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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an 25. 2016

철 이야기 #3. Slab는 준비다.

청춘아, 더디 간다 조급치 마라.

철 이야기는 1,2편까지 써놓고, 3편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시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찾았습니다. 그간 미뤄 왔던 많은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3편을 바로 올립니다. 


3편. Slab는 준비다. (부제 : 청춘아, 더디 간다 조급치 마라)


철은 철광석이나 고철을 원료로 만들 수 있다. 철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지 간에 원하는 형태(Shape)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공정이 필요하다. 뜨거운 쇳물을 식혀서 자동차, 배, 건축물, 탱크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고체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소보루, 단팥빵, 크림빵을 만들기 위해 중간재인 반죽이 필요한 이치와 똑같다.


쇳물에서 탄소를 제거하는 과정(탈탄)과 여러 불순물(황, 인, 알루미늄, 실리콘 등)을 거치고 나서는 이를 식혀서 중간재인 슬라브(Slab)로 만들어낸다. 용강(Molten Steel)에 물을 뿌려서 식혀주고, 이를 일정한 형태로 뽑아내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제철공정에서는 중간재인 슬라브(Slab)를 만든다. 요즘에는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쇳물에서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도 개발되었지만, 아직 대중화된 기술은 아니다.


슬라브(Slab)는 철(Steel)의 물질적 특성을 이룩한 다음에, 여러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형태적 특성을 이룩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중간단계이다. 그 과정에서 용강(Molten Steel)에 차가운 물을 뿌려서 뜨거운 액체상태의 철을 차가운 고체상태(20~30톤)의 두꺼운 침대 매트리스 같은 형태인 슬라브로 만든다.


슬라브는 고체(철광석, 고철)에서 액체(쇳물, 용강)로 철의 물질적 특성을 획득하고 액체(용강)에서 고체(제품)로 철의 형태적 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중간단계이다. 철과 인생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 20살 전후의 삶을 청춘이라 말할 수 있다면, 청춘은 Slab다. 10대에는 우리가 어떤 형태의 삶을 살게  될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뜨거운 쇳물처럼 10대는 뜨겁게 타오르고, 온갖 삶의 불순물(부모, 환경, 성적, 친구 등)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에 진학을 하던, 세상 밖으로 나오던 누구나 세상에 나오게 된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청춘은 내가 원하는 삶으로 이행하기 위한 중간단계인 Slab다. Slab는 준비하는 단계이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지는 않는다. 차가운 물을 받아가며 내 몸의 열을 식혀야 하고, 세상이 맞춰준 형태에 따라서 고체 형태로 내 몸을 끼워 맞춰야 할지도 모른다. 청춘이 몸의 열을 식히고, 주어진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세상에 타협하고 맞춰서 살아야 하는 소극적인 기간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청춘은, 더디 간다. 그리고  조급해진다. 내 친구들은 취업해서 자리를 잡아서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혼자 뒤쳐진 것 같다.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열정을 가지라고 말하는 이 세상의 꼰대들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꼰대들이 우리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 꼰대들 중 대다수는 자신의 자녀에게 편안한 길, 준비된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아낌없이 노력한다.


Slab는 아직 어떤 형태로  만들어질지 모르는 미지의 중간단계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기대되기도 하고 마냥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청춘아, 더디 간다 조급치 마라. 그대는 삶의 형태만 주어지지 않았을 뿐, 삶이라는 본질마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대에게 필요한 건 그대를 식혀줄 차가운 물줄기도 아니고, 그대를 옭아매는 세상의 틀도 아니다. 


나를 포함한 청춘을 보냈거나, 청춘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삶의 여정 중에서 묵묵히 시간을 견뎌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삶이 정해지지도 않고, 그저 견디고 있다면 당신은 준비단계(Slab)에 있다고 생각하자. 때때로 뜨거운 열정을 대신해 차가운 이성으로 자신을 식힐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청춘은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청춘을 포함한 우리네 인생은 때때로 견디어 내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철이 Slab란 중간단계를 거쳐 제품(형태)으로  만들어지듯이, 우리네 인생도 청춘이란 중간단계를 견디고 거칠 때 자신의 삶(형태)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청춘이여, 견디어라. 


“지나간 것은 지난 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가사처럼 견디어낸 청춘도 그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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