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빙하(Columbia Glacier)에 오르다.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둔 컬럼비아 빙하 설상차 체험이 8:30분 부터 시작이라서,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일어나 텐트를 정리를 했다. 자동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7시 반쯤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도착하니, 엄청나게 큰 주차장 안에 드문드문 차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내 차 바로 옆에는 아주 오래된 폭스바겐 캠핑차(최소 20년은 되어 보였다.)가 주차를 했는데, 네덜란드에서 온 차(차량번호에 NL이라고 쓰여있다.)였다. 캐나다 록키를 여행하다보니, 캐나다 온타리오, 퀘벡, 마니토바에서 온 차량들이 주로 보였고, 미국에서는 워싱턴 주(DC가 아님), 오레곤 주, 캘리포니아 주, 유타 주 등지에서 온 차량이 많았다. 주로 북미에서 멀게는 5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장거리 여행으로 오는 듯 하다.
그런데, 도대체 네덜란드에서 대서양을 건너서 온 두 명의 젊은 커플은 내 상상의 범주를 뛰어 넘었다. 대충 계산해보면, 아마도 네덜란드에서 가까운 벨기에 안트워프 항구에서 차를 배로 싣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서양을 건너서 온다고 하니, 미국 동부에 있는 항구에서 도착했을 꺼고, 미국 동부부터 캐나다 서부에 있는 록키까지 왔으니, 차량으로 이동을 해도 대략 7~8천킬로는 걸렸을 것 같다. 진짜 스케일이 다른 친구들이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해봐야 겠다는 기약없는 다짐만을 하고 대충 짐을 정리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신이 났다. 말로만 듣던 빙하 위를 걷고, 바퀴가 엄청나게 큰 설상차를 탄다고 하니 아들녀석은 흥분상태였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를 타기 위해서 대기장소로 이동했다. 캐나다는 워낙 땅이 넓어서 도시 주변만 벗어나도 통신 서비스가 제한된다. 쉽게 얘기하면, 도시를 벗어나면 휴대폰이 먹통이 된다. 그래서 이곳과 같은 오지에는 항상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땅이 크니 별의 별이 다 있다. 인포센테에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로 컬럼비아 빙하에 대해서 약간의 공부를 한 이후에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8시 반인데도, 벌써부터 단체관광객이 즐비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은 중국 관광객이었고, 한국 사람은 우리처럼 가족여행으로 온 사람이 몇 명 보였고, 일본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왠지 일본 사람이 지나간 여행지를 한국사람이 이어받고, 중국 사람이 다시 바톤을 이어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반버스를 타고 설상차를 타기 위한 중간지점으로 이동을 했다. 정말 내 키보다 훨씬 큰 바퀴(2.5미터 이상)를 가진 벤츠에서 만든 설상차였다. 역시, 벤츠도 스케일이 달랐다. 설상차는 사람들을 태우고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차량이 오를 수 있는 최대 경사도라고 한다. 롤러코스터가 가파른 비탈을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고도계를 봤더니, 2,000m가 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밖에 없었다. 일반인이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신성한 곳에 무단으로 침입한 기분이 살짝 들긴 했지만, 이런 체험은 두 번 다시 하기 힘들었다. 초딩들이 또 장난을 치고 있다. 초1 둘째 딸은 벌써부터 빙하물을 입에 떠서 먹고 있다. 나도 혼자 슬며서 차가운 빙하물을 떠서 입에 적셨다. 생각만큼 그렇게 청량하진 않았고, 특별한 맛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은 빙하 위에서 나 잡아봐라 하면서 장난친다. 어찌도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놀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설상차는 다시 출발을 알린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 경치를 눈 속에 담아봤다. 빙하가 자꾸 녹는다고 한다. 문명의 발전이 이 빙하를 녹게 만든 건 아닌지 반성을 해본다. 이 빙하를 녹이는 건 어쩌면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발전한 선진국이 이제 발전할려고 하는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환경”이라는 허들은 아닌지도 생각해본다. 자기네들은 잘 살아놓고, 이제 우리도 잘 살아보겠다고 하니, 이산화탄소가 어떻고, 기후변화가 어떻고 하는 말을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하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상념을 깨운다.
컬럼비아 빙하는 녹아서 태평양, 오대호를 거쳐 대서양, 북극해로 흘러간다고 한다. 3개 대양으로 흘러가는 유일한 빙하라고 한다. 티비에서만 봤던 빙하를 보니, 색다르기도 하고 그렇게 특별한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뭐던지 체험해보기 전에는 대단해보여도, 막상 해보고 나면 별거 아닌게 많다. 인간이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빙하는 처음이었다. 빙하를 밟아보는 것도, 걸어보는 것도.. 그래도 고기를 먹어본 사람은 고기를 먹어봤다고 얘기할 수 있는 않은가? 어서와, 빙하는 처음이지?
거대한 바퀴를 가진 문명의 이기인 설상차를 타고 컬럼비아 빙하에 오르니, 내 상념들이 녹아서 태평양, 대서양, 북극해로 흘러 간다. 생각의 수원은 하나지만, 상념은 흘러 흘러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햇빛이 너무 강력하다. 이제 컬럼비아 대빙하여!! 안녕... 언제 다시 만나 볼 수 있겠지? 아마도 태평양 어디에서 너는 물이 되어서 내가 살고 있는 포항 땅 동해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P.S 이제 여행의 중간입니다. 어서 여행기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