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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21. 2019

나의 선택 : 짜장과 짬뽕

나의 합리적 선택을 강요하지 말자

 어제 인생의 대부분의 고민은 “이상과 현실”사이 어디쯤에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의 위치가 이상에 가깝다면, 원대한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이고, 나의 위치가 현실에 가깝다면, 냉철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난 냉철하진 않지만, 약간은 냉소적인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아는 형님 멤버로 따지자면 나랑 신체적 대척점에 있는 서장훈 캐릭터에 아주 가깝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인생의 고민은 “이상과 현실”에 있지만, 이는 내 삶의 큰 궤적을 그리는 지도에 가깝다. 실제적으로 내가 사사로이 고민하고 선택하는 문제는 “이상과 현실”이 아니라 “짜장과 짬뽕”에 문제이다. 양념 이냐 후라이드 이냐.. 이런 선택에서 고민하게 된다. 자! 상상을 해보자. 직장동료와 중국집에 왔다가 가정해보자. 탕수육, 고추잡채, 깐풍새우 정도 요리가 나오고, 드디어 식사를 준비할 타이밍이다. “짜장면 드실 분, 손 드세요” 서너 명이 손을 든다. “짬뽕 드실 분, 손 드세요” 그리고 또 손을 든다. 그리고 나머지는 알아서 각자 주문한다. 볶음밥, 잡채밥, 기스면 기타 등등..


 사실 대부분의 선택은 합리성과 기호성에 기반을 둔다. 중국집에 가서 식사를 시키면 대략 5천 원~1만 원 사이에 있는 밥을 시킨다. 아주 용감한 사람은 삼선볶음밥, 게살볶음밥 같은 1만 원에 육박하는 식사를 주문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5천 원 짜장, 5천 원 짬뽕을 주문한다. 그게 나의 기호에 맞는 아주 합리적인 가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이 대충 위 지점에 있다고 보면 된다. 고3이 자신의 수능점수와 내신을 보고, 가고 싶은 대학은 서울대이지만, 현실이 인 서울이 아니라면 “이상과 현실”의 문제이지만, 자신의 점수로 OO 대학 경영학과를 가느냐, OO 대학 법학과를 가느냐는 “짜장과 짬뽕”의 문제이다. 즉 “짜장과 짬뽕”의 문제는 자신의 현실(재정적, 시간적, 물리적 한계)을 합리적, 기호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인 셈이다.


 아이가 커서 준중형 승용차에서 SUV로 바꿔야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이 3천만 원이라면, 이상은 포르셰 카이엔을 사고 싶지만, 현실은 국산차에서 투싼, 스포티지, 코란도, 렉스턴, 트랙스, QM6 정도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거기엔 자신의 합리적 계산(안전장치, AS망, 연비 등)과 개인 기호(디자인, 현빠, 안티 현기, 쉐슬람 등)에 맞춰서 최종적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합리적, 기호적 선택에 대해서 만족할 수 도 있고, 실망할 수 도 있다. 그리고 다음 선택에 이전 선택을 반영(피드백)하여 보다 나은 선택의 연속을 이루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고민은 대략 “짜장과 짬뽕”사이에 있다. 오늘 퇴근길에 강변북로가 막히면, 올림픽 대로를 탈 수 도 있다. 오늘 출근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지하철 타고 가는 게 귀찮아, 오래간만에 자가용으로 출근할 수 도 있다. 나의 합리적이고, 기호적인 선택 가운데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제발!!! 나의 합리적 선택을 강요하지 말자. 다시 중국집으로 돌아가 보자. 직장동료들끼리 중국집에 왔다. 이때 부장님이 “이 집은 짜장면이 제일 맛있어. 여기 짬뽕은 내가 몇 번 먹어보니 짜고, 별로야”라고 자신의 합리적 선택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 발언 이후 “짜장면 드실 분, 손 들어주세요”라고 말하면 열에 여덟, 아홉은 손을 든다. 이때 짬뽕을 시키는 용감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젠장!! 난 어제 점심에도 짜장면 먹어서, 오늘은 짬뽕을 먹고 싶은데 말이다. 난 이 집 짬뽕이 짜지만, 해산물이 많이 들어 있어서 좋다 말이야..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내가 점심 식사로 4만 원짜리 샤스핀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 내가 먹고 싶은 걸로 시키는 게 낫다.


 우리는 부지부식 간 나의 기호를 합리적 판단으로 착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직급이 올라갈수록, 윗사람이 되어 갈수록 강화된다. 나의 기호가 너의 기호가 될 수 없다. 나의 합리적 선택이 너의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없다. 어디 선가 그러더라. 합리적 인간이란 자신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한다. 짜장과 짬뽕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이들이여.. 그냥 네가 먹고 싶은 걸, 당당하게 시키시라. 또한 짜장과 짬뽕도 싫은 이들이여, 게살볶음밥도 시키고, 잡채밥도 시키시라.. 다만, 점심 먹으러 온 중국집에서 샤스핀을 시키진 말라. 샤스핀을 시키는 문제는 “짜장과 짬뽕”이 아닌 “이상과 현실”의 문제이니, 그건 내일 다시 고민하자.


P.S 참고로 저는 언제나 내가 먹고 싶은 걸 먹는 냉소적인 현실주의자입니다. 안 그래도 눈치 받고 사는 인생인데, 그깟 5천 원 정도 하는 밥까지 눈치로 먹고 싶지 않은 소심한 레지스탕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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