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정약전의 삶을 기리며,
2016년 1월에 멘토와 멘티로 인연을 맺었던 K씨가 신입사원 교육을 거쳐서 전라남도 광양으로 부서 배치를 받게 되어서, 부서 배치를 축하하며 쓴 글이 있어서 브런치에 남깁니다. 되도록 메일 전문을 가감없이 쓰도록 하겠습니다.
제목 : K씨의 부서배치를 축하하며, (자산 정약전의 삶을 기리며)
안녕하세요. 정윤식입니다.
이제 드디어 P사 입사 - 신입사원 교육 - 부서배치까지 하게 되었네요.
저도 15년차 직장으로서 또한 짧지만 몇 주 동안 K씨의 멘토로서 간단하게 당부 아닌 조언을 해야겠습니다.
이번 조언은 지금 당장 신입사원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며,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필요한 맥심(Maxim : 격언)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3~4년 정도는 신입사원으로 살아가게 될 터인데, 그 시절동안 버티고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 또는 쥐푸라기 같은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 역시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만큼 대단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제가 느끼고, 실수한 내용을 복기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제 인생의 반 페이지라도 떼어줘서 그대 인생에 3M 포스트잇처럼 붙어 있길 바랍니다. 20대 중후반 K씨 인생의 페이지에 책갈피처럼 붙어 있는 제 글이 읽어지고, 발견되어 재해석되어지길 기원해봅니다.
이 글은 다산 정약용의 친형이자 흑산도에서 유배생활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생물학 저서인 자산어보의 저자인 시대의 천재 정약전의 삶을 거울 삶겠습니다. 그는 정조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1801년 신유박해에 연관되어 흑산도에 15년 넘게 유배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배경삼아 읽어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1. 지적 호기심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약전은 전통 성리학을 공부하였으며, 문과에도 급제하여 병조좌랑(정육품, 지금치면 4~5급 실무급 국방부 공직)에 까지 오른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천주교를 믿는 이유로 흑산도에 유배를 갑니다. 유배지에도 등급이 있는데, 남해/포항 장기/거제/강화도/강진 정도는 그나마 낫습니다. 흑산도는 육지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고, 뱃길도 여의치 않은 유배지 중에 유배지였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나폴레옹이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당한 정도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정약전은 유배시절에도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인생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서해안의 이름없는 물고기의 생태계를 연구하고, 효능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 힘든 유배생활에도 결코 지적 호기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의 산물인 “자산어보”를 쓰게 이르렀습니다. 신입사원 시절에도 설비와 프로세스를 공부하며 그저 남들이 가르쳐주는 지식에만 만족하지 말고, 지적 호기심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자산어보”를 써서 남들에게도 보여줄 만큼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글을 써서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의 경지에 이르시길 바랍니다.
2. 유배지인 “흑산도”를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정약전은 흑산도 구석구석을 다녔습니다. 이름 없는 어부, 여느 아낙네를 만났고, 물고기도 관찰하고 농사 짓는 법도 연구하였습니다. 광양을 비롯한 그 일대는 남해안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양, 남해, 하동, 여수, 순천, 고흥, 지리산 일대를 두루두루 다니며 자연이 준 위대한 선물을 만끽하길 바랍니다. 그저 맛집이나 다니고, 유명한 관광지에만 다니지 마시고 인생을 살펴보고 혼자 또는 둘이서 주말마다 때론 걸으며 때론 자전거도 타고 다니시길 바랍니다. 비록 광양이 유배지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나만의 “흑산도”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지방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권해드립니다.
3. 성리학을 하면서도 “서학”에 뜻을 두기 바랍니다.
정약전은 본인 스스로 성리학자이면서 서학인 “천주교”를 공부했습니다. K씨도 공학도이자만, 서학인 “인문학”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역사, 소설, 경제, 음악, 미술, 심리 등 인문학의 세계는 끝이 없습니다. 지적 호기심의 영역을 본인의 전공에만 두지 마시고 “서학”인 인문학 공부에도 뜻을 두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시간이 흘러, 편협한 생각에 헤매지 않고 성리학과 서학을 결합하여 그의 동생 정약용이 “실학”으로 완성하듯이 자신만의 “실학”을 만들고 부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4. 흑산도에 유배되었을 때도 지역주민에게 천주교를 전파했습니다.
정약전의 동생인 다산 정약용은 차후에 천주교를 배교한 역사적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하지만 정약전은 끝까지 자신의 뜻을 꺾지 아니하였기에 죽을 때까지 유배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끝까지 천주교를 믿으며 지역주민에게 천주교를 전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인의 뜻을 꺾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고귀한 삶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스스로 실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예전에도 말한 바 있는데 함신익이라는 지휘자가 “Pass it on”이란 말을 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는 삶을 살아라는 메세지입니다. (검색엔진에 “함신익 Pass it on”이라고 검색하면 무슨 말인지 나옵니다.) K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수많은 사람에게 그 은혜를 갚는 길은 본인도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758~1816년에 조선 말기에 살았던 정약전의 삶을 통해서 저 또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부서배치를 축하드리며, 그 분이 살았던 치열하지만 가슴 뜨거운 인생살이의 깊이를 앞으로 3~4년정도 체험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 삶의 반 페이지가 K씨의 20대 책속에 작은 포스트잇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2018.5.12일 오후 3시 경
정윤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