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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21. 2019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Job)학사전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전문가이다.

 제가 꼭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 방송입니다. 시즌을 달리해서 출연자가 바뀌긴 하지만, 유희열을 MC로 나오고, 원년멤버인 유시민 작자를 비롯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 또는 대가가 나와서 함께 여행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는 포맷의 방송입니다. 사실 그 방송을 통해서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게 되고, 최근에는 김상욱 박사가 쓴 “떨림과 울림”이란 책도 읽어봤습니다. 5명의 인물(유희열, 유시민, 김영하, 김진애, 김상국)이 늘어놓는 수다와 쓸데없는 잡학을 배우게 되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자, 삶의 여유를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엊그제, 나를 포함해서 5명이 포항 효자동에 있는 형제 21번지에 또 모였습니다. (최근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핫 플레이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알쓸신잡의 그것처럼 5명이 식탁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했습니다. 지난번 회식은 “아는 형님” 컨셉이었지만, 그 날은 “알쓸신잡” 컨셉이었습니다. 아는 형님은 모두 친구처럼 반말을 하고, 친구처럼 지내지만, 암묵적인 대장인 호동이 형님이 있습니다. 호동이 형님을 중심으로 나머지 친구들이 모여있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알쓸신잡은 학교 친구라는 코드를 취하지 않고, 서로 각자의 삶과 의견을 존중해줍니다. 유희열이 MC 역할을 맡고 있긴 하지만, 가장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들어줍니다. 그리고 시청자를 대신해서 “바보” 역할도 합니다. 그리고 5명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며, 단순히 알고 있는 지식을 늘어놓는 자기 지식 자랑이 아니라, 그 속에 함의되어 있는 “의미”를 이끌어내고, 다른 관점에서 그 의미를 토론하고,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듣는 이로 하여금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둡니다.


 직장생활에서 회식이란, 대부분 누군가의 주도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회식에서 제일 높은 사람 또는 영향력이 큰 사람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얘기를 경청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고, “그 분”의 건승을 빌어주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회사나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 건배사를 외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인 “위하여”를 목청 높여 부릅니다. 그 분의 잡(Job)학 사전을 경청하며 듣습니다. 자신이 왕년에 일했던 쓸데없이 신비한 잡(Job)학사전을 이야기합니다. 예전에는 주 5일도 없이 일하고, 밤새워 일하기 일쑤였으며, 출산휴가도 없이 애 낳고 바로 다음 날 출근했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압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릴 적에 제 아버지가 그렇게 일을 했습니다. 그 분 세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사실 지금과 같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잡(Job)학사전이 우리에게 100%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그 분들의 잡학사전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의견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5명의 면면을 살펴봅니다. 다른 점이 많습니다. 기술사무직, 현장직이라고 구분할 수 있고, 노조 가입자, 비노조로 나눌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공통점이 많습니다. 30~40대 대한민국 남자입니다. 한 때 스타크래프트와 환장한 세대였고, 학창 시절 IMF를 고스란히 경험했던 사람들이었고, 1명을 제외하고는 어린 자녀를 둔 학부형입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자신만의 잡(Job)학사전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직장생활, 자신이 만나본 직장상사, 자신이 생각하는 노조에 대한 생각들을 두서없이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고치려 하지 않았고, 설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고 인정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중에 나이가 제일 많고, 제일 직급이 높아서 제일 많이 떠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반성합니다.


 알쓸신잡은 어느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모여서 한 가지 주제나 지역에 대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사실 그 어느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내 부모님도, 나를 100%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100%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그래도 이 지구 상에서 내가 나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그날 저녁, 저를 포함해서 5명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이렇게 자주 모여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민, 기쁨, 슬픔, 괴로움을 토로하고, 응원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서로가 생각하는 잡(Job)학사전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Job)학사전이지만, 당신을 알게 되어서 쓸데 있는 저녁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당신도 다르지 않다고 느낀 신비한 저녁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어떤 건배사도 하지 않고, 어떤 결말을 두지도 않고 헤어졌습니다. 우리가 외쳐야 할 건배사는 “위하여”가 아닙니다. 무엇도 위하지 않고, 왜 사는지 묻지도 않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도 없이 모여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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