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창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7월 4일, 필리스펍에서
아주 오래만에 글을 남깁니다. 최근에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글을 더이상 쓰기 힘들었습니다. 써야할 얘기는 아주 많은데,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에 저 스스로 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글을 쓰기 힘들다는 일종의 단기적 절필선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오후에, 그러니깐 7월 4일 오후 3시 42분에 아시는 분께 저녁 벙개를 콜했는데, 마음 맞는 네 사람이서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끄트머리에 있는 필리스펍(Philly’s Pub)에서 가벼운 식사 겸 궁시렁 궁시렁 얘기 봇다리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덜컥 어제의 일을 반드시 글로서 남기겠다고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아주 아주 의미있는 시간에, 아주 아주 의미가 빛나는 술집에서 나눴던 얘기를 여기에 남깁니다.
제목 : 7월 4일, 필리스펍에서
7월 4일은 영어로 Fourth of July 라고 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명작이자 톰 크루즈가 주연한 ‘7월 4일’이라는 영화도 있다.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우리나라로 얘기하자면 광복절인 셈이다. 미국 사람은 굳이 Independance Day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Fourth of July”라고 얘기한다. 우리가 광복절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815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의 최대 명절은 크게 ‘7월 4일 독립기념일’과 ‘추수감사절’이 있는데, 어제가 바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미쿡사람에게는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1776년 7월 4일이 그들 정신을 근간을 이루는 위대한 날이다.
필리스펍은 영어로 Philly’s Pub이라고 쓴다. Philly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필라델피아의 애칭이기도 하다. 뉴욕의 애칭이 Big Apple이고 LA의 애칭이 라라랜드 이듯이, 필라델피아의 애칭이 Philly인 셈이다. 필라델피아식 버거가 유명한 데, 통상적으로 Philly’s Burger라고 얘기하고 그냥 필리버거라고도 한다. 필라델피아에 가면 꼭 필리버거를 드시길 추천한다. 예전에 버거킹에서도 ‘필리치즈와퍼’를 한정판으로 판 적이 있다. 우리나라식으로 보면 소고기를 패티형식이 아닌 양념한 불고기형태로 빵(번) 사이에 끼워넣는 형태의 햄버거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 왜.. 7월 4일과 필리스펍이 연관이 있을까? 1776년 7월 4일(정확히는 7월 8일에 독립선언문을 선포했다고 한다.)에 필라델피아에서 13개 영국의 식민지 대표들이 서명한 그 유명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다. 1773년 12월 16일 밤, 보스톤에서 영국본국으로부터 차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서 차상자(Tea Box)를 바닷가에 던져버린 보스톤 차사건 (Boston Tea Party)이 있었고, 본국 영국으로부터 대표없는 과세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채 미국인 가슴에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 미 동부에 퍼져있던 13개 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그곳이 바로 필라델피아, 다시 말하면 Philly 였다.
어제도 7월 4일에, 4명의 30~40대 중년아저씨들이 필리스펍에서 술을 마셨다. ‘영국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맘으로 ‘자신이 회사라고 굳게 믿는 영국사람’을 궁시렁 궁시렁거리면 얘기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장면이 있다. Pub은 사실 상 영국식 술집을 얘기한다. Pub은 Public House인데, 중간에 테이블이 여러 개 있고, 생맥주(꼭 영국 에일 맥주가 있어야 한다. 주로 IPA인 경우가 많다.)를 따라주는 Bar가 있어야 한다. 주문은 손님이 바텐더에게 가서 생맥주를 시키고 돈도 거기서 바로 계산하는 타입이다. 영국이나 미국에 가면 꼭 Pub에 들려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그런데 웃기지 않는가? 미국사람들이 영국본국 사람들을 씹어대며, 영국의 불합리한 착취를 욕한 곳이 영국식 Pub인 셈이다. 우리로 치면 독립운동가들이 명동에서 일본식 이자카야에서 일본 사람들 씹어대고, 일본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식민지 정책을 욕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1776년 7월 어느 저녁에도 중년의 남자 4명이 필리스펍에서 영국사람에 대해 궁시렁 궁시렁 했을지도 모른다.
2018년 7월 4일, 필리스펍에서 30~40대 중년아저씨들이 저녁벙개로 모였다. 세상살이 얘기, 어릴 적 얘기, 이제 곧 떠나게될 가족여행 얘기, 중고등학교 때 얘기로 술잔을 기울었다. 때로는 추억팔이를 했고, 때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자신의 못남을 탓하기도 하고, 내 사람들을 지키지 못하는 무력함에 몸서리 치기도 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7월 4일에도 위대한 독립투쟁한 미국사람에게도 궁시렁 거림이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2018년 7월 4일, 포항 영일대 끄트머리 필리스펍에서 4명의 중년아재들이 ‘독립선언’을 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를 얶매이는 회사, 가족, 조직, 사회가 요구하는 끝없는 조건과 요청으로부터의 한 개인의 ‘독립선언’을 했다고 믿고 싶다.
그 위대한 독립선언도, 어느 선술집에서 4~5명의 사람들의 궁시렁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역사를 만드는 건 작은 시작이다. 2018년 7월 4일, 필리스펍에서 우리는 낭만을 얘기하고, 추억을 얘기했고, 마지막으로 독립을 얘기했다. 그 날 밤, 창 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 날은 우산을 쓰지 않은채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의 이야기를 여기에 남겨본다. 7월 4일, 필리스펍에서.. 우리는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