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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22. 2019

나의 행동 : 계획과 실행

학습계획표를 만들다가 잠들다.

드디어 나의 고민, 나의 선택, 나의 행동에 이르는 3편의 연작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사실 3편의 연작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고 물어서 쓰고 싶은 내용이 많아지는 법이다. 반지의 제왕처럼 애초부터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나온 영화도 있지만, 록키처럼 1편의 성공에 힘입어 속편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 글은 물론 1편의 성공(?)에 힘입어 3편까지 작성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고민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패턴을 내 멋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한 글이라, 딱히 철학적이지도 않고, 딱히 새롭지도 않지만 글로 남겨둘 만하다. 영화감독이 매번 흥행작과 걸작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지만, 꾸준하게 영화를 만들어야 그중에 흥행작, 걸작이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어깨 잔뜩 들어서 만든 영화보다는 때로는 큰 기대 없이 만든 영화가 히트 치는 경우도 있다. (전자가 마약왕이라면, 후자가 극한직업이다.)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이라 쓰고 타율학습이라 읽는다.)을 해야만 했다. 저녁 6시쯤 저녁을 먹고 와서 7시부터 10시 정도까지 학생들이 학교 독서실 같은 곳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나도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이었기에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는 척을 해야 했다. 친구 중에서 꼭 이런 친구가 있다. 저녁 먹고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서 그날 공부할 학습계획표를 30분쯤 만든다. 어떤 친구는 분단위 계획까지 착착 맞춰서 작성한다. 그리고 피곤하다면서 잠시 책을 펴놓고, “나 잠시만 잘 테니깐 50분쯤 깨워줘. 그리고 선생님 오면 꼭 깨워줘”라고 말한다. 우리는 피곤에 찌든 친구의 부탁을 절대 근성으로 흘려듣지 않는다. 반드시 50분에 그 친구를 깨우고야 만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아주 피곤한 목소리로 “아.. 미안해.. 정말 피곤해서 그러는데 10분만 더 잘께” 하고 또 엎드려 잔다.


 그 친구는 학습계획표를 만들다가 1시간을 잠들어버리고 만다. 큰일이다. 원래 공부하기로 한 1시간이 계획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면 또다시 학습계획표를 수정한다. 아!!! 이를 어쩌나.. 세상에 학습계획표를 만드는 일은 “학습”하는 일보다 훨씬 피곤한 법이다. 그리고 또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잠을 잔다. “나 잠시만 잘 테니깐 50분쯤 깨워줘”라고 말이다. 우스개 이야기 같지만, 우리에게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한 달에 5킬로를 감량할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꼭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친구 녀석이 오늘도 치맥을 권한다. 그래.. 오늘까지만 치맥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찐 0.5킬로까지 포함해서 5.5킬로를 감량할 목표를 다시 세운다. 아!! 왜 우리는 매일매일 원대한 계획을 세우다가 잠이 들고 마는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우리는 매일 계획이라는 커다란 돌을 이리저리 옮기도 말지만 언제나 원점에 서 있고 만다.


 바로, 매일 그렇게 잠들던 친구가 “나”이다. 그리고 난 결심을 한다. 더 이상 원대한 학습계획표를 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완벽한 계획 100보다는 아주 쉬운 영어단어 1개를 외우는 게 더 낫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감탄할만한 글 구상 100보다는 아무 말 대잔치로 쓰더라도 대충 직접 쓴 글 1이 더 낫다. 칼 포퍼는 그의 저자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아주 원대하고 완벽한 이상을 추구하는 것보다 우리 속에 있는 작은 악을 제거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그렇다!! 내 삶은 계획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실행으로 채워진다. 매년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니겠다는 계획보다는 이번 주말 아이들과 함께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난 또 오늘도 내 삶의 학습계획표를 만들다가 잠이 들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건 세우지 않았다. 내가 목표대로, 계획대로 살았으면 난 서울대학병원 의사가 되었거나,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난 의사나 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글을 마쳐야 할 것 같다. 나의 고민이 “이상과 현실”에서 방황하고, 나의 선택이 “짜장과 짬뽕”에서 서성이고 있다. 또한 나의 행동은 “계획과 실행”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때론 방황하고, 때론 서성이고, 때론 머뭇거리는 사이에 인생의 시침과 분침은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다. 인생은 정답이 없다. 다만 난 이상에 닿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짜장을 먹지 못하고 짬뽕을 먹어서 후회하지 않고, 계획만 잔뜩 세우고 잠들어 버리고 싶지 않다. 난 내 인생이 고민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므로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느낀다. 죽은 사람은 고민하지도, 선택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음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인생은 지금부터다.


P.S 긴 글 3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3일 연속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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