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오늘, 어제 그리고 내일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5.5~5.7일까지 3일 동안 남해안에 다녀왔습니다. 남해에 계신 이모님댁에도 찾아뵙고, 조부모님 산소에도 다녀왔습니다. 첫째 날은 화창한 봄날이라서 상주은모래비치(예전 상주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은 모래파기 삼매경에 빠져 놀았습니다. 그 날 밤부터는 봄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그 다음 날 5.6일에는 야외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처가집인 통영으로 넘어가기 전에 남해 독일마을에 들러서 구경도 하고 커피숍에서 커피와 핫초코를 먹자는 의견에 따라 오랜만에 남해 독일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남해의 오늘, 어제 그리고 내일에 대한 얘기입니다.
제목 : 남해 독일마을, 미륵보살 그리고 죽방멸치 (남해의 오늘, 어제 그리고 내일)
1. 남해 독일마을 - 남해의 오늘
요즘은 인터넷의 세상이라 네이버나 구글에 “남해 가볼만한 곳”이라고 검색하면 주르륵 추천 리스트가 뜬다. 지금 현재 가장 핫한 남해의 핫 플레이스는 단언코 남해 독일마을이다. 탈렌트 박원숙 씨가 근처에 터를 잡고 살고, 유명한 사람들이 따뜻한 남쪽나라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독일에 간 간호사 출신 한국여성들이 독일 남편들과 함께 남해에 내려와 독일식 집을 짓고 정착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에 입주를 시작했고, 최근에 아주 핫한 플레이스가 되었다.
사실 내가 어린 시절(70~80년대)만 하더라도 독일마을이 있었던 물건리에는 물건방파제, 원예촌이 유명했고, 독일마을은 있지도 않았다. 그러다 2002년에 새롭게 사람들이 모여들고, 최근에는 주변에 커피숍, 편의점, 파독전시관까지 생기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주말이나 연휴에 찾아갈려고 하면, 주차난으로 몸서리를 앓고 있어서 있다. 그래서 주변에 도로 확장공사도 진행하고 있고, 언덕 주변으로 빈 땅이 없을 만큼 각종 커피샵, 빵집, 쏘세지집 등 엄청나게 몰려든 자본에 의해서 개발 중에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남해 물건리 촌구석에 중학교가 새로 생기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아마도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카페, 펜션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늘어나자 중학교까지 개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보물섬이라고 지칭하는 남해의 현재는 바로 독일마을이다. 독일마을의 성공이 부러운지 남해에는 미국마을도 생겨나고, 나중에는 프랑스마을, 영국마을도 생겨날 지도 모르겠다. 인구가 4만 4천명 밖에 살고 있지 않은 남해군이 젊은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넘쳐나서 남해의 현재를 즐기고 있고 남해의 자연을 만끽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자본은 넘쳐나게 되고, 한적한 독일마을은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독일테마마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막상 한적한 노후생활을 보내기 위해 왔던 파독 간호사와 그 남편들은 유유자적한 자연을 느끼기 보다는 주말이면 넘실되는 인파와 끊임없이 오르는 땅값으로 인해서 자본의 맛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남해가 고향인 나 또한 남해의 오늘이 자연보다는 자본에 함몰되는 건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된다.
2. 보리암 관세음보살 - 남해의 어제
개인적으로 남해의 핫 플레이스를 꼽으라 하면 “보리암, 편백자연휴양림 그리고 상주은모래비치”를 선택한다. 그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남해 금산에 있는 보리암이다. 남해 보리암은 남해의 어제를 상징한다. 남해 보리암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는 불경구절에 나오는 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 보살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이야 남해가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유명하지 아주 예전에는 지독스레 못사는 곳이었고, 조선시대에는 남해안 지역에 거제도와 남해도가 유명한 유배지였다.
처음 결혼하기 전에 통영에 있는 처갓집에 장인께 인사를 하러 갔는데, 제 고향을 물어보시더니 남해사람을 독해서 별루하는 말씀을 하셨다. 남해안 지역에는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통영에서는 재능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와 더불어 통영에 살아 있는 열 사람이 남해 죽은 한 사람 못 당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만큼 남해 사람들은 억세고, 생활력이 강해서 다른 뭍사람들이랑 소위 레베루(레벨)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남해에서는 남해 열 사람이 창선 죽은 한 사람 못 당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남해는 큰 섬이 두 개 있는데, 하나가 통상적으로 남해라고 하고 오른쪽 위에 있는 섬이 창선이다. 창선사람들은 남해사람도다 훨씬 더 독하다는 이야기이다.
남해의 어제는 조선시대 유배지로 악명을 높여고, 멸치로 유명한 미조면을 제외하고는 밭농사나 하는 가난한 동네였다. 그래서 먹고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이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을 신앙으로 삼아서 근근히 살아갔다. 그러다가 산업시대에는 남해에 무수히 많은 젊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가서 돈을 벌었고, 그 중에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남해를 떠나서 부산 영도에 살았다. 부산 영도에는 그렇게 가난한 남해사람들이 함께 모여사는 이상한 집성촌이 형성되고, 내 주변의 친구 중에 20~30%는 남해 사람들이고, 또 20~30%는 거제도 사람이었다. 또 우리 집에 주로 드나드는 사람은 남해 윗동네, 아랫 동네 사람들이었다.
그 만큼 남해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밖에 없는 탓에 억세고, 독할 수 밖에 없었던 거 같다. 그런 프레임 때문에 통영 사람인 아내도 나보고 가끔 “남해 사람 독하다.”라는 말을 한다. 그런 독한 사람이 믿는 바는 우리의 괴로움을 구제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었다. 척박한 환경이 억센 사람들을 키워냈고, 또한 이 세상을 구제할 관세음보살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집은 관세음보살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집안이 되었다.
P.S 남해의 내일 편은 추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5월에 다녀온 남해 가족여행기를 이제서야 올립니다. 저의 오래된 서랍에는 아직도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