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 : 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시골 쥐인 제가 서울로 올라가서 4년 반 정도 살았습니다. 첫 서울살이에 흥분되기도 하고, 신림역에서 선릉역 2호선 사이를 출퇴근하면서 지옥철의 맛도 보았습니다. 김건모의 “서울의 달”을 듣고 슬픔에 빠져보기도 하고, 이한철의 “슈퍼스타”를 들으며 힘을 내어보기도 했습니다. 2014년 10월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올림픽 공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주말이면 서울에는 한강변으로 늘어져 있는 공원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긴 줄을 기다리며, 올림픽 공원 명물 중 하나인 호돌이 기차도 탔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올림픽 공원을 산책을 하다가, 에피톤 프로젝트 “각자의 밤” 콘서트 광고판을 보았습니다. 음악을 즐겨 듣고, 음악에 담겨진 의미를 풀어내길 좋아하는 저로서는 좋은 기회였지만 다음 번으로 미루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번은 직접 “콘서트 장”으로 향하는 시간이 아니라, 계속 반복으로 이어폰으로 에피톤 프로젝트 음악을 들으며 “숨은 의미”를 찾는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4년 반동안의 서울 생활은 제게 “각자의 밤에서 나의 밤까지” 이어온 시간들이었으며, 제게는 “에피톤 프로젝트”였습니다.
제목 : 각자의 밤에서 나의 밤까지 (에피톤 프로젝트 : 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1. 각자의 밤
각자의 밤 앨범을 살펴보면, 이탈리아 지중해 북부에 있는 친퀘테레(Cinque Terre)를 형상화하였다. 오른 편 그림 쪽에는 남자가 서 있고, 보름달이 떠있다. 왼쪽 편 그림 쪽에는 여자가 거꾸로 서 있고, 초승달이 떠 있다. 영화 시월애(2000년)에서 이정재와 전지현이 우편함을 매개로 시간을 넘어 대화를 하듯이, 이 앨범은 빨간 등대를 통해서 각자의 두 사람이 서로 얘기하는 듯하다.
이 세상에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이 늘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각자의 밤” 하늘 아래서 산다. 함께의 밤을 보내더라도, 자세히 들어다보면 “각자의 밤”이다. 신림동 골목길에서 시끄러운 취객들의 고함소리에 한 밤중에 눈을 뜨기도 하고, 한 밤 중에 무작정 울기만 하던 2살 된 아들을 달래기 위해서 애기 띠를 메고 2시간 이상 거실을 돌기도 했던 그 밤들도.. 각자의 밤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밤은 나 홀로 맞이해야 하는 “혼자의 밤”이 아니라, 각자가 보름달 아래, 초승달 아래에서 빨간 등대를 사이에 두고 대화할 수 있는 밤이기도 하다.
신림동 골목길 어느 식당에서 세상살이에 지친 취객도 “각자의 밤”이 있고, 한 밤중에 무작정 울기만 한 2살 아들도 “각자의 밤”이 있었다. 각자의 밤이 이어지고, 연결되는 시공간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각자에서 함께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2. 나의 밤
에피톤 프로젝트 “각자의 앨범”의 첫 곡은 각자의 밤이며, 마지막 곡은 나의 밤이다. 각자의 밤은 연주곡인 반면, 나의 밤은 노래가사가 있는 곡이다. 각자의 밤을 보내는 남자가 “나의 밤”에 대해서 노래한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밤의 부분집합 중에 하나가 “나의 밤”인 셈이고, 다른 나머지 여집합이 “너의 밤”이 된다. 이 노래를 정말 100번을 넘게 들었다.
“널 그리워 하다 많은 생각에 잠 못 드는 이 밤. 참 오래 걸렸지 너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
“널 그리워 하다 많은 생각에 잠 못 드는 이 밤. 참 쉬운 게 없지 너의 흔적을 덜어내는 일”
“오 내겐 그댄 어떤 의미인지 힘들어 했거나, 무거웠던 짐은 아냐”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두고 본 사람인데, 한참을 걸려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군대에 있을 때, 1시간 30분동안 보초를 서는 동안 보고 싶은 엄마를 생각했다. 20년 넘게 본 엄마의 모습인데, 어찌나 그 모습이 떠올리기 힘든지.. 너무나도 눈물나던 기억이 났다.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는 건 어렵고, 보고 싶은 사람의 흔적은 덜어내는 것 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4.16일의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또 어떠할까? 나의 밤에는 “널 그리워 하다 많은 생각에 잠 못 드는 이 밤”이 되어버렸다.
3. 에피톤 프로젝트 : 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의 밤은 “너의 모습”을 떠올리는 시간이며, “너의 흔적”을 덜어내는 시간이었다. “너”를 생각하다가 그 다음을 보자.
“오 내게 그댄 어떤 의미인지 힘들어 했거나, 무거웠던 짐은 아냐”
“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마음 아프거나, 슬픈 사람 아니었길”
결국은 내가 “너”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너를 힘들어 했거나 무거웠던 짐은 아니었는지..다시 묻고 있다. 너를 그리워하던 밤이었지만 내가 그리도 찾던 일은 “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은 비록 헤어져 있지만, 내가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슬프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바란다. 나의 밤은 “너”를 생각하는 밤이었다가 다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묻게 되는 시간인 것이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차세정이 일본의 뮤지션 마에다 가즈히코의 곡 “Epitone”을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차세정에게 에피톤은 “너”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곡이기도 하다. 늘상 인간은 나 외에 “너”를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성찰하곤 한다. 수많은 “너”들이 인식하는 총합이 진짜 “나”가 되기도 한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너를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너를 통해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에피톤 프로젝트인 셈이다.
인생은 결국 “각자의 밤”에서 “나의 밤”으로 이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사람이었는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진 않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기 위해서 나는 불행하게 살아가진 않는지? 다시금 자문해본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각자도생의 인생 길에은 다시금 나에게 물어본다. “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한 나만의 에피톤 프로젝트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건지? 오늘 밤은 “많은 생각에 잠 못 드는 이 밤”이 될 것 같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밤에서 나의 밤으로 향하는 출발점에 서있다.
P.S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물음 앞에 나는 우두커니 서서 답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