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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관리되지 않는다.

절영지연, 우리 모두의 갓끈을 끊읍시다.

by 정윤식

최근에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 때문에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공간에는 지속적으로 글을 써서 그런대로 글쓰기 감각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주 간단하지만, 제 얘기를 해볼려고 합니다. 짧은 글이지만 저의 “심경고백”과 같은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제목 : 사람의 마음은 관리되지 않는다. (The others’ mind shall not managed.)

부제 : 절영지연, 우리 모두의 갓끈을 끊읍시다.


97년 3월, 군에 입대해서 경기도 양주 덕정리에 있는 전차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덕정역에서 내리면, 택시를 타고 가면 10여분 이면 닿을 수 있는 부대였습니다. 한번 쯤은 다시 거기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제대하고 다시는 찾아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탓에 아직도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군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가지 않은게 아니라, 삶이 너무 바빠서 거기에 이르지 못한 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남자들이 맨날 하는 얘기가 군대, 축구 이야기로 하는데, 오늘은 군대 얘기만 하겠습니다.


이등병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내무반 침상에 각 잡고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저녁 식사 신호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등병은 식사 신호가 떨어지면, 내무반에서 뛰어나와서 복도를 달리고 계단을 달려서 막사 앞에 가장 먼저 줄을 서야 합니다. 눈썹이 휘날리지는 않았지만, 빡빡 머리가 바람에 젖혀질 정도로 질주해서 복도와 계단을 달려 내려갔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거기 작은 놈.. 일루 와..”

무슨 말은 들렸는데, 저는 맨 먼저 줄을 서야 했습니다. 그래서 “기준 하나”를 외치면 맨 먼저 줄을 섰습니다. ‘난 아닐꺼야’ 하는 마음으로 서 있는데, 내 앞으로 본부중대 소대장(그날 일직사령)이 제 앞에 섰습니다. “임마, 너 말이야.. 너 잠깐 남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죽었구나.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하며 오열에서 벗어나서 본부중대 소대장(중위)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등병인 나만 뒤로 한채 3중대는 식당으로 걸음을 맞춰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선임사병(일병)이 고개를 돌아보며 싸늘한 눈빛을 보냈습니다. “도대체, 넌 무슨 사고를 친거야? 오늘 밤에 넌 오늘 죽었어.”란 텔레파시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텔레파시가 실제로 있고, 그 내용을 내가 분명히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떨구었지만 무슨 잘못을 한지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정윤식 이병, 넌 상관을 보고도 왜 인사를 안하는거야? 아무리 바삐 뛰어가도 상관한테 인사를 해야할 거 아냐? 저녁먹고 니가 뭘 잘못했는지 시말서 써와.. 알겠지?” 하며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해버리고 쌩하니 갔습니다. 어서 내 머리 속의 영상을 복기를 해봅니다. 저녁식사 신호가 떨어지자, 난 복도와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중에 오른쪽 편에서 본부중대 소대장이 얼핏 보입니다. 저보다 늦게 내려온 선임들은 내려오는 와중에 “철풍(5기갑여단 경례이름)”이라고 입에 올립니다. ‘아차... 뛰어 내려오다가 상관을 보고도 인사를 못한 잘못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등병은 2보 이상은 뛰어다녀야 하고, 오와 열을 맞출 때 가장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해서 2번째 열에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갈굼이 시작됩니다.


저는 어서 식당을 뛰어 들어갔습니다. 모든 중대원들이 ‘저 놈, 또 무슨 사고를 친거야?’라는 표정입니다. 저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났지만, 눈물을 보였다가는 설상가상으로 더 갈굼 당합니다. 제일 늦게 도착했지만, 가장 빨리 밥을 먹어야 합니다. 먹는 둥 마는 둥 밥을 먹고, 식판을 씻고 식판 검사를 한 다음에 눈썹이 다시 휘날리도록 내무반으로 갑니다. 저녁 먹고 오면, 내무반 청소는 일병 이하의 몫입니다. 상병, 병장님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취침을 할 수 있도록 아랫 것들이 청소를 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물청소까지 합니다. 최대한 빨리 청소를 마치고, 중대 사무실에 갑니다. 일직사관(분대장, 통상 병장)과 일직사령(소대장)에게 방금 있었던 해프닝을 보고합니다. 3중대 일직사령이 본부중대 일직사령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러더니, 저보고 중대에 있는 학습공간(이라 쓰고, 시말서 쓰는 공간)에 가서 “시말서”를 최소 5장 쓰라고 합니다. ‘동해물과 백두산’로 시작하는 애국가를 10번을 써도 A4 용지 5장이 안될텐데, 무슨 용빼는 재주로 5장을 쓴단 말입니까? 지금은 인터넷이라도 있어서 검색이 가능하지만, 97년 군대에서는 제 머리 속에 있는 내용들로 채워야 했습니다.

이등병이 혼자 학습실에 앉아서 어떤 이야기로 A4 5장을 채울까 고심하였습니다. 군대 오기 전에 읽은 사기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절영지연”이란 고사를 생각했는지 미스테리 합니다. 절영지연은 “끊을 절, 갓끈 영, ~의 지, 모일 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갓끈을 끊은 연회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충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의 장왕이 신하들과 어떤 계기로 연회를 베풉니다. 신나게 술마시고 놀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촛불이 모두 꺼져버립니다. 그런데 왕의 애첩이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몸(입술, 가슴이라는 얘기가 있다.)을 만졌는데, 자기가 그 사람의 갓끈을 잡아서 끊었으니, 다시 촛불을 키면 범인을 반드시 잡을 수 있을꺼라고 장왕에게 얘기를 합니다.


장왕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Nom이 버르장머리 없이 자신의 애첩을 건드리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장왕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모두의 갓끈을 끊읍시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갓끈을 끊어버리지는 않는 사람은 이 잔치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 잔치를 “절영지연, 즉 갓끈을 끊은 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에 초나라가 진나라와 전쟁을 하는데, 어떤 장수가 자기 목숨을 걸고 미친 듯이 싸웁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특별히 잘해준 적도 없는데, 저 친구가 왜 이렇게 열심히 싸웠나 궁금해서 장왕이 물어봅니다. “얌마, 넌 왜 그렇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웠어?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거임?”라고 물어봅니다.


그 때 그 장수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전하, 제가 몇년 전 잔치에서 술에 취해서 죽을 죄(애첩을 만진)를 지은 놈입니다. 그 때 임금님이 관대하게 저를 용서해주셔서 제가 그 은혜를 갚을려고 이렇게 죽도록 싸웠습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역사 속에서 나오는 멋진 이야기 입니다. 저는 고작 본부중대 일직사령에게 경례를 안한 불충을 용서해달라는 의미에서 “절영지연”의 고사를 인용했습니다. 물론 역사 속 이야기처럼 제가 그 본부중대 소대장에게 목숨바쳐서 전사하거나 지뢰를 대신 밟아 주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해프닝에 불가한 일입니다. 22살 어린 놈의 이등병이 시말서를 써라고 했는데, 자기도 처음 들어보는 “절영지연”이라는 고사를 썼으니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최근에 회사에서 불어오는 노사이슈를 보면서 20년 전에 그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관리되지 않습니다. 이 편에 들라, 저 편에 들라고 가입을 유도하고, 어떤 방안이 회사를 위한 방안인지 논리적, 감정적 토론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정중동의 혼란 속에서 옛날 이야기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제 갓끈도 한번 끊어보기로 합니다. 절연지연, 우리 모두의 갓끈을 끊읍시다.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고, 진심이 전해진다면 어떤 편에 서든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을꺼란 믿음을 한번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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