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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26. 2019

장범준, 이적 그리고 글쓰기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글을 쓰는가?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동시에 음원을 공개하였다. 예전에는 앨범을 발매한다는 했는데, 최근에는 음원사이트에 공개하는 걸로 바뀌었다. 또한 최근에 작가들은 도서출판과 동시에 e-Book형태로 도서를 발행하기도 한다. 영화와 음악은 오프라인 매체(비디오테이프, CD 등)에서 온라인(넷플릭스, 벅스 등) 매체로 대부분 전환되었지만, 책은 아직도 두 손에 들려서 읽고 있다. 아직도 책장 넘기고, 책갈피를 끼우고 줄을 그어가며 읽는 형태의 독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온라인에서 나 같은 무명작가나 아마추어만이 습작으로 자기만족으로 브런치와 페이스북에서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3.21일에 장범준 3집이 발매되고, 3.22일에 이적 흔적 Part2가 발매되었다. 이틀간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장범준의 새로운 타이틀 곡 “당신과는 천천히”와 이적 “숫자”은 하루 종일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이 되었다. 아침에 두 곡을 들으며 출근하다 생각했다. 장범준의 음악은 사실 가사를 빼고, 음악을 따로 들으며 매우 유사한 멜로디, 곡 구성을 보인다. 스스로도 자기 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한 멜로디를 선보인다. 하지만 묘하게 그 곡에 맞는 가사로 곡을 입힌다. 마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같다. 장범준은 자기 맘 속에 있는 주제 멜로디를 수없이 많은 형태로 변주를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장범준은 그 익숙한 멜로디에 입혀진 다른 가사로 맞춰진 변주곡 스타일로 노래하는 듯했다.


 이에 반해 이적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더 방점을 둔다. 장범준은 벚꽃 엔딩처럼 “그대여, 그대여”라는 멜로디가 강력하게 인식된다. 하지막 이적은 이번 앨범에서 자신이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걸 더없이 보여준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작은 방이 있나 봐. 그곳에 웅크린 한 아이가 연필 하나 들고 써 내려가는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이제는 숫자로만 남은 것 같아”라고 얘기한다. 내 개인적으로 이 노래의 백미는 “그곳에 웅크린 한 아이가 연필 하나 들고 써내가는” 이란 가사에 있다. 이적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멜로디를 입히고, 장범준은 자기가 들려주고 싶은 멜로디에 가사를 입힌다. 이적은 피아노 협주곡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피아노가 담당하고, 그 뒤에 여러 악기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에 맞추어 음악을 얘기한다.


 이렇게 장범준, 이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을 얘기한다. 듣기만 해도 누구 노래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자기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아침 출근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장범준과 이적의 음악적 스타일이 누가 우월하다고 얘기할 수 없고, 각자의 선호나 스타일의 차이이다. 마치 어떤 사람은 빨간색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파란색을 좋아하다가 나이가 드니깐 빨간색이 좋아지더라. 음악적 취향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 덕분에 나는 매일 출근길에 서로 다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며 출근할 수 있다.


 그런데, 내 글쓰기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약 140편 정도 글을 올렸다. 내가 올리지 않은 글까지 포함하면 300편이 넘을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만으로 42년을 살았어도, 하는 이야기가 비슷하니 나도 장범준과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는 “한 개인으로서의 행복, 남의 행복도 존중할 수 있는 예의, 그리고 보다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한 연대”이다. 그것을 표현하려고 글을 쓰긴 하는데, 요즘 들어서 혼돈스럽다. 행동이 동행하지 않은 글쓰기에 답답하기도 하고, 나를 부정당하고 남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강요할 수 있는 행위들로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된 건 아닐까 한다.


 이적은 숫자라는 노래 앨범의 제목을 흔적 Par2로 정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내가 남긴 자리에 사람들이 기억한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작은 방이 있나 봐. 그곳에 웅크린 한 아이가 연필 하나 들고 써내가는” 이야기를 채우고 싶다. 이적은 자신의 흔적을 음악으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 흔적을 글쓰기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내 속에 한 아이가 연필 하나 들고 써내가는 이야기가 바록 횡설수설이고, 술에 취한 취중진담이라고 하더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남긴 흔적은 모자라고, 보잘것없지만 또 써야 하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이다.


P.S 봄이 와서 그런 건지, 감기에 걸려서 그런 건지, 업무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봄을 생각하는 시기(사춘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언제나 봄이 되면 싱숭생숭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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