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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03. 2016

어느 직장인의 세상만사 #1

1편. KPI와 불확정성의 원리 (부제 : 측정하면 왜곡된다.)

작년에 읽었던 책 가운데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책은 "개인주의자 선언”이었다.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문유석 씨가 법조인으로 느꼈던 일상들을 책으로 엮었다. 69년생이니깐 나보다  7살가량 많은 연배이고,  한쪽은 법조인으로 살아가고  한쪽은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삶의 모습은 꽤나 비슷했고 생각하는 바도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 머리 속에 구상으로만 실재했던 생각들을 하나씩 끄집에 내서 새로운 글쓰기를 착수키로 했다. 2015년에 읽은 책이 내게 작은 용기를 준 셈이다.


올해는 회사에서 산학장학생(내년 졸업예정, 물리학과)을 인턴으로 받아서, 4주간 뜻하지 않게 멘토, 멘티의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다. 내게도 20대가 있었고, 내게도 꿈은 있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희미하고 흔들리는 현실도 있었다. 시절은 다르지만 흔들리지만 빛난 청춘을 보며, 내 글쓰기가 촛불처럼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지 바란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문유석 형(선배)이 내게 영감의 촛불을 넘겨준 것처럼 내 글쓰기가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길 꿈꾸어 본다. 그래서 그 촛불들이 모여 들불처럼 일어나 이 세상에 수많은 개인주의자들이 국가, 회사, 조직 등 큰 목표나 대의를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도록 강요받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함께 연대하고 손을 잡고 이 세상에 흔들리지만 작은 촛불 하나가 되길 빌어본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시리즈 제목을 던져서 질러본다. 시리즈 제목 : 어느 직장인의 세상만사


1편. KPI와 불확정성의 원리 (부제 : 측정하면 왜곡된다.)


2004년 1월 5일, 내 생애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2004년은 지금과 같은 취업대란이니, 3포세대니

하는 말들은 시작되지 않았고, 지금처럼 어두운 미래만 보이는 시절도 아니었다. 운이 좋게도 포항에 있는 철강회사에 입사를 했고, 지금도 꿋꿋이 열심히 다니고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들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KPI다. 아마도 수 많은 직장인들이 조직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KPI란 단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KPI는 핵심 성과지표라고

하며, Key Performance Index의 약자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돈"을 많이 버는 일이다. 그 "돈"을 과거, 현재, 미래에도 잘 벌 수 있기 위해서 원료를 사고, 건물, 공장을 짓고, 사람도 뽑고, 물건도 만든다.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인지 다양한 목표가 생기게 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성과지표를 만들게 된다. 핵심성과지표(KPI)를 얼마나 잘 달성하냐에 따라서 회사가 더 "돈"을 잘 벌 수 있게 된다. 20세기 경영학자들은 회사의 경영방식으로 KPI, BSC, MBO와 같은 경영관리적인 기법들을 고안해내고, 수 많은 글로벌 기업에 적용해왔다.


그런데 이론과 실제는 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기업의 핵심성과지표를 정하고 이를 측정하고, 그 성과를 매년 기록 경신을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문화는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가고, 심지어 데이터 왜곡이나 조작도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20세기 초반에 인류 최고의 천재들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세상에  내놓았다. 독일 출신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전자(Electron)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 측정한다는 자체가 피측정자에게 간섭을 일으킨다는 의미이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A라는 사람이 지상 5m 높이에서 자유낙하를 할 때 이를 관찰하는 B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전자 A가 원자핵 주변을 돌 때, 이를 관찰하는 B의 영향을 받게 된다. 위치를 알게 되면 속도를 알 수 없게 되고, 속도를 알게 되면 위치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측정하게 되면 측정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그 결과가 왜곡된다는 뜻이다. 


마치 KPI는 원자핵 주변을 도는 전자와 같다. 경영학자들은 KPI를 정해놓고, 임직원들로 하여금 그 목표를 달성하라고 한다. 하지만 임직원들은 KPI로 정해놓은 목표값을 측정하고, 관리하면 그 목표치를 달성키 위해서 왜곡한다. 의도적인 왜곡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KPI는 왜곡되고 만다. 예를 들어 자동차 영업사원에게 차량 10대를 판매하라는 목표를 준다고 가정하자. 영업사원 홍길동은 매월 1대씩 열심히 자동차를 판매한다. 12월이 되었는데  8대밖에 못 팔았다면, 홍길동은 2대를 자기 이름 앞으로 또는 주변 지인 앞으로 차량을 뽑아놓고, 연간 목표인 10대를 달성한다.


물론 홍길동에게 10대를 판매하라는 목표를 주지 않았다면, 홍길동은 5대 밖에 못 팔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대라는 KPI를 주고 이를 측정하자 홍길동은 부족분 2대를 채우기 위해서 측정값을 왜곡시키고 만다. 만 1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와 같은 경우를 수 없이 보아왔다. 경영 관리기법인 KPI가 조직문화를 왜곡시키고, 이를 관리하는 순간 그 측정치가 왜곡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왜곡되는 것과 그 값을 알 수 없는 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KPI와 불확정성의 원리의 공통점은 측정하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측정대상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용변을 보고 나온 사람들에게 용변 후에 손을 씻었냐고 물어본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용변을 보고 손을 씻게 될 것이다. 평소에 사람들은 용변 후에 손을 안 씻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손 씻었냐고 물어본다면 손을 씻고 나올 것이다. 즉 손을 씻는지 확인하는 “측정”의 행위가 측정 대상인 사람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는 뜻이다.


20세기 초반에 원자의 세계를 들여다본 천재들이 내놓은 해석에 대해서 기존의 많은 과학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 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전 물리학이 설명할 수 있는 거시 세계가 있고, 양자역학이 설명할 수 있는 미시세계가 있다. 20세기를 풍미했던 경영관리 기법들이 통하는 영역이 있고 아예 새로운 경영학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생겨났다. 이 시대가 정말 창조와 창의가 필요하다면, 측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측정하는 행위가 측정대상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창의적인 천재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들을 기존의 경영기법으로 관리해서는 안되다. 그저 그들이 즐겁게 놀며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그만이다. 나도 평범한 1명의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시대에 살아야 한다. 20세기 초 하이젠베르크가 던진 “불확정성의 원리”를 21세기 초반에 곱씹어 생각해보자. 제발 측정하고 관리하려고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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