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제목 : 두 번의 7월 13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가족여행을 드디어 떠나는 날이다. 작년 8월에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촌누나 내외가 포항으로 놀러와서 함께 지냈는데, 누나가 캐나다에 한 번 놀러오라는 농담 반 진단 반 얘기에 비행기표를 덜컥 예약해버렸다. 나를 제외한 3명의 가족은 10월에 예약을 했고, 나는 포항 지진이 난 11월 15일 이후에 바로 다음 날 11월 16일에 예약했다. 포항 지진은 혹시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만약 죽음의 끝자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치 있는 행동은 가족들과 함께 보는 데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예약한 탓에 에어캐나다 4명 항공편을 400만원 정도 주고 샀으니, 헐값에 거져 샀다고 볼 수 있다. 무려 8개월을 기다리고서야 7월 13일 금요일 드디어 캐나다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아침 8시 40분에 차를 타고 포항역에 가족들을 내려주고, 난 다시 집으로 차를 주차하고 택시를 타고 포항역에 도착했다. 2시간이 조금 더 걸려서 광명역에 도착했다. KTX안에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과 비행기 타기 전에 가장 기분이 좋다고 하던데, 표정에서 행복한 기분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우리 또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테다. 광명역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수속을 할려고 하니, 외항사는 수속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짐을 리무진에 싣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에어캐나다 항공 티케팅을 위해서 수속 카운터로 이동을 했다. 수속 카운터 앞에는 단30~40명의 단체 학생들이 수속을 위해서 긴 줄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인 키오스크를 이용해서 수속을 진행했는데, 가족들 여권을 스캔할려고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공항 안내방송에서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서 지금 즉시 에어캐나다 수속 카운터로 오라고 했다. 어리둥절하게 아내는 카운터에 갔고, 여권이 도용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하더니, 여러 번 시스템 검색을 했다. 그러더니, 내가 아내 여권을 스캔을 할 때 여러 번 시도했던 것이 시스템적으로 여권 도용으로 판정되었다는 다행스러운 얘기를 들러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리 가족들 탑승 수속을 진행해주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평소 칠칠지 못한 나의 행동으로 인해 이렇게 긴 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신기해했고, 나는 무슨 마법을 부린 사람처럼 일사천리로 탑승수속을 진행했다. 중고등학생들이 밴쿠버에 어학연수를 많이 간다고들 하는데, 다들 목에 이름표를 두른 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을 보니,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엽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실수로 페니실린을 발견한 어느 과학자처럼 오늘 나의 실수가 대단한 행운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출발부터 좋은 징조였다.
드디어 보잉 787 드림라이너가 이륙하기 시작했고, 가족들과의 장장 10일 동안의 캐나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10시간을 꼼짝도 못한 채로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초3, 초1 아이들은 잘 참아주었고, 마침내 9시간 정도 날아가자 밴쿠버 섬으로 보이는 캐나다 땅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말 광활한 땅이었다. 도대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나라의 인구가 고작 35백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큰 땅에서 살아가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7월 13일 오후 4시 쯤에 인천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10시간 정도 비행하여 7월 13일 9시 쯤에 밴쿠버에 도착을 했다. 한국과 시차가 -16시간 차이이니, 10시간을 날아아도 아직 7월 13일인 셈이었다. 7월 13일을 두 번 살아야 했다.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은 동일하나, 인간이 지구의 자전의 영향으로 그어놓은 시간변경선 상에서 나는 두 번의 7월 13일을 살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도 어쩌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그동안 회사 일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많은 시간들을 보상하기 위해서 캐나다 여행을 계획했다. 두 번의 7월 13일을 맞이했던 것처럼 내가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을 다시 거슬러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난생처럼 우리 가족 4명은 10일 동안 24시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수 많은 아빠들이 가족들과 온종일 10일 정도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 때로는 시간, 때로는 금전, 때로는 자녀학업의 이유로 가족들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캐나다 록키여행을 꿈꾸기도 했지만, 더욱더 나를 들뜨게 만든 건 가족들과의 온전한 시간나눔이었다. 그렇게 나는 10시간을 날아, 16시간의 시차를 거슬러 7월 13일을 두 번 살았다. 내 생에 가장 긴 7월 13일을 보내고 있다. 또한 내 생에 가장 긴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삶을 거슬러, 일상을 거슬러, 나는 민물장어처럼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제 캐나다 록키 여행을 시작하자.. 근데.. 렌트카를 빌리러 가야 하는데, 출국장을 빠져나와서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향했다.. 시간을 거슬러 왔는데, 정신은 바짝 차리자.
P.S 캐나다 록키 여행기는 시간이 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사진은 못 올리고, 텍스트만 올리는 걸 양해해주시고 저보다 훨씬 멋지게 찍은 블로그 사진으로 대신해주시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