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직장인의 이상한 이야기 #2

중국 칭따오 출장에서

by 정윤식

2014년에 중국 칭다오 출장 중에 쓴 글을 다시 씁니다. 아이폰에 남겨진 추억의 글들을 소환해서 여러 편 공개할까 합니다.


제목 : 중국 칭따오 출장에서

칭따오에 도착해서 처음 드는 생각은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저 책에서 신문에서 남에게 들어왔던 게 전부인 양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중국인 스스로도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이방인이 보는 시각이 마치 진실, 사실인양 떠드는 내 모습이 가소로와 보였다. 칭따오 출장은 2주가 넘는 일정이라 주말을 이용해서 칭따오 근처에 있는 공자의 고향인 곡부(취푸)와 태산(타이산)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온 방문지라 평소와는 다르게 중국에 대한 역사공부 없이 그저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취푸에 도착해서 공자의 사당, 공자 후손이 살았던 동네 그리고 공자집안의 가족묘를 둘러보았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공자, 맹자로 대변되는 유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유교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스승을 존경해야 하는 규범으로서 우리의 삶을 규제하고 있으며, 생활의 경계를 부지부식간에 그어놓고 있다. 하지만 유교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여전히 적합한 사상일까 하고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부지러움을 강조하는 사상, 인의예지로 대변되는 공자의 사상.. 하지만 유교는 과거 신분사회에서 계급의 체계를 강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임금은 임급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이 얼마나 스스로의 신분을 인식하고 자신을 규제하는 신분 역할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인가? 그렇게 중국, 한국, 일본의 왕들과 사대부, 사무라이들이 자신의 체제를 공고하게 하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활용되었다. 그래서 평등을 강조하는 기독교 사상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지속적으로 탄압을 해왔다.

하지만 맹자는 왕이 왕답지 못하면 왕도 바꿀 수 있다는 역성혁명을 주장했다. 지금으로 치면 마르크스 자본론과 맞먹는 경천동지한 주장이었다. 그래서 수 많은 왕들이 맹자의 사상을 탄압하였다. 서양에서는 구체제 앙시앙 레짐을 콩고드 광장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를 단두대에 처형하고 왕당체제에서 공화정 체제로 변신을 꾀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대흐름을 역행하는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스스로 황제로 칭하였다. 하지만 더 이상 왕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부를 창조한 부르조아들의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개념은 당연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여전히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민중이 단 한번도 왕을 참하지 못하였지만, 왕이나 다름없던 이승만을 4.19 혁명을 통해 추출하였다. 하지만 구체제의 해체는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하고 왕당파인 박정희를 등장하게 만들었고, 그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지만 촛불혁명으로 국민 스스로 주권자임을 확인하였다. (이 부분은 2018년에 다시 쓴 글입니다.)


그렇게 우리 역사의 바퀴는 흘러간다. 공자가 꿈꾸는 세상은 적어도 피지배 계급을 억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 역할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은 유교를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하였다. 취푸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은 공자를 상품화한 중국 사람들의 장삿속도 아니고, 공자의 사상이 21세기에 다시 부활하여 유교사상의 재복귀(르네상스)도 아니다. 취푸에서의 하루는 나에게 많은 화두를 던졌다. 공자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과 우리가 이제 극복해야 할 사상과 마지막으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세상이 어떤 지를 한번 더 고민해본다.


공자의 묘 앞에서


P.S 2014년 8월 쯤 쓴 글인데, 약 3년 반 동안 내 글쓰기가 조금씩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가다듬지 않은 원석의 번득함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루키가 지여야 할 창의성과 베테랑이 가져야할 노련함을 다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저는 루키가 지여야 할 창의성을 고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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