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창문에 걸려 있는 거미 한마리가 말을 건넨다.
새벽녘에 잠을 깨고,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은 봄날 아침 6시경에 하늘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이중 문 너머 창문에 걸려 있는 아주 작은 거미가 눈에 띄었다. 0.5cm보다 더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위태롭게 거미줄 위에 걸려서 부지런히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창문 너머 바람은 휘몰아치고, 한 가닥 거미줄에 매달려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모양이 애처로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 같아서 물끄러미 10분을 넘게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거미는 자신의 몸에서 거미줄 한 가닥을 뽑아내어 세상의 세찬 바람을 이겨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으로 할 수 있는 노동의 가치, 시간의 가치를 뽑아내어 세상에 나온다. 마르크스는 무산자 계급이라고 했고,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렀으며 우리는 노동자, 근로자, 소시민, 서민으로 불리우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애처롭거나 슬픈 건 아니다. 99%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 뽑은 거미줄 위에서 살아간다. 매서운 바람에도 왠만해서는 그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는다. 거미는 자신의 몸 크기와 몸무게에 버틸 만한 거미줄을 뽑아낸다.
그 한 줄을 의지해서, 거미줄을 부지런히 쳐댄다. 다 쳐놓은 거미줄을 보면, 거미가 중간에 아무 일없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미는 새벽에 이슬을 맞으며, 4층에 창문에 기대어 2~3시간 거미줄을 쳐낸다.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한 가닥, 한 가닥 거미줄을 씨줄, 날줄로 엮어 낸다. 0.5cm 작은 거미도 그러할 진대, 100cm가 넘은 사람들도 열심히 거미줄을 쳐낸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미세먼지가 나쁨이어도, 거미줄을 쳐낸다.
내가 처음에 바라 본 건 거미줄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거미였지만, 다시금 생각해 낸 건 그 어떤 바람에도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위태로워도, 내 몸에서 뽑아놓은 거미줄 한 가닥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거미조차도 절대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새벽녘, 창문에 걸려 있는 거미 한마리가 말을 건넨다.
“나 혼자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여도, 한 가닥 거미 줄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묵묵하게 거미줄을 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새벽녘에 거미를 보며, 처음엔 안타까웠다가 나중엔 대견스러웠다.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거미들에게 말을 건넨다. “넌 위태롭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자신만의 거미줄을 치며 살아가는 거미입니다.” 난 오늘도 0.5cm 작은 거미에게서 인생의 작은 진리를 배운다.
P.S 그 날 새벽, 그 거미는 어디서 무얼하면 잘 살고 있을까? 거미의 말을 안다면, 한 마디 건네보고 싶다. 오늘따라 너무 쎈티한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