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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27. 2019

Connecting dots : 대학생이 되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언젠가 미래와 연결된다.

 1995년 2월 마지막 주에 포항 흥해읍에 있는 어느 시골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20살 남짓의 전교생 400명이 기숙사 1개 동에 모여서 옹기종기 살았습니다. 기숙사 한 방에 3명이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남해 출신 부산에서 왔고, 민수는 대구에서 왔고, 단열이는 서울에서 온 친구였습니다. 살아온 20년이 너무나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달랐습니다. 우리는 늦은 밤 1층 침대 위에 있는 백열등 하나를 켜놓고,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 3~4시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TV에서 들을 수 없는 단어 중에 하나였던 “3김”이란 주제가 나왔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에 대한 정치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이름이지만 상도동계, 동교동계라는 단어가 뉴스의 중심이었습니다. 1995년만 해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이 되고, IMF를 불러온 장본인이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스스로 해냅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공과 과를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 시행은 YS의 독보적인 업적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군부 쿠데타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계좌와 신용카드 추적을 통해서 범죄를 예방하고, 추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28만 원 밖에 없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추징금 명령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산 출신인 저와 대구 출신인 민수는 김영삼 대통령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얘기를 했습니다. 또한 대구에서 나름 존경받는 노태우 대통령도 그렇게 나쁜 대통령은 아닌 거 같다는 얘기도 나눴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비록 민주주의를 희생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경제성장의 과실을 전 국민에게 나누게 한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 스스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주변의 부모님, 학교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역대 대통령과 그 외 정치인들을 평가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김대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와 민수의 첫 이미지는 “빨갱이 김대중”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도 적화통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주 쓰는 말이 아니지만 그걸 레드 콤플렉스라고 하더군요. 나와 민수는 단열이에게 “김대중,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들었던 괴담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부산이나 경남 차 번호판을 달고 광주에 가면 주유소에서 기름도 안 판다고 하더라. 또 길가에 차 주차해놓고 나오면 타이어 펑크 낸다더라.” 이런 괴담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 친구 단열이는 “우리 김대중 선생님은 말이야~~”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빨갱이 김대중”이란 말만 들어왔는데, 난생처음으로 “김대중 선생님”이라는 말을 접했습니다. 마치 외계인과 처음으로 조우하고 들었던 말처럼 무척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 단열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단열이 아버지는 목사님이셨는데, 단열이가 어릴 때 광주에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단열이가 중학교 즈음에 돌아가시고, 단열이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단열이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까지 즉 인격이 형성되는 기간을 광주에서 오롯이 보냈던 것입니다.  


 단열이는 빨갱이 김대중이 왜 김대중 선생님으로 불리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충격을 먹은 나와 민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은 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 공부를 해보라는 말이었습니다. 대학생은 그저 학업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통해서 스스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들은 빨갱이 김대중은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총합이었다. 김대중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주장을 하는지 공부해보지 않았습니다. 그 날 밤늦게까지 김대중 선생님을 포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학생이란, 그저 어려운 전공 공부와 설레는 미팅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탐구하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첫걸음을 배우는 곳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대학 도서관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김대중에 대해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대통령 선거에 우리 집 식구 4명 중에서 유일하게 김대중 대통령을 투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날 저녁 내 친구 단열이와의 대화로 저는 남이 저에게 심겨준 이야기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내가 보고 느끼고 스스로 사유하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실에서 한 첫 번째 주제가 “Connecting dots”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순간이 제 사상적 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1995년 3월에 입학한 시간적 대학생에서 1995년 3월 금요일 밤에 개념적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 Connecting dots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볼까 합니다.


P.S 저는 아직도 김영삼 대통령이 IMF를 불러일으킨 대통령이지만, 적어도 그분 덕분에 더 이상 대한민국은 군부정권으로 다시는 퇴행하지 않아도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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