(1톤)을 만들기 위해서는 1.7m3의 슬래그(0.5톤)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철은 입방미터에 하나의 부피로 생산될 수 있지만, 슬래그는 돌멩이 형태(괴재슬래그)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공극률을 고려했을 때 대략 2배이상의 부피(2m3)로 만들어진다.


다시 설명하면 1톤의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 0.5톤의 슬래그가 생성되지만, 부피로 환산하면 1m3의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 2m3의 슬래그가 생성된다는 얘기이다. 우리 삶에서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고, 우리의 에너지를 쏟는 대상을 이룩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철을 만들기 위해) 방해되는 요소(맥석)을 제거하기 위해서 또 다른 무언가(석회석)을 첨가한다.


삶은 그렇게 정제하고 목표를 위해 살아가면, 무언가 희생해야 하고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 당신이 회사에 야근하고, 당신이 공부를 위해서 매진하면, 다른 무언가는 댓가를 치른다. 이 땅에 수많은 직장인이 야근하고, 이 땅에 수많은 취준생들이 취업을 위해서 매진한다. 그리고 그 다른 무언가를 댓가로 치른다. 하지만 공짜는 없는 법이다. 그 댓가로 우린 그보다 덜 값지고 생각되는 슬래그를 얻는다. 그리고 그 목표보다 무게(가치)는 적게 나가지만, 그 부피는 그 무게가 적은 만큼 보상하여 우리 삶을 짓누른다.


이사짐을 싸 본적이 있는가? 때론 책처럼 부피는 얼마나가지 않지만 무게가 무거운 짐을 옮길 수도 있지만, 옷이나 이불처럼 무게는 가볍지만 부피가 큰 짐을 나를 수 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무게로만 이사짐을 싸진 않는다. 삶의 부피도 커버리면 이사짐을 제대로 쌀 수 없다.


슬래그는 우리 삶의 도처에 널려 있다. 당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그 무언가(철)를 위해 달려갈 때 그 만큼의 부피만큼 덜 무게나가는 또 다른 무언가(슬래그)로 삶은 채워진다. 삶의 무게가 우리를 짖누를 수 있지만, 삶의 부피는 우리를 질식시킨다. 당신의 삶을 가치 있는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때론 

삶의 부피를 견디고, 슬래그를 처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당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자. 삶의 무게와 부피... 그 동안 무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

하지만, 슬래그는 당신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의 삶의 부피를 감당할 수 있느냐고..

그 삶의 부피는 아내와의 대화일 수 도 있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는 소소한 삶의 재미일 수 있다. 그저 중요하고 급한 일만이 당신의 삶을 채워주진 않는다. 그 부피를 견디고, 그 부피도 즐거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철을 만들고, 슬래그도 함께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슬래그가 이런 저런 곳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시대까지 왔다. Slag는 부피이고, 그 삶의 부피를 견디는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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