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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20. 2019

나의 고민 : 이상과 현실

아는 형님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단편

 2019년 1월 2일, 회사에서 새로운 부서로 보직 이동하였다. 익숙한 곳으로부터 4년 정도 근무하다가, 새로운 팀으로 변경되니,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업무들로 내 삶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50일이 지나나고, 익숙했던 일들은 점점 잊히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들도 점점 익숙해져 가고, 새로 산 옷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어울려 가는 스타일로 변한 것 같다.


 거의 몇 개월 만에 이전 부서 직원 1명으로부터 저녁식사를 초대받았다. 예전에는 내가 그 직원의 상사였지만, 지금은 옆 팀에 있는 그저 아는 “팀장”이니 예전보다 훨씬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탓에, 다소 딱딱하고 경직된 회식 분위기로 진행될 것 같아서 거침없이 제안했다. “오늘 회식 컨셉은 아는 형님 어때요? 내가 아는 형님 학교에 입학할 테니깐, 서로 반말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어떨까요?” 그렇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했다.


 포항 효자동에 있는 이름도 멋진 “형제 21번지”에서 형제들 7명이 꼬아리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나를 포함해서는 6명은 예전에 있던 부서 사람이었고, 1명은 타 부서 직원이었다. 다들 나를 바라보는 폼이.. 어째 좀 어색했다. 그래서 내가 선빵을 날렸다. “용승아, 오늘 컨셉이 먼지 알지? 아는 형님? 먼저 내가 내는 문제를 맞춰야해?” 라고 말하자, 용승 후배가 “팀장님, 그럼 시작해볼까요?”


 내가 다시 정정했다. “용승아, 나를 윤식이라고 해야지..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말 편하게 할거 아냐?” 그랬더니, 내 옆에 있던 아직 인턴사원(20대 초중반)이 용승 후배(30대 후반)에게 말을 건다. “맞아!, 용승아, 시작해보자!!” 그렇게 갑분싸 분위기가 갑분따로 변했다. 역시, 이런 소통은 “나”를 버릴 때 시작되나 보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자신의 문제를 내고, 문제를 틀린 사람은 뿅 망치 대신에 소주 한잔씩 먹는 벌칙을 정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최근 몇 년간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일까? 또 다른 사람은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등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내고, 서로 맞추고 웃고, 반말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이어갔다. 그와 동시에 오답이 쌓일수록 소주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점점 많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각자의 고민을 맞춰보는 문제가 등장했다. 나도 내 고민을 이야기하고, 30대 후반 아저씨로부터 20대 중반 총각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도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30대 후반 직원 한 명은 본인의 고민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아주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도그마를 던졌고, 급기하 다른 사람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고민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그런 게 어딛냐고, 너무 문제가 어렵다면서 그 문제를 맞히기 위해서 소주 2병을 비우고 만 다른 “아는 형님” 멤버들이 흥분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문현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범주에서는 모두 “이상과 현실”에서 고민하다. 언제나 우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을 겪고, 고민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론 현실과 타협하기도 하고, 현실을 이기기 위해서 무리수를 던지기도 한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그 두 사이에서 투쟁을 하고 만다. 팀장으로 살아가는 나도, 회사에서 막내로 살아가는 너도, 회사에서 중간 위치에서 고민하는 그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난 “아는 형님” 컨셉으로 시작한 전무후무한 회식자리에서 삶을 배운다.


 우선 나, 너, 우리, 너희, 그들 사이에서는 각자 한 사람의 인격체로 서로에게 반말로 격 없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적어도 회식 시간만큼은 팀장이 아니고, 팀원이 아니고, 선배가 아니고, 후배가 아니라 “나”로서 “너”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우리는 내 삶에 거추장스럽게 덧씌어놓은 사회적 위치와 형식을 벗어나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또한 벌칙으로 소주 한잔을 나누며, 아주 원시적으로 농을 던지며 각자가 가진 인간관계에 대한 관념을 무장해제시켰다.


 또한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 소주 2병을 비우고서야 얻어낸 나의 고민이 바로 “이상과 현실”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각자가 느끼는 이상의 크기와 각자가 살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다 다르기에 내 고민이 너 고민보다 깊을 수 없고, 너 고민이 내 고민보다 쉬이 가벼울 수 없음을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난 어제 “아는 형님” 입학신청서를 내고, 다행스럽게 “아는 형님” 학교에 전학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나의 고민 중 하나가 “요즘 글을 쓸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소회를 오늘 다시 글을 쓰게 됨으로써 나의 고민인 “이상과 현실”은 오늘만큼은 해결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어떤 이상이던, 그 어떤 현실이던, 좌절하지 말고 함께 나누고 이해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P.S 이 글을 어제 함께한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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